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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라(삼상 3:1-10)
가나안 정복전쟁을 앞두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수 1:8-9)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전쟁의 위급한 상황속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두려움이 앞설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해답으로 네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말고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하면 네가 형통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말씀 묵상은 말씀묵상을 통해서 믿음이 성숙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얻습니다. 말씀묵상을 통해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말씀묵상을 통해서 복있는 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살리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부름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들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 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하지 다 이루어지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대화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향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때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당신의 뜻을 계시해 주십니다. 때로는 주변의 가족이나 사람들을 통해서, 때로는 육신의 질병이나 역경을 통해서 사랑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경청을 배울 수 있습니다. 경청이란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집중하여 듣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성공과 발전을 목표로 하기때문에 잘 듣기보다는 잘 말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생깁니다. 소통을 원활하려면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잘 듣는 사람이 말을 잘할 수 있습니다. 잘못 듣거나 듣지 못하면 소통이 중단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엘리 제사장이 그렇습니다. 제사장이면서 선지자인 엘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계속적으로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응답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계획하신 것을 보여주시며 많은 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1.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을 하셔도 내가 귀를 막아버리면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또 길가 밭과 같이 내 마음이 강퍅하면 음성이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본문에 나오는 엘리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였겠습니까? 1절 말씀에 보면,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섬길 때 그 시대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에는 여호와께서 보여주는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2,3절,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하나님의 제사장 엘리의 눈은 점점 더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은 엘리의 영적 분별력이 어두워졌음을 뜻합니다. 말씀이 희귀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멸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었던 엘리제사장 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영적 분별력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성경지식을 얻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종이 주인 앞에서 선 것처럼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본문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며 엘리에게 달려갔습니다. 엘리는 자기가 부르지 않았으니 다시 누우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했습니다. 엘리는 사무엘에게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했습니다.
사무엘은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세번째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은 다시 엘리에게 달려가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엘리는 여호와께서 어린 사무엘을 부르신 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9절),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다시 부르셨습니다. 10절,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셨습니다. 그 때 사무엘은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것이 바로 종이 주인의 명령을 듣기 위한 기본적 자세입니다.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
바로 이런 자세로 말씀을 겸손하게 들어야 경청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앞에 선 자세로 지금 나에게 여기서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나의 삶의 현장에 임재해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가장 기본자세는 겸손이고 겸손은 낮아짐입니다. 이렇게 낮아지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됩니다.
시편 107편 9절에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사모하는 자의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말씀에 갈급한 자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날마다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사모하며 갈망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묵상하기 전에 먼저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시편기자가 한 기도가 시 119:18절 말씀입니다.
(시 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우리가 말씀앞에서 먼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이 힘을 잃어버립니다. 말씀이 바로 우리의 영적인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말씀을 우리가 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영혼의 사모함이 있는 것입니다.
(시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영혼의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시냇가에 가면 맹수도 물을 먹으러 오기도 하고 물을 먹으러 오는 약한 짐승을 잡아먹으려고 숨어 지키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시냇물을 찿는다는 것은 정말 갈급함이 있을 때 찾아 다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영혼이 살아있습니다. 이 영혼은 육신이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픈 것처럼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으면 영혼이 배가 고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모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사모함과 함께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의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뿐 만 아니라 나의 심판자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나의 진정한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서면 당연히 겸손해야 합니다. 저는 성경적으로 겸손을 정의하라면 이렇게 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되십니다. 그러기에 주인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당연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내게 와서 나를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의 겸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빌 2:5-9)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말씀이 떨어지면 말씀앞에 자기를 다 내려놓고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땀방물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면서 자기를 내려놓으셨습니다. 이렇게 겸손은 자기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욕심, 내 경험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바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 변하여도 아버지의 뜻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말씀은 우리의 영원한 반석이 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생각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려야 합니다.
2. 말씀을 묵상하며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도록 묵상하며 집중해야 합니다. (시 46: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묵상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너무 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내가 다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 속에 있는 필요와 소원만 아뢰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알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기다릴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무엘은 밤중에 잠을 자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정도로 깨어 있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부를 때도 언제든지 “달려가서” 듣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세 번이나 달려가서 들을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무엇보다 묵상이 필요합니다. 시끄러우면 말씀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조용히 주님이 내게 말씀하실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때로는 고요하게 임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잠잠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들의 필요를 하나님께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도록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시 62:5)“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아침 이슬과 같이 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잠잠히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만 언제나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를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기다림의 인내를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준비시키십니다. 그리하여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위해 잠잠히 기다릴 수 있는 성숙한 기도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 묵상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기다림(waiting)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기도한다. 찬송을 드림으로 주님을 인정하고 심령을 주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2) 읽기(reading)- 미리 정해놓은 분량의 말씀을 3번이상 읽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는 자세를 갖고 읽습니다. 항상 말씀을 읽을 때 초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하나님을 알므로 하나님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둘째, 나에게 주신 말씀은 무엇인가입니다. 다시말씀드리면 오늘 본문은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시는가를 알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1)내가 버려야 할 죄는 무엇인가? 2)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인가?
3)내가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인가? 4)내가 따라야 할 모범은 무엇인가?
3) 기록하기(recording)- 묵상할 때 볼펜을 꼭 가지고 글을 써야 합니다. 느낀 대로 깨달은 대로 적다보면 말씀이 정리가 되고 나에게 주신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일단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고 먼저 그 요지를 기록합니다. 내가 본문의 제목을 정해보는 것입니다. 또 본문이 말씀하는 주제는 무엇인지 파악합니다. 그리고 깨달은 말씀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4) 적용(application)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그것이 현재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 지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말씀을 지식적으로나 도덕적으로만 이해하고, 나의 현재적 상황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오늘 나의 일과와 할 일을 말씀에 비추어 보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적용은 세 가지입니다.
1)적용은 개인적(Personal)이어야 한다. 개인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본문 속의 메시지가 바로 '나'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묵상이 진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적용의 범위가 '나'에게 국한되기 때문입니다. '나' 이외의 '우리'에게 메시지를 적용하면 '설교'가 되고 맙니다. 꼭 적용은 나에게만의 적용이라는 원칙을 잘 지켜야 됩니다.
2)적용은 구체적(Practical)이어야 한다 '구체적'이란 말은 '현실적'이란 뜻입니다. 살아있는 현실의 문제에 있어서만 의의를 지닙니다. 그래서 말씀이 삶 전체에 적용해나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마음속에서 다루어지는 현실의 모든 영적 문제를 잡념이라고 부정하지 말고 본문 말씀과 대조합니다. 또 오늘 해야 할 당위적인 삶의 문제들을 그대로 말씀과 대조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가장 은밀한 동기에서부터 말씀을 대조합니다.
3)적용은 가능한(Possible)것으로 한다.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여러가지 적용거리가 생겨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모든 적용이 다 가치있는 것이라 해도, 그 속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그 많은 적용들을 동시에 이룰 수 없으므로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가까이서 실천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적용을 하면 됩니다. 이렇게 개인적이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적용을 찾아 삶에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건의 시간을 갖는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3.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데 절대 필요한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령님이 조명하시고 깨우쳐 주셔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진정한 저자는 성령님이십니다.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성령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가감없이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성경말씀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린 것처럼 성령님은 보혜사로 우리 곁에 오셔서 실질적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보혜사란 곁에 오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깨우쳐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믿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이십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우리가 깨달을 수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3가지입니다. 1)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하시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말씀을 듣거나 읽을 때 그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2)변화시켜주십니다. 그저 깨닫게 해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 말씀대로 순종하게 해주셔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깨달은 말씀을 그대로 믿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니까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전에는 나밖에 모르는 죄인이었는데 이제는 이웃을 생각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셔서 그 뜻대로 살게 하십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야곱이 변하여 하나님의 왕자와 같은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3)능력을 주십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임하면 영적인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의 능력은 각종 은사로 나타납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치유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능력은 하나님말씀대로 순종하는 능력입니다. 말씀이 가라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는 것,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이처럼 말씀을 깨닫고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 말씀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전 2:10-11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이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성령으로만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 때 내 귀를 활짝 열어야 합니다. 내 걸음을 멈추고 서야 합니다. 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사모하며 기다리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 말씀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신앙의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 속에 들려지지 않으면 영적으로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겸손하게 들어야 합니다. 묵상하며 집중하여 들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우리 속에 들려오면 우리의 영혼이 살아납니다. 그리고 힘을 얻습니다.
우리의 영이 살아나면 우리가 일어섭니다. 그리고 빛을 발하는 성도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둡다고 탓하지만 말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듣고 믿고 순종함으로 말씀의 반석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