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 때문에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과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복음을 아주 상세하게 증거하였다.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들을 때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셨다. 여기서도 분명한 것은 말씀을 들음으로 믿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이 동시적이라는 점이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사건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그 분의 합법적인 백성으로 받아들이셨다는 사실을 만방에 특별히 이방인들을 개처럼 여긴 유대인들에게 전시하고 시위하는 중대한 의미를 띠고 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성령을 주심을 통해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약 교회의 정식 구성원으로 받으셨다는 것을 친히 확증하시지 않고는 이방인들을 경멸하고 상종하지 않으려는 유대인들의 지독한 배타의식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 배타주의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베드로마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해 성령이 부득불 환상까지 동원하여 그를 깨우치셔야만 했다는 씁쓸한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에베소에 있던 제자들이나 고넬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거나 믿을 때 성령을 받았다. 그들의 성령 체험은 믿은 후 2차적으로 성령 세례를 받는 성경적인 근거가 결코 될 수 없다. 오히려 믿을 때 성령을 받는 정상적인 사례에 속한다. 사도행전에서 제시한 성령 체험의 규범적인 패턴과 꼭 들어맞는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모인 사람들에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교회 앞에서 고넬료에게 성령이 임하신 사건을 보고하면서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라고 말했다. 이것이 사도행전이 제시한 성령 체험의 정상적인 패턴이다.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던 제자들을 제외하고 오순절 후에 복음을 듣고 믿은 이들은 이 규범을 따라 성령을 받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천명이 예수님을 믿었고 그 후에는 5천명이 복음을 받아들였는데, 여기서 그들이 믿을 때 성령을 받았다는 언급이 없다. 그러나 누가가 제시한 규범을 따라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을 받은 것을 당연한 사실로 전제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믿은 후 성령을 받은 유일한 사례
그런데
사도행전 8장에는 이 규범에서 벗어난 사례가 딱 한 군데 있다. 그것은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하신 사건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직분자 중에 하나였던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가 복음을 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행8:12).
이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내려가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셨다(행8:17). 이 사건은 믿음과 성령 받는 것이 분리된 유일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신학자는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지 않은 것은 그들의 믿음이 아직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수님을 믿고도 성령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고 했던 마술사 시몬에게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의 믿음이 순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다. 성경 본문에 빌립이 전한 메시지에 문제가 있었다거나 그들의 믿음에 결함이 있었다는 암시를 발견할 수 없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는 칼뱅이 지적한 대로 믿음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의 내용과 정황을 살펴볼 때 그들 안에 믿음의 실체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 본문이 분명히 증거하고 있는 바는 그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물가에서 주님을 만났던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내려가 그들에게 안수하기 전까지는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순절 이후에는 믿음과 성령 받는 것이 분리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왜 여기서는 성령이 임하시는 것이 지연 되었는가?
이 사건은 특별히 성령의 역사적 배경과 구속사의 큰 틀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약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또 다른 유대인들이었다면 이런 점들을 고려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 사건은 본문에 기록된 그대로 믿은 후에 2차적으로 성령을 받은 분명한 성경적인 근거하는 주장에 대해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주역들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유대인들이 개처럼 여겼던 이방인들보다 더 혐오하고 경멸했던 특정 인물들 즉 사마리아인들이었다. 그 당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 놓여 있던 높은 반목의 담이 무너져 서로 손을 잡는다는 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천지개벽과 같은 일이었다.
박영돈 교수(고려신학대학원)/‘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한국교회 성령운동, 무엇이 문제인가’(IVP)에서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