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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주시기로 작정하신 날
20: 8-11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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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에서 선정한 세계를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니알 퍼거슨(Niall Ferguson) 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현재 미국 하버드에서 역사학 교수로 폴 크루먼 교수와 함께 미국 금융위기를 경고한 이 시대의 영향력 있는 분입니다. 그는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흥미 있는 주장을 했습니다. “미국이 유럽을 앞지르는 이유는 기독교신앙을 바탕으로 한 근면함에 있다.”
그는 미국에는 근면하고 경건한 개신교 노동윤리가 살아있는데 반해 유럽에서는 현재 기독교적 윤리가 실종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럽연합의 미래는 어둡다고 진단합니다.
OECD 즉 경제개발협력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1년 평균 근로시간은 1,976시간인데 반해 독일인에게 있어서는 1,535시간이고, 북부유럽 국가에서는 이보다 더 적다고 합니다. 또한 1979년부터 지금까지 미국인들의 평균 근로시간이 약 50시간 늘었는데, 같은 기간 동안 독일인들의 근로시간은 평균 12%가 줄었다고 합니다.
파업에 있어서도 지난 10년 동안 근로자 1,000명 당 파업으로 날려버린 날 수가 스페인의 경우는 271일이고, 덴마크, 이탈리아, 아일랜드, 프랑스의 경우에는 80일에서 120일인데, 미국은 50일 미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과 북유럽 국가들 사이의 이러한 차이가 어떻게 해서 생겼는가의 진단이 특이합니다. 퍼거슨 교수는 북유럽 국가들에 있어서의 노동시간의 감소는 교회에 가는 횟수가 격감한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웨덴, 덴마크의 경우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예배드리러 교회에 가는 사람의 수가 전체인구의 10% 미만이라는 것입니다.
최근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국민 약 50%가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인의 경우에는 82%가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매우 중요하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지속될 경우 유럽은 계속해서 미국에게 뒤처질 것이라고 퍼거슨 교수는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신앙에 기초한 근면성” 이것이 오늘날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대한 나라로 만든 이유라고 말합니다.
세계적인 석학이 이런 주장을 했다는 것이 좀 이상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면 아마도 종교편향이라고 난리가 났겠죠? 대한민국이 약 50여년 만에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세계 7위의 수출 대국으로 발돋움한 원동력이 어디에 있을까요? 누가 뭐라고 해도 이 민족이 하나님을 잘 섬겨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결과라고 믿습니다.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원래 이 민족은 분쟁과 싸움을 일삼았습니다. 조선시대를 보면 4색당파의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지역 간의 갈등의 골이 깊었습니다. 술과 담배, 노름을 좋아했습니다. 변화를 거부하고, 쇄국정책을 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은둔의 땅, 무지의 땅에 복음이 전파됐습니다. 선교사들은 이 민족의 가난과 무지를 깨우치려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병원을 세웠습니다. 그 결과 이승훈, 조만식, 이상재, 윤치호와 같은 탁월한 지도자들을 양성했습니다.
만약 복음이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민족의 미래가 어떠했을까요? 복음은 이 땅의 가난과 무지를 몰아내고, 새로운 꿈을 꾸게 했습니다. 초창기에는 많은 박해가 있었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새벽을 깨우며 기도했습니다. 주일이면 교회에 모여서 예배드렸습니다. 세계에서 전 국민의 약 1/4이 주일 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민족은 대한민국이 유일하지 않을까요? 퍼거슨 교수가 지적했듯이 유럽은 세계를 지배했지만 지금은 점점 쇠퇴하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가 아직도 금융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마음에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지적입니다. 주일 날 예배드리는 횟수가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시33:12) 아멘!
대한민국은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모여서 예배드리고, 기도에 힘쓰는 민족입니다. 세계에 선교사를 두 번째로 많이 파송할 정도로 선교의 열기가 뜨거운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은 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코 풀 때도 “흥해라” 고 말하는 민족이기에 흥(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긍휼히 여겨주신 결과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힘써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마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전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을 방해합니다.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이 예배의 자리에서 멀어집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모이기에 힘쓰는 성도가 복을 받습니다.
오늘 말씀은 십계명 가운데 4번째 계명 “안식일의 규례”에 관한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8절)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먼저 안식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봅니다.
첫째, 안식일은 창조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그날에는 나와 함께 안식하면서 교제하자는 의미입니다.
둘째, 구속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두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의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받은 것이요, 신명기의 십계명은 40여년이 지난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압 평지에서 받은 것입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5:15)
여기서는 애굽 땅에서 종노릇하던 너희들을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편 팔로 너희를 인도하였으니 나를 기억하여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내가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고, 7일째 쉬었으니 너희들도 쉬라, 안식하라’는 창조사적 의미입니다. 그런데 지금 신명기에서는 안식일의 의미가 구속사적 의미로 승화됩니다.
셋째, 부활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 되심을 선포합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2:27-28)
예수님은 창조와 구속을 이루시는 분으로서 안식일의 주인 되심을 선포합니다. 여기서부터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안식일이 아닌 주일을 지키게 됩니다. 지금도 안식교인들은 구약의 안식일 즉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를 구별하여 지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안식일이 아닌 주일을 지킵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환상을 보게 되는데 여기서 주의 날(Lord's day)이 나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On the Lord's day)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1:9-10)
여기에서 주일은 부활의 의미가 됩니다. 신약에서는 주님의 부활의 날을 기준으로 주일을 지킵니다. 따라서 창조사적 의미인 안식일이 구속사적 의미의 안식일로 승화되고, 그것이 다시 부활의 의미인 주일이 됨으로써 비로소 안식일이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하고, 나 같은 죄인을 구속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주님과 더불어 부활의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축복의 날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의미가 담겨 있기에 주일은 기억하여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첫째로, 주일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주일은 우리의 날이 아닙니다. 내가 지켜도 되고, 안지켜도 되는 날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출애굽기 31장 15절에 보면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범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주일은 나의 날이 아닌 주님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훔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을 지키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총사령관이었던 로버르 리(Robert E. Lee)에게 대통령이 전화를 해서 만찬에 초대했습니다. 그러나 리 장군은 선약이 있어서 초대에 응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은 기분이 언짢아서 대통령의 초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보다 더 귀중한 일은 없습니다. 이미 나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로 약속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의 초대보다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는 것이 더 귀중한 일입니다.” 우리들도 이런 정신과 믿음으로 무장해서 주일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은 너무 쉽게 주일을 빠지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힘들다는 이유로, 자식의 일로, 직장과 사업의 일로, 가정사의 일로...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도 주일 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에 집중해 보십시오. 목숨을 걸어보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모든 여건과 환경도 지켜주십니다.
우리들이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께 이 핑계 저 핑계로 주일을 지키지 않는 뺀질이 성도가 질문을 했습니다. “주일에 소가 우물에 빠지면 건지겠습니까? 건지지 않겠습니까?” 자기는 주일만 되면 소가 물에 빠지듯 중요한 일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그 때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 건져야죠, 그러나 그 소가 주일마다 우물에 빠진다면 그 소는 팔아 치우십시오."
그렇습니다. 주일을 지키는데 방해가 되는 소들이 있다면 빨리 팔아야 합니다. 그것을 붙잡고 계속 주일을 빠지면 더 큰 일이 벌어집니다. 주일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의 태도와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일을 지키겠다고 결단하면 하나님께서 환경을 바꿔주십니다. 그러나 주일성수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고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결국 마귀의 밥이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축복의 자리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반드시 주일을 지키겠다는 믿음의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주일은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주일은 성일(聖日)입니다. 출애굽기 31장 14절에 보면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주일이 거룩한 까닭은 하나님이 성별하신 거룩한 날이요, 그 날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구별’이란 의미입니다. 주일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일 날은 다른 날과는 다르게 구별되는 삶이 따라야 합니다.
주일은 자신을 위한 날이 아닌 주님의 성일이기에 자신의 유익을 위해 쓰는 날이 아닙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일하는 날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드리는 날이어야 합니다. 구별된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구별된 섬김과 봉사가 있어야 합니다. 구별된 만남과 친교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주일 날 일찍 예배드리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1부 예배드리고 골프를 치러가거나 등산을 가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내가 이분과 주일 날 골프를 치지 않으면 절대 전도가 안될 것 같다고 여기면 가능합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주일 날 예배 후에 가족과 함께 극장에 가거나 외식을 할 수 있습니다. 친구와 만나 차를 마실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행위의 동기와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 입니다. ‘나’를 위해 쓰여 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에 쓰여 지는 것이라면 가능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행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쾌락이나 즐거움을 위해 하는 것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히틀러가 1913년 10월 17일 영국을 침략했습니다. 그날이 바로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영국 사람들이 쉬는 날 공격하면 쉽게 이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웰링톤 장군의 반격으로 완전히 참패를 당했습니다.
1941년 12월 18일 일본은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이 날 역시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주일 아침 군대가 쉬는 날, 예배드리는 날이기 때문에 이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4년 후 원자탄 투하로 항복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주일 아침 북한군은 남침했습니다. 삼일 만에 낙동강까지 차지했지만 UN군의 도움으로 압록강까지 쫓겨났습니다. 지금도 개인 우상화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믿는 자들을 세계에서 가장 극렬하게 박해하고 있습니다.
주일은 성일이요 주님의 날입니다. 주의 날 인간의 방법으로 전쟁을 벌일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들을 징벌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도전하는 것으로 간주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주일은 반드시 교회에 나와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모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들이 집에서 주일예배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산이나 해변에서도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싱가폴 예수 전도단에서 훈련을 받을 때 다툰 일이 있습니다. 제가 보니까 섬기는 스텝들이 주일 성수를 안하는 것예요. 주로 해변으로 소풍을 가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든가 자기들끼리 즐기는 거예요. 그래서 왜 주일 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지 않느냐고 따졌더니 꼭 교회에 가서만 예배를 드려야 하느냐고 되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십계명의 4번째 계명이 뭐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랬더니 자기들은 교회에는 가지 않지만 아름다운 해변에 가서 찬송도 부르고, 예배를 드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0:23-24절입니다.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Wherever I choose to be worshiped)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이것은 지정한 곳에서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신 성전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때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들이 집이나 다른 장소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할 때 교회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보다 잘 드릴 수 있을까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날 성전에 함께 모여 경배와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그러면 주일을 지킬 때 하나님은 어떤 복을 주실까요?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blessed the Sabbath day)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장 24절에서는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주일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주의 백성들에게 복주시기로 작정하신 날입니다. 6일 동안 힘써 일하고, 거룩한 주의 날 주의 전에 모여서 함께 경배와 찬양으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기뻐 받으십니다. 그리고 예비하신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1924년 파리 올림픽 때 있었던 일일입니다. 올림픽의 꽃이라고 하는 100m 경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기시간이 주일날 오전으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영국대표로 출전한 에릭 리들은 세계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수만 없으면 그는 100m 경기에 단연 1등 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에릭은 주일날은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고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이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영국 신문 전체가 그의 행동에 대해서 비판을 했습니다. 민족을 배반한 것이 아니냐고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주일날은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말씀을 듣습니다. 그것이 오늘 주일을 거역하고 나가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 보다 더 중요합니다. 따라서 저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습니다.”
며칠 후에 400m 경기가 열렸습니다. 에릭은 그 경주에 자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100m 경기를 뛰는 사람이 400m에 뛴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그는 경기장에 나가서 100m 뛰는 솜씨로 총알 같이 달렸습니다. 그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걱정을 했습니다. 저렇게 100m달리는 식으로 뛰다가는 400m를 뛰기 전에 심장이 터져 죽을 거라고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100m 뛰는 속도로 그냥 내달려서 400m에 세계신기록을 내면서 일등을 했습니다. 그에게 많은 사람들의 영광과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200m는 내 힘으로 뛰었습니다. 나머지 200m는 하나님이 대신 뛰어주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뛰었는지 나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는 <불의 전차>라는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썩을 면류관을 위해 뛰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면류관을 위해서 달린 에릭 리들의 이야기는 많은 감동을 안겨줍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정복하고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워털루 전투에서 패전하여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를 당합니다. 한 기자가 어렵게 물었습니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백발을 휘날리던 나폴레옹은 눈을 지그시 감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스위스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였지. 잠시 전투를 그친 어느 주일 아침, 산 아래 조그만 교회에서 종소리가 들려왔지. 그 소리에 이끌려 교회로 갔지. 그때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릴 때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맛 봤다네” 라고 했습니다. 천하의 나폴레옹이 주일 아침에 하나님의 집에서 최고의 안식과 평화를 얻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반드시 지키십시오. 주의 성전에 모여서 기쁨과 감격으로 예배드리십시오. 실상은 내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이 나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던 나를 주님이 초대하셔서 은혜의 보좌 앞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변화시켜 주십니다. 마음에 안식과 평화와 행복을 주십니다.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주님의 은혜로 창조와 구속의 은총을 입은 우리들은 설렘과 감격으로 주의 전에 모여야 합니다. 그리고 온 맘과 정성과 힘과 뜻을 다하여 주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 속에 주님이 임재 하셔서 각 사람을 만져주십니다.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복 주시기로 작정한 주의 날, 목숨 걸고 주일을 성수하셔서 주님이 예비하신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