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저-법정 잠언집
책명-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법정 잠언록.hwp
출-조화로운 삶
독정-2020. 5. 6. 수요일
· 50대 여인이 불임암에 찾아왔다. 남편은 빚 보증 잘못 서 재산이 다 날아갔고 대학 마친 아들은 충격으로 방안에서 몇 달째 나오지 않고 자신은 몸에 큰 병을 얻어 거동조차 힘들어 산길을 걸어 올라온 것 자체가 기적이라 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녀는 외쳐 물었다. 그 물음은 단순히 삶의 길을 문든 것이 아니었다. 고통과 번뇌로부터의 벗어남과,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다시 평탄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법정 스님은 한마디 없이 여인의 곁에서 반찬을 챙겨주고 마음 쓰는 그 모습. 그녀의 슬픔에 강렬히 집중함으로써 그녀의 슬픔을 위로하고 그것을 삶의 한계에 대한 이해로 승화시켰는지도 모른다. 그 모습은 마치 고통 받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같았다. 그 분위기의 신성함이 서서히 그녀를 슬픔 밖으로 인도했을 것이다. 여인은 그렇게 속세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외딴 암자에 와서 쏟아 놓았다. 차와 고구마는 식어 가고, 스님은 여인의 얘기를 다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렇게 산을 올라왔으니, 이곳에서 하룻밤 자고 내려가라고……. 그것으로 아침의 대화는 끝났다. 우리는 툇마루를 내려와 성큼 가을 산의 품안으로 들어섰다. 그날 여인은 장작을 들여 자신이 잘 방의 군불을 때고, 가을걷이가 끝난 밭둑을 서성이고, 우리와 함께 오두막 둘레를 거닐면서 하루를 보냈다. 또 저녁에는 스님과 마주앉아 묵묵히 차를 마셨다. 본래 ‘방문객은 혼연히 맞이하되 해 떨어지기 전에 내려가도록 한다. 특히 여성과는 저녁밥을 함께 먹지 않고 재우지 않는다.’는 불일암(강원도 송광사 뒷산의 암자) 수칙을 깨고 사바 세계에 지친 여인에게 하룻밤 잘 곳고 이부자리를 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큰 감사와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속뜻을 침묵으로 채우고’ 이튼날 산을 내려갔다. 스님은 산 아래 차 타는 곳까지 거동 불편한 여인을 배웅했다. 그 하루는 여인의 삶에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친절은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운다. 훗날 그녀 삶이 크게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그녀는 평화롭게 고통이 원인이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깨우치고 있ㄷ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문제의 진정한 해결에 이르는 길임을 그녀는 알았을 것이다.
·법정 잠언을 읽으며 “나는 수고하지 않고 수확을 거둔 농부 같고, 오랜 수행의 결과인 그의통찰력을 도둑질하는 기분이 든다”는 사람도 있다. 법정 글을 읽고 삶의 방향을 수정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삶을 소유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의 있음이다. 우리가 걱정할 것은 늙음이 아니라 녹스는 삶이다.“살 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
<행복의 비결>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 한 나눌 것은 있다.
근원적인 마음을 나눌 때
굴절적인 것은 자연히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기도>
수행자는 기도로써 영혼의 양식을 삼는다.
우주의 언어인 거룩한
그 침묵은 안과 밖이 하나가 되게 한다
사람의 몸에 음식이 필요하듯
우리의 영혼에는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는 하루를 여는 아침의 열쇠이고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의 빗장이다.
<인간이라는 고독한 존재>
내가 지금 순간순간 살고 있는 이 일이 인간의 삶인가.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하늘같은 사람>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사람한테서 하늘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만이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보배이다.
친구를 통해서 삶의 바탕을 가꾸라.
<무소유의 삶>
무소유란 아무거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소극적 생활 태도가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의 한 부분이다.
저마다 독립된 개체가 아니다.
전체의 한 부분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의 한 부분이다.
<친구>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함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
<마음의 주인이 되라>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초자 없다
그런 마음을 돌이키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
<삶의 종점에서>
타인에게 베푼 것만이
진정으로 내 것이 될 수 있다.
이 세상은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
<수행자>
무릇 수행자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자이다.
수행자는 자기로부터 시작하라고 했지
자기에게 그치라고 한 것이 아니다.
자기를 출발점으로 삼되
목표로 삼지는 말라는 뜻이다
자기를 바로 알되
자기에게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산속으로 들어가 수도하는 것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발견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우리가 사람들을 떠나는 것은
그들과 관계를 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그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
말이 되기까지는 우리들 안에서
씨앗처럼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듣는다는 것은
자기 것을 비우기 위해
침묵을 익히는 기간이다.
<다 행복하라>
며칠 동안 펑펑 눈이 쏟아져 길이 막힐 때
나는 혼자 적막강산에 갇혀
내 둘레의 사물과 일체감을 나눈다
월백, 설백, 천지백의 황홀에
나는 숨을 죽인다
살아 있는
모든 이웃들이 다
행복하라
태평하라
안락하라
<소유한다는 것은>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소유물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는 이상으로
우리 자신을 소유해 버린다.
그러므로 필요에 따라 살아야지
욕망에 따라 살지 말아야 한다
<흙 가까이>
흙을 받아들이는 것은
살아 있는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흙냄새를 맡아보라
그것은 순수한 생의 기쁨이 될 것이다.
<산>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 뿐
마음을 열고 진정으로 바라보라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분주하게 살 때는
저만치서 산이 나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는
내가 산을 바라본다.
<나무처럼>
새들이 날아와 팔이나 품에 안겨도
그저 무심할 수 있고
한여름이면 발치에 서늘한 그늘을 드리워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쉬어 가게 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덕을 지닌 나무
나무처럼 담백하고 무심히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살 때와 죽을 때>
순간순간 산다는 것은
순간순간 죽어 간다는 소식이다
현자는 삶에 대해 생각하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용서>
용서는 가장 큰 수행이다
남을 용서함으로써
나 자신이 용서 받는다
<자신의 눈을 가진 사람>
활짝 열린 눈에는 티끌 하나도 묻을 수 없다
내 눈이 열려야 열린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지나가는 세월을 아쉬워할 게 아니라
오는 세월을 잘 쓸 줄 아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뒷모습>
눈속의 눈으로 보이는
뒷모습을 볼 줄 아는 눈을 길러라
앞모습은 허상이고
뒷모습은 실상이다.
<간소하게 더 간소하게>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비었을 때
그 단순한 충만감, 그것이 바로 극락이다.
<가뭄에 잦아드는 논물 같은>
내가 허락 받은 목숨은
가뭄에 잦아드는 논물 같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
이 단단하기 때문에 빠지고 없는데 혀는 남아있는 이유는
혀는 부드러운 덕분에 오래 남아있는 것이다.
<빈그릇에서 배운다>
항아리에 들꽃을 꽃아 보았더니
항이라가 싫어하는 내색을 보였다
빈 항아리라야 무한한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무념무상, 무엇인가를 채웠을 때보다
비웠을 때의 이 충만감을
진공묘유라고 하던가
텅 빈 충만의 경지이다
빈 그릇에서 배운다
<꽃과의 대화>
입 다물고 있는 용담 봉우리에 다가가
나는 네 방 궁금해 했더니
다음날 무심코 개울가에 나갔다가
그 용담을 보았더니
꽃잎을 활짝 열고 그 안을 보여주었다.
이쪽에서 따뜻한 마음을 열어 보여야
저쪽 마음도 열린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서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배경>
인간은 누구나
숲이나 나무그늘에 들면
착해지려고 한다
콬크리트 벽 속이나
아스팔트 위에서는
선하디 선하게 서 있는
나무 아래서는 차마 할 수가 없다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그 질서와
겸허와 미덕을 배워야 한다.
<그냥 바라보는 기쁨>
산은 내 소유가 아니기에 잃을 까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있고
내 뜰처럼 즐길 수 있다
<알몸이 되라>
진정한 알몸은 어떤 옷이든
마음대로 입었다 벗었다
어떤 연장이든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결함도 없는 완전한 인간이란
완전이라고 하는 데에도 머물지 않는 사람이다
완전이란 이미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
시시각각 새로운 창조이기 때문이다
<소유로부터의 자유>
소유란 그런 것이다.
손안에 넣는 순간
흥미가 사라져 버린다
아무 부담 없이 보면서
오래도록 즐길 수 있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사랑도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창조하는 일>
땅의 은밀한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새봄의 싹을 마련하고 있다
시절 인연이 오면
안으로 다스리던 생명력을
대지 위에 활짝 피워 보일 것이다
<수행의 이유>
성인의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종교적인 이론은 공허할 것이다
진정한 앎이란 내가 직접 체험한 것
이것만이 내 것이 될 수 있고 나를 형성한다
<생활의 규칙>
사람들과 일찍 헤어지고
자연과 가까이 하라
풀과 벌레들처럼 언젠가는 우리도 죽을 것이다
삶다운 삶을 살아야
죽음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음을 명심하라
하루 한 시간이라도
조용히 앉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습관을 들이면
하루하루의 삶에 탄력이 생길 것이다.
당신을 만드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의 생활 습관이다.
<침묵>
밖을 보려해서 안 된다.
안을 들여다 보는 데서 침묵을 캐탤 수 있다.
<달빛>
달빛이 방안에까지 훤하게 스며들어
자주 눈을 뜬다
내 방 안에 들어온 손님을 모른 체 할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앉는다
<좋은 말>
좋은 말은, 좋은 가르침은
사람의 입을 거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주 만물이 매 순간 그때 그곳에서
좋은 가르침을 펼쳐 보이고 있다
<하루 한 생각>
개체가 된다는 것은 곧
자유로워지는 것
그리고 온전한 휴식을 누릴 수 있다
새옷으로 갈아 입으려면 먼저
낡은 옷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모든 길과 소통하려면
그 어떤 길에도 매여 있지 말아야 한다
가치 있는 삶이란 욕망을 채우는 삶이 아니라
내게 허락된 인생이, 내 삶의 잔고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삶이다.
하나 속에 모든 것이 있고
많은 것 속에 하나가 있으니
하나가 곧 모든 것이고
많은 그것이 곧 하나를 이룬다
가슴은 존재의 핵심이고 중심이다
생명의 신비인 사랑도, 다정한 눈빛도
가슴에서 싹튼다.
눈뜬 사람들의 가르침은
자기에게서 시작해 세상에 도달해야 한다
궁극적인 관심은 세상에 있어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켜쥐기보다는 쓰다듬기를
곧장 달려가기보다는 구불구불 돌아가기를 좋아한다
문명은 직선이고 자연은 곡선이다
곡선에는 조화와 균형, 삶의 비밀이 담겨 있다
이것을 익히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시간을 즐기는 사람은
영혼의 밭을 가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