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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진주고. 고려대 철학과 졸업. 불교신문. 일간내외경제 기자. 아남그룹 회장 비서실장, 동우대 겸임교수. 청다문학회 회장. 남강문학회 서울 회장 역임. 저서: 재미있는 고전여행(김영사). 작은 열쇠가 큰 문을 연다(아남 그룹 창업주 자서전). 책 한 권에 소개한 한국철학 25편. 책 한 권에 소개한 중국철학 25편 외 다수
제1편) 첫사랑
첫사랑이란 무엇일까? 봄 언덕 스쳐간 한줄기 바람이었을까? 가을 강 비치던 한줄기 달빛이었을까? 사람들은 흔히 진주(晉州)를 아름다운 고장이라고 말한다. 남강이 아름답고 촉석루가 아름답다고 한다. 그 아름다운 전원도시에서 성장한 한 소년의 첫사랑을 여기 소개한다.
소년은 초등학교 졸업 4년 후 동창회에서 소녀를 만났다. 피차 열일곱 살인데, 소녀들은 작은 풋복숭아 같은 젖가슴이 불룩해지는 참이고, 여성 특유의 꽃봉오리 같은 몸매가 나타나던 때다. 이성에 대한 미묘한 느낌 때문에, 이름을 아는 남학생 얼굴을 곁눈질하면서 공연히 얼굴 붉히거나 혼자 웃기도 했다. 소년쪽도 줄리엣을 사랑한 열일곱 살 로미오 같은 때다.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간혹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고, 코밑수염이 나기 시작했고, 교복은 어깨에 심을 넣었고, 모자챙은 손때 묻어 반질반질했다. 번데기가 나비로 우화하는 바로 그런 시기였다.
여학생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백미터 선수였던 정란이와 부친이 전매청 다니던 전자인데, 정란이는 조숙하여 벌써 처녀티가 났고, 전자는 밤에 누군가와 만난다는 소문이 돌고있었다. 그러나 내 눈은 딴 곳 가서 못박혀버렸다. 한쪽 구석에 얌전히 앉자있던 혜정이 한테였다. 그는 도브의 샘가에 핀 한 떨기 수선화 같았다. 투루게네프의 '첫사랑'이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감명 깊게 읽던 시절이다. 그는 곁의 소녀들과 전혀 다른 명작 속 소녀 같은 기품이 있었다.
그의 눈은 알프스 호수처럼 고요했고, 늘어진 머리칼은 호반에 피어난 수선화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갑자기 살 맞은 표범처럼 내 몸속으로 수십만 볼트의 엄청난 전류가 짜릿짜릿하게 흘러가는 감을 느꼈다. 큐피드가 아마 이때 나의 심장을 화살로 명중시켰을 것이다. 그렇게 첫사랑은 갑자기 시작됐다.
그날 나는 다른 건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동창 중에 누가 지명을 받고 교단에 올라가 노래를 불렀고, 친구들끼리 무슨 말이 오갔는지, 어떻게 동창회가 끝났는지 모른다. 나는 '지나이다'를 사모한 '페트로비치'가 되었고, '샤롯테'를 사랑한 젊은 ‘베르테르’가 되었다. 내 신경이란 신경은 오직 혜정이에게만 집중되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혜정이의 동작 하나하나는 내 마음을 민감한 악기의 현처럼 바르르 떨리게 했다. 나는 극도로 흥분하여 더 이상 교실에 앉아있을 수 없었다. 밖에 나가 감나무에 기대어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달래다가 언제 동창회가 끝났는지 모른다. 먼발치에서 혜정이가 떠나가는 모습을 꿈결처럼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날 밤부터 나는 혜정이네 집 근처로 날라간 한 마리 나이팅게일 새가 되었다. 떨리는 음성으로 세레나데를 부르기 시작했다. 첫 곡은 도입부가 저음의 바리톤으로 시작되는 '불 밝던 창'이라는 노래다. '불 밝던 창에 어둠 가득 찼네. 내 사랑 넨나 병든 그때부터, 그의 언니 울며 내게 전한 말은, 내 넨나 죽어 땅에 묻힌 것...' 두 번째 곡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Love me tender'다. ‘당신을 나의 것이라고 말해줘요. 부드럽게 날 사랑해줘요’. 나는 지금도 진주 농대 학장 관사의 담 넘에서 불렀던 그 두 곡을 원어로 부를 수 있다. 진주의 그 어느 소녀도 혜정이처럼 밤마다 그렇게 많은 세레나데를 들으면서 성장한 소녀는 없을 것이다.
혜정이가 살던 집 울타리엔 봄에 하얀 탱자꽃이 피고, 가을엔 노란 탱자가 열렸다. 우물이 있었는데, 달밤의 우물가 소녀는 얼마나 아름답던가. 나는 혜정이를 생각하며 망경산 정상의 바위에다 '크리스티나 로젯티'의 시를 새겨놓았다. 'When I'm dead my Dearest, sing no sad song for me(내 죽거든 임이여 슬픈 노래는 부르지 마오). Plant thou no roses at my head, Nor shady cypress tree(장미도 심지말고, 그늘지는 사이프러스 나무도 심지 마오.) 내가 그 아래 주약동 보리밭에서 들려오던 뻐꾸기 울음 소릴 들으면서 혼자서 손에 피멍 들어가며 못으로 새긴 그 바위는 이제 없어져버렸다. 사람들이 봉수대를 세우면서 바위를 폭파하여 축대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이 싹틀 때 진주는 못견디도록 아름다운 도시다. 봄철 신안동 들판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너우니' 버들숲에 은어가 힘차게 꼬리 치며 올라오는 것을 보면, 바람이 당미언덕 벚꽃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 가는 것을 보면, 칠암동 대밭에 달빛이 어린 것을 보면, 진주 소년은 어느새 시인이 된다. 촉석공원 벤치에 낙엽이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뒤벼리 절벽 위에 황혼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지드의 '좁은 문'을 읽고 산책 나가서 대문에 파란 페인트 칠한 과수원집 소녀가 붉은 바탕에 검은 반점이 찍힌 산나리 꽃 옆에 서있는 걸 보면서, 진주 소년은 다정다감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안개 덮인 서장대에서 들려오던 남인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이봉조의 쎅스폰 소리를 들으면서 진주 소년은 자란다. 그래서 진주 사람은 거짓말을 업으로 삼는 국회의원조차 감성이 풍부하다.
당시 혜정이는 어떤 편이냐 하면, 내가 밤마다 자기 집 탱자울 앞에 와서 세레나데 부른 그 남학생인건 아는 눈치였다. 그를 찬미하는 남학생이 있다는 건 소녀로선 우쭐한 일이고, 세상 무엇보다 달콤한 비밀이었을 것이다. 수줍은 소녀지만 한번 얼굴을 보고 싶은 유혹도 있었을 것이다. 등교 때 다리 위에서 살짝 뒤를 돌아보곤 했다. 나는 그 때문에 또 얼마나 실낱같이 가는 용기를 얻고 흥분했던가. 나는 혜정이 옆에 나란히 걸어갈 수 있던 혜정이 친구 영자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나는 학생들이 유등(流燈)을 띄우던 개천예술제 밤 남강변 인파 속을 얼마나 쏘다녔던가. 혹시나 혜정이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때 나는 어떤 편이냐 하면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소년장사였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백미터 육상선수였다. 고교 때는 투창, 투 원판, 넓이 띄기, 백 미터 선수였다. 공부도 잘했고 성격도 명랑했다. 쉬는 시간에 교단에 올라가 미치밀러 합창단의 부드러운 목소리 흉내 내면서, 'The sun shines bright in the old Kentucky home', '켄터키 옛집'이나, 'Way down upon the Swanee river', '스와니 강의 추억'을 원어로 잘 불렀던 사람은 나중에 뉴욕에서 의사 한 우영이와 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운동이라면 운동, 공부라면 공부, 양수겸장이던 내가 혜정이 앞에만 가면 꼼짝을 못 했다. 나는 짚씨 여인 '에스메랄다'를 사모한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였다. 두 방망이 치는 가슴을 태우는 젊은 베르테르였고, 가면무도회에서 줄리엩을 만난 몬테규 가의 로미오였다.
그 속에 나는 혜정이에게 보낼 편지 인용구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던가. 혜정이에게 보낼 편지에 그럴듯한 문구를 찾기 위해 나는 연애소설은 물론 그 나이에 이해하기 어려운 책도 많이 읽었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과 '짝사랑', 헬만헷세의 '페터 카멘친트'와 '데미안',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과 '전원 교향악',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햄릿', 사머셑모음의 '인간의 굴레'와 '달과 6펜스', 토마스 하디의 '테스', 에밀리 부론테의 '폭풍의 언덕',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듀마 휴이스의 '춘희', 그 밖에 톨스토이, 토스토에프스키, 괴테, 룻소, 빅톨 유고의 책을 읽었다.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책 속의 여인이 혜정이었던가. 혜정이는 매번 '아쌰', '잔느', '줄리엩', '테스', '넨나'로 바뀌었고, 나는 매번 그 상대 남자였다. 나는 명작 속 혜정이를 만났고, 명작 속 사랑의 아픔을 느끼곤 했다. 수많은 편지가 만들어졌고, 밤마다 혜정이네 담 너머로 던져졌다. 달을 보고, 구름을 보고, 강을 보고, 산을 보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은 그 모든 감정이 편지에 담겼다.
어느덧 나는 신체 건강한 소년에서 사랑의 몸살을 앓는 몽상가로 변해갔다. 간혹 편지 대신에 담 너머로 꽃을 던지기도 했다. 그 꽃은 사람이 갈 수 없는 망진산 험한 절벽에서 꺾어온 것이다. 진주의 그 어느 소녀도 그런 위험한 절벽에서 꺾어온 꽃을 그렇게 자주 선물 받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 내 일기장이 지금도 내 서재 안 어디에 있는데, 성장하면서 글씨체가 바뀌고, 새로 배운 영어 단어 많이 인용한 그 일기장에는 망진산 절벽에다 굴을 파놓고 혜정이와 살고 싶었던 꿈이 적혀있다. 나는 '폭풍의 언덕' 남자주인공 히스크리프가 되고싶었고, 교수형 당한 에스메랄드를 껴안고 죽은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가 되고 싶었다. 한 소녀가 내 운명을 바꿔놓았다. 아마 나는 혜정이란 소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사대 체육과에 가고 평범한 체육선생이 되었을 것이다. 철학과 같은 델 가고, 나중에 신문기자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때 일기장은 고장 난 시계처럼 지금도 60년 전 시간에 멈춰 선 채 내 서재에 그대로 있다.
나는 어떤 면에서 키엘케골의 '유혹자의 일기' 주인공 같았다. 사랑을 관념에서 시작해서 관념으로 끝낸 점에서 그렀다. 다른 친구들은 누군가 여학생과 사귀고 있었으나 학교에서 가장 체격 좋던 나는 혜정이한테는 말한마듸 건네지 못하고,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나는 목숨을 걸고 성주의 따님을 보호한 중세의 기사 같았으니, 공주님에게 목숨을 바칠 수 있지만 사랑은 고백할 수 없었다. 그건 나에겐 불경이었다.
그러나 모든 턴넬은 끝이 있는 법. 혜정이에 대한 7년 짝사랑도 끝이 있었다. 그때 나는 항만사령부 229 자동차 대대 운전병이었다. 어느 날 혜정이 혼처가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자 부랴부랴 휴가 얻어 그가 근무하던 문산초등학교로 찾아갔다. 그 당시 대학에서 미식축구 선수를 하다가 친구가 자살하자 군에 입대했던 나는 몸무게 80킬로 이고, 백미터 12초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운동장 대학 미식축구 시합 발군의 성적 주인공으로 선배들과 종로 3가 음악실 쏘다녔고, 백운대 단합대회에서 막걸리 한 되를 마시어 '지리산 곰'이란 애칭도 얻었다. 친구가 자살하자 동반자살하려고 나는 사하라 사막에 주둔한 외인부대 같은 곳에 가려고 자원 입대했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 뭐르소 같은 자살을 원했다. 나는 자동차 대대 유일한 대학생 운전병이지만, 나는 내 GMC 23호 차에 자살용 실탄을 싣고 다녔고, 외출 나가서 서면 하이에리어 부대 근처 사창가 헌병을 구타하여 전 부산 지역 헌병대에 비상이 걸리게 했다.
그 와중에 혜정이의 혼처가 정해졌다는 소릴 듣고 나는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성사 되던 실연 당하던 그건 내 운명이다. 혜정이를 만나 양단간 결단을 내려야 했다. 혜정이를 만나러 갔을 때 모습은 이랬다. 군복 상하의는 풀 먹여 빳빳이 다려 입었고, 모자의 병장 계급장은 광약으로 빤짝빤작 닦았고, 군화도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매끄럽게 칠했다. 수송병과 빨간 머플러를 목에 걸쳤고, 어깨는 떡 벌어졌고, 허리는 잘록했고, 걷어올린 팔뚝은 구릿빛 근육에 덮여 있었다. 내 생전 그렇게 외모에 신경 쓴 일은 두 번 다시 없다.
문산초등학교 교정엔 푸라타나스 아래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작난감처럼 작게 느껴지던 아이들 철봉 옆에서 나는 하루 종일 화랑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다. 이윽고 하학을 알리는 종이 딸랑딸랑 울리고 재잘거리는 아이들과 함께 퇴근하는 혜정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혜정이는 '파계(破戒)'란 영화에 나오는 오도리 햅번 같았다. 수녀처럼 맑고 신성한 모습이라 곁의 촌스러운 다른 선생님과 전혀 달랐다. 그때 닦아가서 말을 걸었어야 했는데,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이들과 다른 선생님이 옆에 있는데서 그러면 혜정이 품위를 손상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래 코스모스 하늘대는 신작로 길 따라가서 칙칙폭폭 매캐한 석탄 연기 품고 들어온 기차에 혜정이가 몸을 싣자 나도 몸을 실었다.
차 안은 '오징어 땅콩이요!' '석간신문이요!' 행상들 소리 요란했고, 사실 이런 데서 통학생들은 여학생에게 편지를 전달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한 것이, 중인환시 속에서 여선생에게 수작을 건네는 건 여성의 품위를 해친다고 생각했다. 그래 기차가 주약동 터널 안에 들어갔을 때를 기다렸다. 어둠 속에서 말을 건네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기차가 어둠 속을 지나갈 때는 나는 시간만 재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차가 쏜살같이 터널을 지나갔고 나는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나는 대학 땐 미식축구 선수였고, 입대 후엔 하이 에리어 부대 사창가 깡패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랴. 차가 진주역에 닿자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남자 사회에선 맹견 같던 내가, 혜정이 앞에만 가면 작아지는 그것이 문제였다. 지극했기에 말 못한 그것이 나의 비극이다. 당시 나에게 수소탄 같은 어떤 큰 충격 가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그건 어떤 물리적 외부의 힘이 아니라 가냘픈 수선화 같은 혜정이란 뇌관이었다. 신(神)은 내 몸 어딘가에 폭발을 일으키는 미묘한 장치를 심어놓았으니, 그 뇌관이 바로 혜정이었다.
진주역 광장엔 승객 마중 나온 가족들과 여인숙 호객꾼들로 혼잡했다. 거길 지나가면 말을 걸기가 어려워지는데, 거기서도 나는 햄릿이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세요.' 그 말 한 마듸 할 용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그런데 그때 이런 답답한 청년에게 신이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망설이면서 내 자신에 대해 한없이 원망스럽던 생각을 하던 그때, 혜정이가 개찰구와 전혀 반대방향인 들판 쪽으로 걸어나갔다. 혜정이는 아마 진작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 같다. 수업 시간 내내 운동장에서 자기를 기다리던 나를, 기차 안에서 옆에 와서 안절부절못하던 그 군인이 누군지 혜정이는 알았을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밤마다 자기 집 앞에 와서 '불 밝던 창'을 부르고 '러브미 텐더'를 불렀던 그, 그가 K대 진학한 동창인 나인줄 알았던 모양이다. 기차에서 내린 혜정이가 개찰구와 반대방향으로 나간 그쪽은 들판이다. 다니는 사람이 없고, 노란 벼이삭이 늘어진 논길엔 메뚜기가 툭툭 튀는 길이다. 대지엔 감미로운 바람이 불고 산허리에는 황혼빛 노을이 짙어가고, 산기슭 외딴집 굴뚝에선 밥 짓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벼가 익어가는 논길을 걸어가는 혜정이 모습은 밀레의 그림 '만종' 같았다. 이제 소녀 시대 끝난 혜정이는 사범 학생 시절의 순결하던 모습을 벗고 숙녀티가 배이고 있었다. 노을은 혜정이의 머릿결과 노란 벼이삭을 비치고 있었다. 거기서도 나는 차마 혜정이 곁에 닥아서지 못하고, 거리를 두고 뒤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그때 혜정이가 한 지점에서 멈춰섰다. 다가와서 뭔가 말을 해보라는 눈치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그 순간 내 몸을 뒤덮은 파도처럼 거대한 기쁨과 물결이다. 그런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의 파도가 지나가자 그 다음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발이 허공을 밟은 듯 휘청거리고, 땅에서 강력한 지남철이 당기는 듯 그 자리에 못 박혀버렸다. 전신은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렸고, 입속의 침은 마르고, 가슴은 쿵당쿵당 뛰었다. 혜정이에게 뭔가 말을 던져야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목젖이 말라 마른침을 삼켜도 입에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내 생전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나는 다만 쿵쾅거리는 나의 심장의 고동을 혜정이가 들을까 오히려 그것만 걱정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혜정이를 만나기 전에 준비를 했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서 한 말, 베르테르가 롯데에게 한 말, 제롬이 마들렌에게 한 말을 미리 복습했었다. 그러나 다 무슨 소용이랴. 나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속에서 혜정이는 처음에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더니 끝내 먼 동네 불빛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 가을 어둠 속에 밀레의 '만종'처럼 혜정이가 고개 숙이고 서있던 시간이 몇 초인지 모르겠고, 혜정이와 같이 들길을 걸은 시간이 몇 분인지 모르겠다. 좌우간 내 인생에서 가장 황홀하던 그 순간은 그렇게 지나갔고, 주변은 곧 어둠에 덮이고, 먼 동네 등불은 별처럼 깜박이기 시작했다. 나는 샤롯데에게 절교 선언 당한 베르테르처럼 절망한채, '모든 게 끝났다'는 허망을 느끼며 장승처럼 어둠 속에 언제까지 서있었다. 이렇게 나의 첫사랑은 끝났고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는 유성에서 날아온 요정이었을까
. 한 여름밤 꿈이었을까. 그러나 손자까지 둔 지금 이 나이에도, 내 가슴속에는 황혼의 들판과, 어둠 속에 깜빡이던 마을의 등불과, 고개 숙이고 서있던 한 소녀의 모습이 천 권의 서사시보다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제2편) 내가 만난 절세미인
내가 하숙했던 집 아주머니는 욕지도 사람들이 초도(草島)라 부르던 섬 속의 섬이 고향이다.
허구한 날 풀이섬 경치 좋다고 노래를 부르길래 따라갔는데, 거기서 나는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절세미인을 만났다. 그런데 미녀를 만나러 간 길은 처음 내가 경험해 본 거센 물결 흘러가는 바다였다. 아주머니가 뗀마를 저어 포구에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배는 금방 가랑잎이 되었다. 거센 물살 파도 위에 올라서니 산 위에 올라간 것 같고, 밑에 떨어지니 절벽아래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위로 밀었다가 밑으로 집어던졌다가 뗀마가 사정없이 롤링하자, 나는 현기증이 나면서 배가 물결 속에다 나를 처박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횝싸였다.
나는 왕년에 K대 미식축구 선수였고, 동대문 운동장에서 다른 대학팀 연파하고 명동에서 막걸리 마시고, 종로 2가 <디세네> 음악실에서 덩치 뽐냈지만, 육지 청년이었다. 그러나 바다가 고향인 삼십 초반 아주머니는 요정 같았다. 가냘픈 손목으로 사람 키 두배나 되는 기다란 노를 저으면서, 태연한 음성으로 '여기는 섬과 섬 사이 조류가 센 곳'이라고 침착하게 일러주었다.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섬이 풀이섬이다.
초도에 가기 전에, 나는 '수정 같은 맑은 물(Christal water)'이란 단어가 문학적 수식어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풀이섬에 가보니 그런 바다가 있었다. '그리운 카프리에 섬나라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수정처럼 맑은 바닷가에 처녀들 미소가 풍기네'라는 카프리 노래가 있지만, 그 노래는 바로 초도 노래였다.
거긴 별천지였다. 둥그란 작은 만(灣)이 전부 자갈밭이라 물은 유리알처럼 투명했다. 신선한 바람은 여인의 머리칼을 날리고, 물속에 해삼과 멍게 보이고, 배 밑에서 헤엄치는 팔뚝만 한 고기가 생생히 보였다. 보석처럼 영롱한 젖은 자갈은 자르르 자르르 소리 내면서 씻기고 있고, 언덕의 커다란 동백나무 밑에 떨어진 낙화는 땅에다 붉은 카펫을 깐 것 같았다. 아마 고갱이 거친 텃치로 붉은 물감을 마음대로 칠해놓은 타이티 풍경이 이랬을 것이다.
동네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담 없는 집 몇 채가 팽나무 뽕나무 고목 옆에 서있을 뿐이었다. 그 중에 빨간 앵두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집이 아줌마네 집이었다.
장독대 옆에 있던 소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자, 딸랑! 방울소리가 주변의 정적을 깨트렸다. 싱싱한 호박줄기가 소리 없이 지붕 위로 뻗어가고 있었다.
'있나?' 언니가 기척을 내자, '언니야!' 처녀가 진흙 벽에 달린 방문을 열고 나왔다. 산에서 나무하고, 갯가에서 조개 캐어 그런가. 뗀마로 바다에서 고기 잡고, 자맥질로 미역 뜯어 그런가. 첫눈에 놀란 건 처녀의 몸매였다. 처녀 몸매가 바로 사슴이었다. 시선을 피하는 행동도 사슴 같았다.
삼단 같은 머릿결과 까무잡잡한 피부가 천부적인 남국 미녀였다. '듀마휴이스'의 소설 여주인공이 그랬을 것이다. 주변에 동백꽃 지천이겠다, 처녀가 귓가에 동백꽃 하나 꽂으면, 바로 그가 동백나무 춘(椿), 계집 희(姬), '춘희' 아닌가. 초도의 자연 미인이 오페라 속 여주인공 보다 아름다웠다.
'태양이 쓰다듬어주는 향기로운 나라에서 나 알았었나니, 남모를 매력 지닌 식민지 태생의 한 부인을’ 보들레르의 '식민지 태생의 한 부인에게'란 시가 생각났다. 초도 처녀가 보들레르의 '식민지 태생 부인' 보다 더 남 모를 매력을 지닌게 아닌가 싶었다.
처녀는 언니와 미리 연통이 되어있었던 모양이다. ‘아부지는?' 언니가 묻고, '밀감나무 심으러 산에 갔다' 동생이 대답하자, '아버지 보고 오께' 이 말 한마디 남기고 간 언니는 종일 돌아오지 않았다. 흘레 부치려고 종마를 데려온 모양 같았다. 언니가 노랠 부르며 풀이섬 가자고 한 이유가 알만했다. 욕지섬 전체에 대학 물 먹은 사람 아무도 없던 때다.
빈 집에 남은 처녀 총각은 할 말이 없었다. 총각은 마당 위에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만 보고 있고, 복숭아꽃처럼 얼굴 붉힌 처녀는 말 못 하는 누룽이 황소만 보고 있었다.
처녀가 문득 바가지로 볏짚을 주자, 소가 날름 혀를 내밀어 손을 햟얐다. 서로 친한 모양이다. '그 소 몇 살 짜리오?' 내가 물어보자, 처녀는 다만 늦가을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서리 맞은 홍시가 되었다. 나는 동박새처럼 힘차게 처녀에게 날아가고 싶었다. 수줍음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계산된 교태와 수줍음의 차이가 이처럼 크다고 느꼈다.
그러고 얼마를 있었던지 모르겠다. 어색한 분위기로 저쪽에 앉아있던 처녀가 부얶에 들어가더니 불을 붙인 모양이었다. 마당 굴뚝에서 나온 연기가 낮게 땅에 깔리고, 청솔가지 태운 알싸한 냄새가 코끝에 와서 닿았다. 잠시 달거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개다리소반에 뭘 얹어 내오는데, 이것이 오로지 나를 위해서 한 처녀가 차려준, 내 인생 최초로 받은 밥상이다. 고구마가 주식인 곳이 욕지도다. 상 위에는 달랑 소쿠리에 담긴 고구마 몇 개, 돌나물 한 접시, 간장 한 종지만 놓여 있었다.
식후에 나는 처녀가 갖다 놓은 대접에서 물을 마시고, 날개 달린 사자 그려진 비사표(飛獅標) 통성냥으로 담뱃불 붙였다. 언니가 빈 집에 처녀와 나를 남겨놓고 간 뜻은 이미 알만했다. 그래 내외한다고 저만치 쪽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처녀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저 꽃 이름이 뭡니까?' 사실 마당에 피어있는 그 꽃 이름은 유도화(柳桃花)다. 잎이 버들잎 같고 꽃은 복숭아꽃을 같아서 유도화라 부른다.
그러자 처녀가 얼굴 붉힌 채 말이 없길래, 내친김에 '같이 식사라도 하지 그랬어요?' 한걸음 더 나가보았다. 그랬더니 갑자기 처녀가 얼굴이 새빨개지며 후다닥 뒤뜰로 달아나버렸다. 그래 내가 뒤뜰로 따라가자 이번에는 앞뜰로 달아난다. 쳐다보면 얼굴 피하고, 말 걸면 후다닥 달아나니 완전 겁 많은 사슴이다. 인적 없는 앞마당에 숲매미만 울고, 지붕 덮은 감나무는 시퍼런 감만 주렁주렁 달고 있다.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 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나는 박목월의 시처럼 처녀와 아주 여기서 들찔레처럼 살아볼까, 도시의 어느 누구도 이처럼 아름다울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와 언니는 일부러 점심을 굶고 해거름에 사 산에서 내려왔다. '면에서 밀감나무 심으라 캐서...' 노인이 변명 비슷한 말을 했고, '제주도는 밀감나무 키우모, 자식 대학공부 시킨다 안캅디꺼?' 언니는 누구 들으라는 지 해설을 단다.
이렇게 풀이섬을 다녀왔다. 뗀마를 타고 바다로 나오니, 산 위에 금빛 구름 몇 가닥 하늘에 걸려있고, 진홍빛 물결 위에 등불 하나가 별처럼 깜빡였다. 처녀네 집 아주까리 장명등 이었을 것이다. 떠나는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조수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았다. 달은 과일보다 향기롭다. 동해 바닷물처럼 푸른 가을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곱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넝쿨 아래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초도에 포도나무 심어놓고, 장만영 시인의 순이처럼 그 처녀와 살고 싶었다.
배는 피아노 은반 같은 바다 위를 고요히 노 저어 가고, 은파는 왈츠를 추면서 한없이 따라왔다. 풀이섬은 시 보다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래 내가 만약 그때 그를 택하기로 결심했다면 시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노인이 심었던 밀감나무는 누구 것이랴. 바다의 소라와 전복은 누구 것이랴.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동백꽃은 해변에 붉은 카펫을 깔았을 것이다. 두사람 낙원의 연인 되어 그 속을 거닐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항상 엉뚱한 길로 빠진다. 아버지와 언니가 내 눈치를 살피며 한없이 기다렸지만, 스물세 살 도시 청년은 대답을 않았다. 그리고는 Tabula rasa처럼 마음속에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고, 황야의 백합처럼 순결한 처녀를 외면하고 서울로 올라와서는, 평생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름 없는 봉급생활자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제3편) 진주는 천리 길
다음 글은 어느 토요일 오후 절친 김 교수가 잔을 기울이며 들려준 사랑 이야기다. 그는 신문 기자 은퇴 후, 진주에 있는 모 대학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으며, 매주 한 번씩 하진(下晉)했다. 그날은 하늘이 유난히 맑아 드라이브 겸 서장대 아래 강변 산책이나 해볼까 해서 나갔는데, 강 건너 망경산엔 흰구름이 걸려있고, 신안동 들판엔 벼가 한창 자라고 있어 기분이 풍요로워지더라고 했다. 진주가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 따라 동요를 부르며 약수암 소풍을 다녔는데, 약수암 건너편에 가자, 전엔 볼 수 없던 ‘습지원’ 이란 곳이 있었다. 진주시가 새로 만든 시설인 듯했다.
차를 세워보니, 강 건너편 기암절벽은 운치 있고, 호수처럼 잔잔한 물 위에 그림자 던진 수목은 한 폭 그림 같더라고 한다. 커다란 화감암 징검다리 아랜 해오라비 몇 마리가 졸고 있어 그걸 본 순간,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두보의 시 ‘강이 푸르니 새 더욱 희다’는 구절이 생각나더라고 한다. 그때 문득 김교수는 강물 위로 훨훨 날아다니는 백로처럼 맑고 고요한 남강을 사랑하면서 여기서 살지, 무얼 하려고 50년이나 타향을 헤매었던가 하는 후회가 오더라고 한다.
그런 후회를 하면서 새삼 아름답게 눈에 보이는 푸르고 싱싱한 대밭을 둘러보니, 문득 대밭 속으로 난 오솔길이 보이고 그 끝에 한옥 한 채가 있더라고 했다. 가까이 가보니, 사립문 위에 몇 송이 배꽃이 곱게 피어있고, 두어 칸 한옥 골기와 지붕엔 파란 이끼가 돋아있었다. 마당에 놓인 소나무 분재는 용틀임한 뿌리 뻗음으로 보아 주인이 안목 높은 사람인 듯했고, 달빛 아래 그림자 던지고 있는 오죽(烏竹)도 그러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해놓고 사는가 싶어 가까이 가보니, ‘누구세요?’ 갑자기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선이 가늘고 섬세한 얼굴의 삼십 초반 여인이 나타났다. ‘분재가 하도 멋있어서...’ 정수가 변명 비슷한 말을 하다가 보니, 어디서 본 얼굴이다. ‘혹시 다도회 회원 아니세요?’ 하고 묻자, ‘어머나! 교수님이 어떻게 여길 오셨어요!’ 하고 상대가 대답했다. 한복 차림이 인상적이고, 차를 따를 때 사람 바라보는 시선이 그윽하던 기억이 났다.
‘교수님이 어떻게 여길?’ 그녀가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리다가, ‘저녁을 먹을 겸 우연히 드라이브 나오다가....' 정수가 해명을 하자 횡재나 한 듯 기뻐하였다.
‘그러시면 잠시 올라가셨다가 가세요.’ 이렇게 실내에 들어가자, 난초 화분 싱싱하게 놓인 창 밖에서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여인은 신발을 가지런히 해놓고 뒤따라 올라오는데, 어디선가 가냘프게 창부타령 구성진 노래가락이 들려왔다. ‘한송이 떨어진 꽃을 낙화라고 서러워 마라. 한 번 피었다 지~는 줄~은 나도 번연히 알건마는, 모진 손으로 꺾어~다가 시들기 전에 내버리니, 긴들 아니 슬플쏜가.'
‘마침 추어탕 끓인 게 있는데 식사 전이시면...’ 하고 권하길래 정수가 사양했지만, 여인이 상을 차려왔다. 그리고 ‘시장하시지요?’ 여인이 얌전히 앞에 앉아 두 손으로 수저를 건네주는 모습을 보자 정수는 갑자기 가슴이 뜨끔하더라고 한다. 그건 정수가 그리워하던 옛 양반집 법도다. 식기는 고태 나는 놋제품이고, 추어탕은 따끈하고 산초는 향기로웠다.
정수는 비교적 복고풍 인물이다. 눈 오는 날 서재 청소하고, 향 피우고 먹 갈고 글씨 쓰기 좋아했다. 정수의 이상적 여인은 산창(山窓)에 앉아 달빛 감상하고, 철 따라 향기로운 과일주 담그고, 텃밭에 채소 키우는 여인이다. 그러나 대학에서 만난 정수 부인은 멋대로 TV 채널 돌리고, 청소와 설거지를 시킨다. 섬기기 힘든 상전이었다. 서울 부인이 키운 왕자와 공주도 마찬가지였다. 70 넘도록 아비에게 여행 다녀오라고 봉투 한번 내민 적 없다. 정수는 다만 돈 벌어 오던 기계였다. 폐품이 되자 그들은 관심이 없었다. 외로운 정수는 남강이나 지리산 어디에 작은 집을 하나 구해 구름과 물을 친구 하며 살고 싶었다.
그런 정수에게 여인은 ‘교수님을 만나 영광입니다'라고 말해주고, ‘머루주 한잔 올릴까요?’ 술까지 권해 준 것이다. 목석인들 감동하지 않겠는가. 술을 따라준 여인의 하얀 손목이 신비하도록 곱게 느껴지더라고 했다.
‘술은 많이 마신다고 유쾌한 것이 아니고, 이렇게 한 잔 마셔도 운치가 있어야 해!’ 그 대목에서 정수는 친구들에게 그렇게 자랑했다. 하기사 대밭에서 새소리 들려오는 그런 장소에서 마시는 술이야말로 천금의 가치를 지닌 술이다. 그날 여인이 ‘진주에 오시면 꼭 저희 집에 들려주셔요' 하고 부탁했는데, '꼭''이란 그 말이 암흑 천지 비치는 달빛처럼 반갑더라고 한다.
‘좋은 인연은 기다릴 땐 오지 않고, 이렇게 의외의 곳에서 터지더라고.’ 정수가 말을 계속했다.
진주 갈 때마다 그 집에 들렀는데, 그때마다 여인은 정수를 기다렸다고 한다. 하얀 탱자꽃 향기 풍겨오던 초여름이다. 강 건너 나동면 뻐꾹새가 애절하게 울고 있었다. 평상에 상을 채렸는데, 따끈따끈한 쌀밥, 노릇노릇한 갈치구이, 사근사근 씹히는 묵은지 모두가 서울선 보기 힘든 음식이었다. 대나무 뿌리로 손잡이를 만든 백자주전자도 그렇다. 거기 담긴 머루주는 여인이 산에서 직접 따온 머루로 담근 술이다.
모든 게 너무나 고마워 정수는 ‘주인도 한잔 받으시오’ 하고 잔을 권했는데, 여인은 꽃잎이 바람에 스치듯 홍조 띤 얼굴로 잠시 흔들리더니 잔을 받았다. 그리곤 ‘선생님 명함 한 장 주실 수 있습니까?’ 하고 조용히 말했다. 정수는 '직장 은퇴한 사람이라 명함은 없다'라고 말해주고, 메모지에 손전화 번호를 적어주었다. 아마 여인은 처음부터 정수와 정식으로 통성명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저는 밝을 소(昭), 계집 희(姬), 소희라고 불러주세요’ 하고 또박또박 말하더라고 한다.
고향이 어딘지 묻자, '원래 수곡인데, 아버님이 쌍계사에 계시어 화계에서 자랐습니다' 했다. 정수는 화계란 동네 이름이 나오자 반가웠다. '화계동천은 내가 지리산에서 가장 관심이 많아 거기서 차나 키우며 살고 싶던 곳입니다.' 그러자 소희가 반가운 표정으로 ‘그러셔요? 거긴 가재가 헤엄치는 계곡에 야생 차나무와 석창포 무성한 곳이 있다'면서, '시간 내시면, 제가 쌍계사 쪽 땅을 소개해 드릴까요?’ 하더란다. 소희는 소개한 장소는 평소 정수가 마음속으로 원하던 전원 풍경이다. 어찌 그런 곳을 귀신처럼 알고 있는지 참 신기했다. 그래 당장 이튿날 그곳에 갔는데, 쌍계사 위 의신마을에서 벽소령 가는 길가였다.
바위 사이 옥류는 층층폭포를 이루고, 군데군데 석창포와 산수국이 피어있었다. 천 평쯤 되는 땅엔 야생 차나무도 있었다. 야생차는 재배차와 비교할 수 없을만치 귀한 것이다. 석창포는 선비들이 서재에서 완상 하던 화초다. 창포는 여인들이 단오에 그 물에 머리를 감던 식물이다. 정수는 전에 야생 국화 무성한 산에서 흘러내린 약수를 마시고 장수했다던 중국 장수촌(長壽村)이란 곳이 생각났다.
물소리 바람소리만 들리고 인적은 없었다. 쏘에 힘차게 헤엄치는 피라미가 보였고, 무슨 향인지 모를 야릇한 향기가 계곡에 날아다녔다. '여긴 신선의 땅 같네요. 내가 찾던 무릉도원이 바로 여기 같아요’ 정수가 감탄하자, '제가 전부터 아끼던 땅이에요' 소희가 대답했다. '그럼 신선의 땅을 소개한 소희 씨는 그동안 내가 꿈꾸던 선녀일까요?' 하자, '저는 처음부터 선생님을 사모했어요' 소희가 대답했다.
소희가 난초 수놓은 비단 누비보를 풀자, 그 속에서 선도주(仙桃酒)가 나왔다. 야생복숭아로 담근 술이다. 노을이 물 위에 황금빛을 내려놓고 있었다. 두 사람은 푸른 이끼 덮인 널찍한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잔을 비웠고, 소희는 손수건을 꺼내 정수 입가를 닦아주었다. 떨리는 손은 가늘고 매끄러운 손이었다. 정수는 시를 읊었다.
<비 맞으며 솔 모종 옮기고 구름에 싸인 대사립문 닫네. 산에 핀 꽃은 수놓은 장막보다 좋고, 뜰 앞의 잣나무는 비단휘장이 되네>
그러자 소희가 응답했다.
<고요한 향료에서 피는 연기 마주하고, 한가한 돌다리 위 살찐 이끼 바라보네. 아무도 와서 내게 무엇을 묻지 마라, 나는 일찍이 세상과 맞지 않네>
<아무도 내게 와서 묻지 말라. 나는 일찍이 세상과 맞지 않네> 뜻밖에 이 구절을 듣자, 정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평생 기다려도 이런 여인은 만날 수 없다. 원래 그 시는 동문선(東文選)에 나오는 원감국사(園鑑國師)의 시인데, 아마 소희 아버님이 선비라서 소희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정수는 꿈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소희 씨와 야생차 키우며 살면 좋겠소’ 하자, ‘교수님이 원하시면 그렇게 할게요.’ 소희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옆에 들리는 건 물소리뿐이다. 가슴에 형언할 수 없는 환희가 넘친 정수가 가만히 소희 손목을 끌어당겼다. 가늘고 하얀 손이다. 원래 손이란 온몸의 경혈이 집중된 민감한 곳이다. '아이! 그렇게 누르시면 어떡해요? 기분이 이상해요' 소희가 당황해서 손을 빼내려 했다. ‘싫어요?’ 하고 물어보니 ‘아니’ 소희가 대답했다. 그 말 듣고 정수는 소희를 끌어안았다. 여인은 하는 듯 마는 듯한 가벼운 저항 끝에 눈을 감은채 입술을 열어주었다. 떨리는 입술의 촉감은 배꽃처럼 차갑고 향기로왔다.
평소 남녀는 별처럼 머나먼 존재다. 수천만 광년 떨어진 별처럼 말을 건넬 수도 만날 수도 없다. 그러나 한번 입술이 닿은 후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가 된다.
정수는 그 뒤 진주 내려가면 소희 집에 머물곤 했는데, 거기 강돌로 꽃담을 두른 별채 앞엔 연못과 늙은 매화나무가 있었다. 창을 열면 반송(盤松)을 키우는 넓은 묘판과 과수원이 보인다.
소희 부친은 진주의 마지막 선비로 불린 수곡 성환혁 선생의 친구였다. 그 댁엔 가끔 서울서 정인보 선생이 내려와 머물곤 했다. 차의 권위자인 해인대 최범술 스님과도 친했고, 비봉루에서 서도 생활하던 은초(隱樵) 정명수 선생과도 친했다. 소희는 부친 곁에서 다도와 서예를 배웠고, 부친이 돌아가신 후 빈 집에 혼자 살았다.
소희가 새벽에 일어나 머리와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대밭을 바라보는 모습은 그림 속의 선녀 같았다. 이슬 젖은 댓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그 이상 청초할 수 없는데, 그런 풍죽도(風竹圖) 속에서 새들은 지저귀고, 여인은 밝아오는 남강의 여명을 바라보았다. 정수는 소희를 이당(以堂) 김은호 화백의 미인도에 나온 여인으로 생각했다.
소희 집에는 청화백자 몇 개와 투박한 조선 백자와 가야토기가 있었다. 원래 자기(瓷器)를 좋아한 모양이다. 어느 날 촉석공원 아래 골동가게에서 커다란 수반을 구해온 소희가 연을 심자, 7월이 되어 연잎 속에서 연꽃이 피어오르자 집 전체가 청정한 향기에 덮였다. 두 사람 다 연꽃을 좋아해서 정수는 심복(沈 復)이 쓴 부생육기(浮生六記)란 책을 인용해서, '밤에 연꽃 봉오리 속에 차봉지를 넣어두었다가 아침에 그 차를 마시면 향기가 좋다'라고 소희에게 알려주었다.
소희는 텃밭에서 나온 채소나 과일을 상에 올리곤 했는데, 붉은 딸기와 노란 비파를 백자 접시에 담아내면 예술품 같은 격조가 있었다. 여름비가 그치면 두 사람은 죽순을 따러 대밭을 돌아다녔다. ‘죽순회엔 은어가 제격인데 올해는 은어가 귀해요!' 소희는 은어가 귀하다고 푸념하곤 했다. 소희는 계절에 민감한 여인이다. 소쿠리에 딸기나 자두, 무화과나 복숭아 담기면 여름이고, 감이나 배가 담기면 가을이고, 생강과 통계피 넣은 수정과가 나오면 겨울이다.
진주는 남해와 지리산을 끼고 있고, 넓은 진양호란 호수까지 있다. 항상 싱싱한 해산물과, 참외 수박 천지가 되고, 온갖 해산물과 채소와 과일이 풍요로운 진주 여인은 음식을 잘 만든다. 소희는 아침상엔 검은깨 뿌린 잣죽을 내고, 저녁은 곰취나 산마늘 같은 산채를 내었다. 간혹 다진 조갯살 넣고 지진 부추전과 오가피잎 튀김도 나왔다. 원래 음식은 인간 생명의 원천이고, 부엌은 신성한 곳이다. ‘남자는 절대로 부엌에 들어오면 안 돼요’ 소희는 부엌에 들어온 정수를 내쫓곤 했다. 진주의 옛 풍습이 그랬다.
간혹 두 사람은 배를 타고 강 건너 약수암으로 갔다. 정수 취미는 불경 외우고 목탁 두드리는 것이다. 부드러운 물살을 가르며 안개 낀 강을 건너가면 피안으로 건너가는 느낌이었다. 소희는 진주 출신인 강희백의 손자 강희안이 그린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그림 배경이 약수암 절벽이라고 했다. 부친한테 들은 이야긴 듯한데, 강에 가보면 그 말이 옳다 싶었다. ‘우리 사랑이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말게 해 주세요’ 두 사람은 진양호에 가서 자라를 방생하면서 용왕님 전에 빌기도 했다.
간혹 매화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산청엔 ‘산청 삼매(三梅)’로 불리는 매화나무 세 그루가 있다. 단속사(斷俗寺) 정당매(政堂梅), 예담촌의 원정매(元正梅), 산천재의 남명매(南冥梅)가 그것이다. 정당매는 폐허인 단속사지(趾)에 있는데, 단속사에서 공부한 강희백이 나중에 정당문학(政堂文學) 대사헌이 되었다고 정당매로 부른다. 원정매는 고려말 하즙(河楫)이 남사마을에 살면서 심은 매화다. 그곳은 지리산에서 흘러온 강이 집 뒤에 있고, 앞엔 하마비가 세워져 있는데, 7백 년 된 고매(古梅)는 고사하여 죽은 상태였다. 소희는 아버님이 산천재(山天齋) 선비들과 친했던 때문인지, 남명매를 제일 좋아했다. 남명매 옆에 가서 나무를 꼭 껴안곤 했고, 꽃잎을 따와서 매화차를 마시기도 했다.
만추가 되면 예술제가 열리는 진주는 삼바 축제 열리는 리오 데 자네이로처럼 들뜬다. 거리거리에는 국화 화분이 놓이고, 성은 단풍으로 물든다. 유등은 남강을 수놓고, 좌판에 삼천포 해산물과 너우니와 하촌 배와 사과, 포도 등 과일 푸짐한 수백 대 불 밝힌 포장마차가 길에 가득하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소희가 이형기의 <낙화>를 읊으면, 정수는 ‘그것은 먼 벌판에 눈이 오는 소리다. 차라리 그것은 먼 벌판에 비가 오는 소리다. 강물처럼 나직이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다’ 최계락의 <낙엽>을 읊었다. 두 사람은 진주 출신 이형기와 최계락 시인을 존경했다.
시내를 다녀온 밤. 둘이 밤늦게 시와 예술을 논할 때면 달빛은 대숲을 끝없이 헤매었다. 소희는 남강변에 핀 희귀한 춘란이었다. 곁에 닥아갈수록 향이 강했다. 아무도 모르는 춘란을 찾아낸 정수는 더 이상 쓸쓸할 틈이 없었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은 아름답다, 혹은 슬프다고 한다. 사랑은 대개 끝이 있어 그런지 모른다.
두 사람이 차 마실 때면, 풍로에서 꼬불꼬불 허공으로 올라가는 연기가 전서(篆書)처럼 신비로웠다. 차 마실 차반(茶盤)은 소희 아버님이 남기신 참나무 매목(埋木)으로 만든 차반을 사용했다. 그 차반은 오래 동안 땅 속에 묻혀서 지열로 석탄처럼 광택이 나는 보물급 차반이다. 찻잔은 진교 백련리(白蓮里) 백자 잔인데, 백련리는 일본 국보 찻잔 '이또다완'(井戶茶碗)이 출토된 곳이다. 백련리란 동네 이름은 우리말로 새미골인데, 정호( 井戶)의 우물 정(井) 자는 우리말로 샘을 뜻한다. 거기서 16세기 전통 막사발 굽던 가마터가 발견되었다. 차는 주로 최범술 스님의 죽로차를 마셨는데, 죽로차는 효당이 만해 한용운 스님과 소설가 김동리 씨의 형 김범부(金凡父) 선생과 담론 할 때 마시던 차다.
진주는 가야와 백제와 신라 세 나라 국경을 접했던 요충지다. 돌로 축성한 성이 있고 골동품이 흔하다. 고령에서 하동까지 무진장한 고령토 광맥이 뻗어있고, 가마터가 많다. 진주와 합천은 박물관이 있고, 안의 화림동(花林洞)에는 강 굽이마다 귀래정(歸來亭), 농월정(弄月亭), 구로정(九老亭) 같은 멋진 정자가 있다. 합천 어느 식당에서는 개 밥 주던 그릇이 나중에 가야토기로 밝혀졌고, 사랑방 문짝 한지를 새로 바르려고 뜯어내자, 배접 한 두 겹 한지 속에서 대원군의 귀한 난초 그림이 나왔다.
사람들은 흔히 진주를 천년 고도(古都)라 부른다. 소희는 그 천년 고도 진주가 피운 꽃인지 모른다. 소희는 검소하면서도 월궁항아처럼 청초했다. 가난을 탓하지 않았다. 가을이 깊어지자 정수와 소희는 빨간 홍시 몇 개 까치밥으로 남겨두고 감을 따서 처마에 곶감을 매달았다. 소희는 산에서 머루를 따와 머루주 담고, 집 뒤 뽕나무에 열린 오디로 오디주를 담갔다. 둘 다 몸만 움직이면 만들 수 있는 것들이다. 늦가을이라 두 사람은 배추와 무를 김장독에 담아 움에 묻었다.
그런데 물처럼 빠른 게 세월이다. 배꽃 핀 봄에 소희를 만났는데, 어느덧 낙엽 떨어지는 가을이었다. 정수는 촉석공원 아래 골동 상가에 갔다가, 우연히 오래된 청옥 쌍가락지를 발견했다. 옥 중에 푸른 옥을 비취라고 한다. 비취 푸른빛이 너무나 맘에 들어 그 쌍가락지를 사 온 것이 탈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나는 소희, 하나는 본인 것으로 생각하고 정수가 사 온 그 비취 쌍가락지를 보자, 소희는 한참 슬픈 눈빛으로 정수를 바라보더니 느닷없이 정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소희의 몸은 온통 흥분으로 떨리고, 난초같이 깨끗한 머리칼은 정수의 뺨을 간지럽혔다. '저는 산목련처럼 오래 동안 혼자 살았어요. 그러다 늦게사 선생님을 만났는데... ' 소희는 말을 더듬거리며 흐느꼈다. ‘교수님을 영원히 사랑해도 되지요?’ 목멘 음성으로 몇 번이고 정수에게 다짐을 하기도 했다. 은쟁반 같은 달이 허공을 비치는 깊은 밤, 정수는 꽃을 다루듯 소희의 얼굴을 만져주며 애잔한 눈가의 이슬을 닦아주었다. '오늘 밤은 왜 이러실까? 무슨 일 있어요?' 정수가 물어보자, '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제가 잠시 부엌에 나갔다가 방에 돌아오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더라고요. 교수님은 유리창 안에 보이는데,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소리쳐도 모르고요. 잠이 깨어 달이 지는 새벽까지 울었어요' 소희가 대답했다. '우린 영원히 함께인데, 무엇이 우릴 갈라놓겠어요?' 정수가 아무리 달래고 위로해도 소희는 그날 흐느낌을 멈추지 않더라고 했다.
그런데 사건은 정작 다음 주 정수가 진주에 내려갔을 때 일어났다. 차를 몰고 소희네 집으로 갔는데, 오솔길 입구에 전에 보지 못한 통행금지 팻말이 걸려 있었다. 팻말엔 '여기 도로 개설 중에 나온 오래된 분묘의 연고자는 시청 도로과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무덤에서 나온 청화백자와 참나무 매목(埋木)으로 만든 차반(茶盤)과 한쌍의 비취가락지는 박물관에 보관 중이니 그쪽으로 연락 바랍니다'라고 쓰여있었다.
그 팻말을 본 순간 정수는 김시습의 금오신화(金鰲新話) 속 <만복사저포기>란 소설이 떠올랐다고 한다.
「만복사저포기」 내용은 이렇다. 전라도 남원에 사는 총각 양생(梁生)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만복사 구석방에서 외로이 지냈다. 배필 없음을 슬퍼하던 중에 부처님와 저포놀이를 해서 이기고, 그 대가로 아름다운 처녀를 얻었다. 처녀는 왜구의 난 중에 부모와 이별하고 정절을 지키며 3년간 궁벽한 곳에 묻혀 있으면서 배필을 구하던 터였다. 둘은 부부관계를 맺고 열렬한 사랑을 나누다가 어느 날 다시 만날 걸 기약하고 헤어졌는데, 양생은 처녀가 시킨 대로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리다가 딸의 대상을 치르러 가는 양반집 행차를 만났다. 양생은 거기서 자기와 사랑을 나눈 여자가 3년 전에 죽은 그 집 딸의 혼령임을 알았다. 그 후 양생은 여자를 그리워하며 다시 장가들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살았는데, 그 마친 바를 알 수 없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났다. 잠시 후 한 친구가 '결론을 김시습의 소설로 끝낸 건 잘한 것 같아. 그런 면피용 배려가 없으면 현실은 복잡해질 거야...'하고 말했고, 한 친구는 '진주의 대밭과 춘난처럼 청초한 진주 여인의 멋을 잘 살렸구먼' 공감을 표했다. 한 친구는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해서>를 인용하여,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진주 여자 만나고 싶었지?' 하면서 농담을 걸었다. 정수는 '황금심이 부른 <진주는 천리길>이란 노래 있잖아? 그 노래 가사처럼 이젠 진주라 천리길이 우리에겐 머나먼 타향이 아닌가, 그래 그리운 진주를 배경 삼아 천년고도의 사랑을 한번 이야기 해본거지'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날 모임은 끝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