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다른 사람에게 묻는 것을 좋아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서경(書經)』에는 '다른 사람에게 묻는 것을 좋아하면 부유해진다.'라는 말이 있다.
『예기(禮記)』에서는 "혼자 공부해 친구가 없으면 고루(孤陋)해져 견문이 좁아진다"고 했다. 대체로 갈고 닦아 서로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볼 때, 문을 걸어 닫고 독서에 열중해 자신의 마음이 가는 곳이 곧 스승이라고 생각하다가, 여러 사람들과 모여 앉아 토론하면 잘못과 착오를 드러내는 자가 많다.
『곡량전(穀梁傳)』에 공자우(公子友)와 거나(莒拏)가 서로 다투자, 주변 사람들이 '맹로(孟勞)'라는 말을 공자우(公子友)에게 일러 주었다.
'맹로(孟勞)'는 노(魯)나라의 보도(寶刀)로 『광아(廣雅)』에도 나온다.
그런데 최근 제(齊)나라의 강중악(姜仲岳)이라는 사람이 "'맹로(孟勞)'는 공자(孔子)를 모신 측근으로 성은 맹씨(孟氏), 이름은 로(勞)이다.
힘이 센 사람으로 나라의 보배로 여겨졌다"고 주장했다.
나(안지추)는 그와 괴로운 논쟁을 벌여야 했다.
당시 청하군수(淸河郡守)로 형치(邢峙)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대의 석학(碩學)이었는데, 나를 도와주어 그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강중악(姜仲岳)은 얼굴이 붉어진 채 굴복했다.
또 『삼보결록(三輔決錄)』에, "한(漢)나라 영제(靈帝)가 궁전 기둥에 '당당하도다! 자장(子張)이여, 경조(京兆)의 전랑(田郞)이 그와 같구나!'라고 썼다"는 기록이 나온다.
『논어(論語)』를 인용하여 4언(四言)으로 짝을 맞추어 경조(京兆) 사람인 전봉(田鳳)을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재사(才士)가 이것을 두고, "당시 장경조(張京兆)와 전랑(田郞) 두 사람만이 당당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처음 내 해석을 듣고 크게 놀라더니, 나중에는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강남(江南)의 한 권문세족(權門勢族)이 잘못된 판본의 「촉도부(蜀都賦)」 주(注)를 읽고, '준치(蹲鴟)는 토란(芋)이다'에서 우(芋)가 양(羊)인 줄 알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에게 양(羊) 고기를 보내자, 답장에 "준치(蹲鴟)를 나누어 주신 은혜"라고 썼다. 온 조정이 모두 그 답장의 내용에 놀랐지만,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이 지난 뒤에, 그 일의 내용을 찾아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북위(北魏) 시대 낙양(洛陽)에 있을 때 뛰어난 학자인 어떤 중신(重臣)이 새로이 『사기음(史記音)』이라는 책을 얻은 적이 있다.
이 책에는 잘못된 내용이 제법 많았다.
그래서 '전욱(顓頊)'이라는 글자 중에 욱(頊)은 당연히 '許錄反'이어야 하는데 잘못 되어 '許緣反'으로 되어 있었다.
결국 조정의 선비가 "예전에는 전욱(專頊)이라고 잘못 읽어 왔으나, 이제는 전현(專翾)이라고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람은 높은 명성을 얻고 있어 모두 망설이지 않고 믿고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 또 다른 고명한 유학자(儒學者)가 어렵게 연구해본 결과 비로소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서(漢書)』 「왕망전(王莽傳)」찬(讚)에는 "자색(紫色)을 정색(正色)으로 하고, 음성(淫聲)을 정성(正聲)으로 하며, 윤달을 정위(正位)로 했다"고 하여, 거짓으로 진실을 혼란스럽게 할 뿐임을 말하였다.
예전에 내가 여러 사람과 이 책에 대해 토론하면서, 왕망(王莽)의 용모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스스로 사학(史學)에 대해 자신감이 있고 명성도 매우 높은 어떤 한 뛰어난 선비가 "왕망(王莽)은 생김새는 올빼미 눈에 호랑이의 입 모양을 갖추었고, 보랏빛 피부에 목소리는 개구리 울음과 같다고 했다."라고 풀이했다.
또 『예악지(禮樂志)』의 '급태관동마주(級太官挏馬酒)'라는 구절에 이기(李奇)는 "말의 젖으로 빚은 술이다. 종동(揰挏)하여 만든다"라고 주(注)를 달았다.
여기에서 '종동(揰專)' 두 글자는 모두 수(手)를 따르고 있다.
'종동(揰專)'은 당도정동(撞擣挺挏)하는 작업을 말하는데, 오늘날 낙주(酪酒)를 만들 때 또한 이처럼 한다.
그런데 지난날 학사(學士)들은 오동나무를 심을 때 태관(太官)이 마주(馬酒)를 담가 숙성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학문의 고루(孤陋)함이 여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 안지추(顔之推), 『안씨가훈(顔氏家訓)』 「면학(勉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