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226/0828]‘모태효자母胎孝子’인 정조正祖임금

[알록달록]

[찬샘통신 226/0828]‘모태효자母胎孝子’인 정조正祖임금

지난 주말, 동창 중에 으뜸 가는 ‘빅 마우스Big Mouth’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션(7080기타리스트·기타 하나만 있으면 열 시간도 넘게 진행 겸 공연을 하는 아주 특별한 재주를 가졌다) 친구가 다녀갔다. 얼마나 유능하면 현대건설 해외근무 20여년을 마치고(두바이에서 많이 있었기에 두바이윤이라 부른다), 귀국후 포스코에 임원으로 입사, 남미에서 3년에 활동하다 계열사 CEO까지 역임했을까. 아버지를 뵙더니 거실에서 넙죽 절도 잘 한다. 아버지께 하던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저는 이제사 효도를 하고 싶은데 아버지는 30년 전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자식도 알아보지 못한 채 요양병원에 계십니다. 아버지가 목수木手셨는데 남원 이백에서 ‘윤대목’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는 친구가 부럽습니다. 아무쪼록 강녕하십시오.”아버지도 딱히 할 말이 없는지라 “옛말에도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걸요”라고 했다. 모두 아시겠지만, 고사성어‘풍수지탄’은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바람이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주지 않는다’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어제는 모처럼 한갓지게 책 읽는 하루였다. 최근 발견한, 아주 특이한 어느 기업의 사외보‘보보담步步譚’ 과월호를 종일 뒤적거렸다. ‘조선왕릉’특집 중 강석경 작가의 ‘사도세자의 융릉’을 읽는데, 조선 정조正祖임금의 효성孝誠에 대한 대목이 여러 곳에 있었다. 며칠 전 다녀간 친구의 ‘풍수지탄’이 떠올라, 이 새벽에는 ‘모태효자母胎孝子(내가 만든 조어造語로 특강 중에 자주 써먹는 단어이다)’였던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2007년 방영된 ‘이산’이라는 역사드라마를 기억하시는지? 영조英祖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할바마마, 아바마마(사도세자)를 살려주세요’라며 울며불며 매달리던 11살 왕세손 이산(李祘은 정조의 휘諱이나 본인은 나중에 ‘이성’으로 부르라 했다)의 모습. 그때가 1762년 윤5월 13일, 창경궁 휘녕전 뜰앞이었다. 뒤지에 갇힌 아버지는 8일만에 숨졌다. 얼마 전, 송강호가 열연한 영화 ‘사도’도 보셨으리라. 조선 500년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의 현장, 이른바 임오화변壬午禍變. 세자빈이었던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閑中錄』에서 ‘세손의 애통해 하는 곡소리는 차마 들을 수 없었으니 누군들 감동하지 않았으리오’라고 기록했다.

9살 때부터 스스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산은 그 충격으로 두 달 동안 한 줄의 일기도 쓰지 못했다.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이름의 이 일기는 세계가 유례가 없는, 151년간 지속된 국왕의 일기이다. 서양의『안네의 일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당연히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당당히 등재되었다. 그 사건은 어머어마한 트라우마가 되어 죽는 순간까지 그 고통이 이어졌다. 두 달 후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하며‘어떻게든 할아버지의 눈에 들어 이 나라 임금이 되어, 아버지 사도세자의 한을 풀어주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애민군주愛民君主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로부터 14년 동안, 25세에 임금으로 등극하기까지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살아남은 세손世孫은 노론세력들에겐 눈엣가시였다. 세손이 왕이 된다면 사도세자를 죽음으로까지 이끈 자신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세손을 어떻게든 없애야했다. 동궁전에 자객을 보내고, 불을 지르는 등 벼라별 음모가 많았다. 이산은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무술武術(활쏘기, 칼싸움, 말타기)을 연마하고, 학문에 매진했다. 27명 임금중 문무文武를 겸비한 유일한 임금.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 못지 않은 애민군주이자 호학군주好學君主였다. 그러기에 자신이 직접 지은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 100책을 남겼다(홍재는 정조임금의 호). 말하자면 천재天才였다. 조선의 창업자인 할아버지 이성계 못지않은 명궁名弓이기도 했다. 50발중 45발이 과녁에 적중한 ‘성적표’가 수원 화성박물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백발백중일 것이나 5발은 기죽은 신하들을 생각해 일부러 과녁에 빗나가게 쏘았다던가). 정조의 명으로 편찬한 『무예도보통지』는 2017년 북한의 세계기록유산 1호로 등재되었다.

오죽했으면 그 14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 『태양의 제국』등의 소설, ‘이산’등의 드라마, ‘사도’등의 영화와 뮤지컬 등이 30여편이 될까? 그만큼 다이내믹하고 서스펜스한 세월을 이겨냈기에, 1776년 3월 10일 왕으로 즉위하면서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천명했을 것이다. 그러고는 종로구 연건동(지금의 서울대병원)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祠堂인 ‘경모궁景慕宮’을 짓고 한 달에 한번 이상 찾아가 오열했다고 한다. 이덕무李德懋의 기록에 의하면, 경모궁에서 흘러나오는 정조 울음소리는 사람의 피와 살에 달린 모든 물기가 몸 밖으로 나오는 듯한, 낮고도 끈끈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5월이 오면 근 열흘간 말을 잊고 근신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모두 눈치를 보며 쉬쉬하여 대궐 안이 적막할 정도로 고요했다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

무덤도 폐세자이기에 일반인들과 같은 ‘묘墓’로 ‘수은묘’인 것을 ‘영우원’(원은 세자나 세자빈의 무덤의 명칭)으로 승격시켰으나(수원으로 천장한 이후엔 ‘현륭원’으로 개명), 끝내 왕으로 추존시키지는 못했다. 정조의 그 한은 고종임금이 풀어줘 ‘장조莊祖’로 추존하고 무덤도 ‘융릉隆陵’이 되었다. 임오화변 이후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에게 3년 동안 한결같이 안부편지를 썼던 정조가 모태효자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어머니 회갑을 맞이하자 수원행궁으로 모셔가 아버지 릉에 같이 참배한 후 7박8일 도안 회갑연을 벌여준다. 지구상에 어떤 임금이 자신의 어머니 회갑연을 이처럼 성대하게 베풀어주었을까? 오죽했으면 아버지 천장遷葬을 ‘궁에서 100리가 넘는다(80리 내에 쓰게 되어 있다)’며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내가 수원까지 80리라면 80리”라는 몽니를 부려가며 옮겼을까? 하여 생긴 ‘수원 80리’는 옹고집을 지칭하는 속담으로, 수원지역에서는 지금도 촌로들이 사용하고 있다지 않은가.

본인이 풍수風水공부를 하여 찾아낸 명당으로 아버지의 묘를 옮기는데도 정조는 정성을 다했다. 능 앞에 설치하는 문석인文石人의 얼굴조차 자신의 얼굴과 닮게 하라 했으며, 능역 주위에 나무를 10년 동안 500만 그루가 넘게 심었다던가. “내가 이렇게 정성을 들이는 것은 백성들을 괴롭게 하거나 경비를 허비하려는 게 아니고 나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려고 하는 것”이라는 고백의 기록도 있다. 아아, 끝간 데를 모르는 정조임금의 효심을 우리가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알면 알수록 그저 놀랄 뿐이다. 하늘이 낸, 모태효자 정조임금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원찰願刹인 용주사龍珠寺를 근처에 세우고, 죽어서도 아버지를 지키려는 듯, 융릉 밑에 조성한 건릉健陵은 정조의 무덤. 그러니 우리는 융릉, 건릉 별도로 부르지 않아야 한다. ‘융건릉’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아들인 순조純祖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아버지의 릉 곁에서 지내고자 지은 수원행궁과 화성華城. 돌연한 죽음(결론이 날 수 없는 정조의 자연사과 독살 논란은 지금도 여전하다)으로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5.4km 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우리의 아름다운 유산이 되었다. 꼭 한번씩 돌아보시라. 정조는 천장한 후 해마다 한번씩 성묘省墓를 단행, 죽을 때까지 무려 13번의 ‘원행園行(현륭원 행차)’를 한다. 회갑잔치와 원행에 대한 과정이 모두 글과 그림으로 ‘의궤儀軌’에 기록되어 있기에, 오늘날 그 행사 전반을 재현할 수가 있고, 수원시에서 ‘효원孝園의 도시’로 내세우게 된 것이다. 궁으로 돌아갈 때에도 고개마루에서 아버지 릉을 몇 번씩 바라보며 멈칫멈칫했다하여, 그 고개를 ‘지지대遲遲臺’라 했다. 지지대휴게소를 지날 때에는 그 유래를 생각하며 어머니 자궁에서부터 효자인 '모태효자' 정조임금의 효심孝心을 부디 한번씩 떠올려보시라.

[따르릉길]

부모님께 효도를 못해보고 돌아가시어 할말이 없소이다
아버님은 36년전 어머님은
2014년4월14일08시43분에 돌아가셨지요.
지금도 어머니 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나려하는건 불효자의 서러움이겠지요.
박인로의 조홍시가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 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세 글로 설워하나이다.

우리엄마 홍시감을 좋아하셨는데
조그만 찻수저로 박박 긁어 얇은 껍질만 남을 때까지 드셨는데ㆍ

효도는 말이 아닌 실천을 해야하는데 주위의 친구들이 부럽기만하다
영록이.상수.치덕이 너무나 효심깊은 친구들
품어가 반길이 없으니 이를 설워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