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시집간 딸을 그리며
荒煙涼雨助人悲,(황연량우조인비) 황량한 들판 연기, 차가운 비에 더욱 서글퍼지는 이 마음.
淚染衣巾不自知.(루염의건부자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옷깃이 다 젖는다.
除卻春風沙際綠,(제각춘풍사제록) 그 옛날 모래톱 파란 풀이 봄바람에 흔들리던 거 말고는,
一如看汝過江時.(일여간여과강시) 네가 강을 건너 시집가던 그때 본 그대로구나.
―'送和甫至龍安微雨因寄吳氏女子(송화보지용안미우인기오씨여자) 오씨 집안에 시집간 딸에게 시를 보내다'·왕안석(王安石·1021∼1086)
엄부자모(嚴父慈母)라 하듯 아버지는 대개 무심한 듯 과묵하고 뚝뚝하시다. 살가운 정과는 거리가 멀다. 옛날이라고 딸 바보, 아들 바보가 왜 없었겠는가.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던’ 그 손길에 무슨 부와 모의 차별이 있었으랴만 자식 사랑을 내색하지 않는 걸 미덕으로 여겨온 전통을 어쩌겠는가.
그런 관행을 감내하기가 버거웠을 시인, 이곳 나루터에서 벌써 두 번째 이별을 맞는다. 이번에는 동생이 벼슬하러 가는 길이니 화기애애한 환송연이 될 기회. 하지만 막상 현장에 당도해보니 황량한 풍광만 시야에 들 뿐, ‘그 옛날 모래톱 파란 풀이 봄바람에 흔들리던’ 장면과는 딴판이다. 문득 시집가는 딸과의 이별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주르륵 눈물이 흐른다. 시제를 간략하게 달았지만 이 시의 원제를 풀면 ‘용안(龍安) 나루터에서 아우 왕안례(王安禮)를 전송하는데 부슬비가 내리기에 그 편에 오씨 집안으로 시집간 딸에게 시를 보낸다’라는 의미가 된다. 시제를 본문만큼이나 길게 쓴 의도, 그것은 아마 딸과의 추억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아비의 애틋한 마음을 담아내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 왕안석(王安石·1021~1086)은 송나라 때 개혁정치를 주장한 인물로 흔히 조선시대 조광조(1482~1519)와 비교되는 인물이다. 부국강병과 인재양성을 목표로 내세웠던 신법(新法)을 실현코자 많은 파란을 겪었던 그는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종산(鐘山)에서 여생을 보냈다. 학자요 문인이기도 했던 그는 구양수(歐陽修)를 스승으로 하여 명석하고 박력 있는 문체를 만들어 냈다. 문장의 대가가 되어 당· 송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치기도 한다. 자연을 읊은 시가 특히 우수하며, 유교와 불교의 경학에도 밝았다. 불교에 심취해 많은 경전을 열람하고 당대의 고승들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首(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4년 05월 03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