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이 다 젖었는데 어느 틈에 숨어있었을까
멀고 먼 직립의 시간을 죄다 건너왔을
이 하염없는 적요의 손(手)들
단지만 오래 묵은 장 뜨는 줄 알았는데
세월에 젊은 날을 담아 기억을 밀봉한 당신,
적막을 두드려 시큼한 습탁濕拓을 얻네
잠시 비는 생각에 젖을 물렸을까
우연히 내게 온 것들, 잘 가시라 하니
술잔에 쮜어드는 비릿한 맨발
그녀처럼 스며들어 어쩌자고 얼비치 지
떠난 애인은 앞모습이 없어서
다시 찾아와 말 걸고 눈짓한들
지느러미 파닥이던 세월 돌아올 수 없지만
마음을 팽개쳤던 이들은 속으면서 아네
서둘러 떠났던 날들이 새삼스럽게 찾아오고
그러니까 잊혔던 날들이 등을 밝히면
햇살처럼 붙잡지 못한 것들 몰려오고
출렁거려도 넘치지 않는 바다로 온다는 것을,
빗줄기도 아직 제 할 일 남았는지
입술 새파래진 공중에 대고 끝없이 몸 열어라 하지만
너는 군식구 너는 군식구
비 그친 봄밤이 해찰거리는 것은
이 공중의 필체를 포함하여
달빛이 두드려 건탁한 청춘의 유뮥遺墨*까지
반쯤은 비의 살 속에서 떠보라는 것이네
*유묵遺墨: 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
[허공의 신발], 천년의시작,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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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탁본 / 이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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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30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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