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끝나버린 아침 같았다
어디, 평화 같은 곳을 찾아보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하루가 나만 모를게 지나가버린
공기도 꿈도 보이지 않는 카페에 앉아 우리
그 이름의 커피를 마신다
너무도 구체적인 카페인데 공기와 꿈을 분쇄하는 기계가 있다
간밤 귓속을 헤집던 해로운 곤충들
내 잠 속을 갉아먹던 가려운 입술과 열매를 따는 소녀들
불빛 시름한 농장에 누워 빈 자루처럼 가벼운
수확량의 무게가 쥐똥처럼 귀여워 우리는 곧 타 죽을 거야
드럼통 속의 원두처럼 쪄 죽을 거야, 늙은 나귀가 두드린다
땅은 무르고 발굽은 부드러워 서로를 아파하지 않고
분쇄되는 중이다
찻잔은 고요하고 입김을 바라지 않으며 차분히 식어가는 중이다
무릎 위에 작은 머리를 하나 앉히고 쓰다듬는 여자를 본다
아이는 울다 지쳤고 제 얼굴보다 슬픔이 커
흐르는 눈을 감아야 했다
눈을 처음 봤다는 남자가 주머니 가득 담으려던 마음을 헤아리면
물은 탁하고 바지를 적시며 벌컥 마시지 못한다
머리맡의 베개만이 내 무릎을 베고 자던 날이 많았다
헤진 무릎을 안고 저물어가곤 했다
하루가 모두 닳아 만질 것이 없었다
주인의 죽은 손을 핥다 끝내 하늘을 보던 늙은 개도 그랬다
당신은 해야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원두처럼 단단한 아침이다
도무지 내일이 살아질 것 같지 않아, 어디에 뒀지,
어제 버린 약
벌써 지겨워요, 무엇이
나를 달래겠지요, 내가
무엇을 달랠 수 있을까요,
입술은 녹지 않고
커피를 머금고서
꿈을
마시지 않는다
내버려둬요, 제발
가만히 두지 말아요
원두는 입술이 가진 채
영원히 말하지 않는다
당신은 해야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문학동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