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상블라주* [김재환]
ㅡ죽은 맛 죽을 맛
아침에 일어나
빽빽거리는 알람을 가장 먼저 죽이는 너
뱃속에서 신호가 왔다
변기에 앉아 어제를 잠시 떠올린다
쌀 시금치 아보카도 감자 풋고추 오이 대파 김 당근 우유 배추 방울토마토 열무 돌나물 커피 빵 돼지고기 상추 마늘 물 참치…… 누에고치 양털 뱀 거위 물소 악어 송아지……
하루 동안 네가 먹고 입으며 살해한 이름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그러나 사는 동안 저들 중 누구도
(대체 언제까지 나를 이렇게 죽일 참이냐고)
너도 한번 죽어보라고 물어뜯지 않는 그들
길을 걷다 거울을 보면 너 대신 걷고 있는 그들
너의 몸에서
네가 죽이고 삼킨 수많은 색깔이
에일리언처럼 왈칵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밤
아픈 무릎에서, 반쯤 삐져나온 상추를 뜯어낸다
귀를 후비다 풋고추 반 토막을 달팽이관에서 꺼낸다
내일은 너의 왼팔에서 덜 씹힌 마늘 반쪽 불쑥 만져지겠다
퇴근길 전철, 너의 구두 속에도
밑창 대신 소화 덜된 배춧잎이 두 장 고여 있다
그러니까 너는
거리에 전시 중인, 최신형
이동식 공동묘지야
내 말 맞지?
* 아상블라주(Assemblage) - ‘모으기' '집합' '조립'을 뜻하는 미술용어로 평면회화에 삼차원성을 부여하는 기법.
- 웹진 『시인광장』 2024년 7월호 발표
첫댓글 10년 전쯤 시사랑 정모에 손님으로 오셔서 수줍게 시를 낭송하셨던 김재환님이
어느덧 시인이 되어 좋은 시를 짓고 계시네요.
대부도에서 초록섬을 가꾸며 자연과 함께 지내십니다.
오늘 상기의 시를 카톡으로 보내주셨군요.
늘 건필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