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데요시가 전 일본의 군사력을 휘몰아 직접 군을 지휘하며 바다를 건너올 것이라는 풍문 앞에 조정은 무겁게 침묵하고 있었다. 나를 죽이면 나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은 나를 풀어준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를 살려준 것은 결국 적이었다. 살아서, 나는 다시 나를 살려준 적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은 뒤엉켜 있었다. 그 두 엉킴은 말을 걸어볼 수 없이 무내용했다."(181쪽)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다. 자전거 여행을 읽고 필사를 한 권 다 하였기에 작가의 세필력은 익히 아는 바였다. 가는 곳마다에서 나는 향내나, 가는 곳마다에서 들리는 소리나, 어울림의 잡다한 전경은 내가 이미 본 듯이 아는 사실이다. 나는 그랬는데 다른 이들도 그랬다는 것이다. 너무나 공감이 되었고 놀라웠고 필사하는 한 달 동안이 토하고 싶을 만큼 힘도 들었지만 기가 막힌 즐거움을 주었다. 모두가 같은 걸 느꼈다.
칼의 노래는 십 년 전에 읽은 소설이다. 우연히 다시 손에 잡고 첫 장을 펼치니 김훈은 기다렸다는 듯이 책 속으로 멱살 잡고 끌고 들어간다. 여지없이 책장 속에 갇혔다. 왜군이 스며드는 소리, 갈대소리, 임금의 습관적인 우는 소리, 이순신을 죽이고자 하나 사직을 잃을까 봐서 참아내는 인내의 소리, 임금과 함께 같이 울어야 하는 신하들의 따라 우는 소리, 한양으로 압송된 이순신의 "그 몸은 제발 상하게 하지 말아 달라"라고 울부짖는 부장의 통곡소리.
책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내가 1592년에 살고 있다. 왜군은 우리 군사와 백성들의 귀와 코를 잘라 염장을 하고, 우리 군은 왜군의 수급을 자르고 염장을 한다. 청군까지 수급을 요구한다. 청군은 수급만 준다면 왜군이나 우리 군의 요청을 다 들어준다. 각자의 전리품이다. 정유재란을 다시 겪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 왜군은 철군을 해야 하나 이순신은 그냥 보낼 수 없다. 퇴로를 차단하여 死를 찾아든다. 임금의 질투를 피할 방법이 없다. 내가 죽을 자리는 저기, 노량진이다.
시도 때도 왜군이 스며든다. 밀물과 함께 갈대숲으로 스며들 듯이 내 방문 틈으로 스며든다. 임진왜란은 끝났으나 나는 김훈에 의해 2024년에 데쟈뷔처럼 임진왜란을 경험하고 있다. 느닷없이 울돌목에 산산조각이 난 배들이 소용돌이 속으로 침잠해 드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고향을 지키던 막내아들 면을 잃고 고향을 도륙한 왜군을 찾아내어 참(斬)하고 부하의 누옥에 스며들어 통곡하는 아비의 절절함에 가슴 아려 나도 장군과 같이 운다.
백성을 버리고 파천하여 목숨을 구하고 사직을 구한 못난 선조에게도 영면이 있기를, 임진왜란에 목숨을 잃은 모두가 편안히 영면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