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더 되게, 더 느리게 한다는 아이스크림이
나를 먹고 있는 오후
숲이 온종일 들고 선 글자
'베이커리 카페 OPEN'
나도 저 나무처럼 번쩍 들고 싶은 글자가 있는데
그건 엄지손가락
세자르가 조선소나무 아래 놓고 간 저 엄지손가락
여기선 모든 것이 엄지손가락
삼엽국화와 둥굴레 흰매꽃 돼지감자
땅 위로 엄지를 치켜든 것들아
제발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겠니?
환절기도 환절기를 보내는지
나무와 새와 개구리 들도 목감기에 걸릴까
문득 스웨터 단추를 풀면서, 어깨에 붙은 실밥 하나 떼면서
귀가 멀어가는 아빠 생각
더 이상 악에 받칠 일도 없는데
서러운 것이 자구 악이 된다 했다
여동생과 엄마는 일요일 오후 예배에 가 있으려나
기도 제목은 구체적이어야 한다며
언니, 무슨 기금이라고 했지?
야, 그런 거까지 알아야 해?
그냥 너나 잘되게 해달라고 해
아빠 귀를 고쳐달라고 하든가
난 왜 자꾸 옹졸해지는지
어제는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풍경도 잘라주면 잘 자라겠지
잔디깎이는 영화에서만 봤고
여기 어디 모란과 작약이 있다는데
나는 꽃의 크기를 알아서 가슴만 한아름 차오른다
나이 쉰살쯤 식물원 하나 차릴까
돌배나무 엄나무 매화나무 앵두나무 뽕나무 곁에서
내가 읽던 시집들, 얼룩져도 좋겠지
풍경을 반복하듯 침묵이란 말을 공부할까
소전미술관 창에 어제 가져온 강화도 갯벌을 포개놓고
기후 재난에도 새끼를 치고 싹을 내밀고 꽃을 틔우는 사월
알은척하는 사람 하나 없어 창 속의 내가
나를 보는 오후
[콜리플라워],창비,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