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너머 버드러진 가지에 새까만 열매들이 매달려 있다
징그러워라, 누군가는 슬쩍 미간을 찡그리고
이야 엄청 열렸네,누군가는 입을 헤벌리고 목을 길게 빼고
쥐똥나무라는 거야,누군가는 다정히 일러준다
진짜?
누군가는 조그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한참을 그 자리에 그대
로 멈춰 서 있기도,
때묻은 햇살이 빵빵거리며 들락거리는 곳에
알 수 없는 악취가 가시지 않는 곳에
나는 괜히 신기해서
쥐똥나무가 여기 있다는 게
이토록 자질구레한 것들이 가만히 살아간다는 게
어쩌면 인연일까? 묻게 된다
쥐똥, 쮜똥, 쌉싸름한 글자들을 뜻 없이 우물거리면서
전화를 걸게 된다
오래 그리웠던 이에게
쥐똥나무라고 알아요 혹시? 알알이 쏟아지려는 마음을
간신히 그러쥐면서
글쎄, 가웃거리는 저편의 사람은
눈앞에 놓인 이면지에 무심코 끄적이겠지
쥐,똥,쥐, 똥
어느새 구겨버리고 말겠지만
누군가는 카메라를 찾아 급히 셔터를 누르고
생각날 때마다 수시로 꺼내 들여다보기도 하겠지만
옛날의 쥐똥나무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게 되겠지 참 씁쓸한 일이야
알고 보면 딱히 씁쓸한 일도 아니라는 걸
한그루 나무일뿐라는 걸
갓 태어난 누군가는 엉엉 울고
그를 품에 안고 어쩔 줄 모르는 누군가는 나무 아래 잠시
쉰다
쉬었다 간다
골목이 끝날 때까지
걷고 또 걷는다 다만 쥐똥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름다웟다고
그렇게는 말할 수 없는
더러웠다고 지옥만큼 끔찍했다고는 더더욱 할 수 없는
골목을 걷는다
바닥을 보며 걷는 내내 그냥, 그냥, 뭉개진 열매를 밟는다
지울 수 없는 물이 들겠지만
밤에 혼자 걷는 누군가는'
보지 못한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알지 못한다
[수옥], 창비, 2024.
첫댓글 꽃향기중에 1등이 쥐똥나무 꽃인거죠.
시인은 미간을 찡그렸지만 그깢 열매가 쥐똥같다고 멸시하다니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