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끄래기네 툇마루 앉어 술 한잔하는디 야 너 아직도 시 뭐 그런 거 쓰고 댕기냐 이라는 것이었것다
시는 뭐 사는 거 끄적거려 보는 거지 어휴 다 늙어 애덜처럼 먼 시를 쓴다구 그리여 시는 애덜만 쓰고 그라능겨 그럼 그런 것을 오디서 으른덜이 쓰구 그랴 거참 오티게 시를 애덜만 쓴디야 애덜이 쓴 시 아는 거 있으면 한 편 읊어봐
울 밑에선 봉숭아야 니 모양이 처량하다 그리구 머더라 뭐 그런 거 있잖냐 그게 애덜이 쓴겨 그럼 우덜 어릴 적 부르트도록 부르고 댕겼잖냐 호랭이 물어 갈 늠 어릴 적 부르먼 다 애덜이 쓴겨 마침 비두 오시구 헝게 그 노래나 한번 불러보자 문지방에 한쪽 다리 걸치고 젓가락으로 냄비 뚜껑은 두둘기면서 불러보는디
울 밑에 선 봉숭아 털 니 모냥이 처량한 털 길고 긴 날 여름철 털 아름답게 꽃 필 적 털 어여쁘신 아가씨 털 너를 반겨 놀았던 털 목구녁 핏대 세워 뽑아보는디 쿨럭쿨럭 뽑아보는디 바라실 막순이 아줌니 열무 단 이고 옴맴맴매 옴맴맴매 소나기 한바탕 지나가시는 유두절이다
- 『동백』(솔, 2024)
*** 호우주의보가 내린 아침입니다. 동백처럼 꽃숭어리들 뚝뚝 떨어지듯 비 오시는 아침에 육근상 시인의 신작 시집 『동백』에서 한 편 띄웁니다.
- 유두절
마침 이번 달에 유두절(음력 6월 15일)이 끼어 있지요.
유두(流頭)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에서 비롯되었다는데, 그래서 유둣날에는 동쪽으로 흐르는 개울에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였다지요.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빗으로 곱게 빗은 다음 그 빗을 벼랑에 던져버리면 그해의 액운을 없애준다고 믿었다지요.
곰곰 생각하면 복중(伏中) 더위라 더워도 너무 더울 땐 그저 계곡을 흐르는 찬물에 몸을 담그는 게 최고일 터, 실은 더위를 피하는 한 방법이었을 겁니다.
암튼 시방 환갑 지난 시인과 그 친구들도 유둣날이라고 모여서는 피서겸 술 한잔하고 있는 중일 테지요.
남자라는 족속은 참 이상합니다. 나잇살을 먹었어도 친구들 모이기만 하면 철없던 개구쟁이 그 시절로 돌아가버리기 십상이니 말입니다.
보세요. 가곡 <봉선화>를 저래 바꿔 부르는 꼬락서니를 보세요. 막순이 아줌니 그 꼬락서니 보고는 옴맴맴매 옴맴맴매 민망해하며 가는 모습 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