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그는 어떤인물이였는가?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1903, 1908년에 돌아가신뒤 국가(오스트리아)에서 주는
고아연금을 여동생에게 양보하였다.
그는 중소상공업자와 중소농민으로 구성된 독일인 중산계급의 자본주의 사회에 불만과 원한이 많았다.
그 때문에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국제주의와 계급투쟁 이론에 반대했다.
그리고 하층민과 살면서 그들의 생활을 이해했으며 대자본과 귀족특권계급에 반대했다.
히틀러는 대통령 힌덴부르크에 의해 파펜의 연립내각에서 부총리에 임명되었으나 이를 거절했고,
그 뒤 1933년 1월 독일 총리로 임명되었다. 2월 27일 국회의사당을 네덜란드 공산주의자가
방화하는 사건이 일어나 이에 분노하여 이때부터 공산당을 증오했다.
그는 금욕주의자이며 사치스럽지도않았다..
그는 담배, 술 등을 전혀하지 않았고, 독일을 흡연금지국가로 만들기 위해 힘을 아끼지 않았으며,
최초로 흡연 금지 운동을 펼쳤다. 그리고 그는 국가를 위해 여자를 멀리 했고,
남성으로서는 정상적인 체질의 소유자였지만 결혼을 죽기 직전에 했다.
또한 채식주의자였으며 개인생활은 검소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군복과 많은 비교가 될것이다.
그는 단 3벌의 군복을 입고다녔으며 1차대전때 받은 철십자훈장4개를꾸미며 다녔다..
그리고 전재산을 독일에게 기부했다...
그의 지배 아래 자급자족정책의 확립, 독일 역사상 최초로 약 1000만명 실업자를 구제, 사회보장정책의 실지,
특히 신분제적 특권의 소멸과 각종 구습 및 제도의 폐지, 그리고 중하계급 출신 청년들의 지배기구로의 충원
등의 혁신에 성공하여 대중의 인기가 상승하였다.
그는 매일 한낮이 될 때까지 침대에 누운 채 조간신문을 훑어본 후 직무를 시작했으며,
이틑날 동틀 무렵에 잠자리에 들었다. 예술에 애착을 느낀 그는 특히 제3제국의 기념비로 남을 만한
공공건축물의 건립을 소원했고 사치나 여성차별 또는 미식가로서의 기질은 전혀 없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부근에 있던 산장에 가서 자신의 사진사, 의사, 운전수, 비서에
둘러싸여 마음 편히 담소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겼다.
오페라의 노래를 듣고 여가수의 이름을 알아 맞추기 게임을 즐겨 했다.
히틀러는 기억력과 직관력이 뛰어났고, 사람 보는 눈이 있어서 우수한 인재를 적소에 배치하여
능력을 발휘시킬 줄 알았다. 히틀러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동지로서 존경했으며,
무솔리니는 파시스트 내부의 친독일파였으므로 두 사람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렇다면 히틀러의 인종주의는? 인종주의를 내세우면서 학살한것은?
그것은 거짓말이다 괴벨스가 학살을 주도한거고 학살 수도 연합군측이 지어낸것이다.
오히려 히틀러는 학살을 막았다..
영화 '몰락' 에서처럼 히틀러는 자기부하들에게 소리를쳐댔나?
지금까지 살아있는 히틀러의 경호원말로는 그는 단 한번도 자기 부하들에게 큰소리를 친적이 없었고
전혀 유태인을 학살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친절했다..
자신의 결혼날에 샴페인을 보낼만큼 부하들을 아꼈던 사람이다..
히틀러가 본 동양인은........
히틀러는 일본을 바보처럼깔보았다.. 동맹국이라는 취급도않하고 원숭이취급을했다..
실제로 그는 일본을 부를때는 동쪽인들이라 부르며 깔보았다..
그가 일본에게 바랬던것은 러시아를 맡아준거뿐이였고 가만히 있는
미국을 건드리는 것에 어쩔수없이 미국한테 전쟁을 선포한거 뿐이다...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은 선전포고한 나라가 유일하게 미국이었으며,
영국과 프랑스가 먼저 독일에게 선전포고하였다.
또한 2차세계대전 중 평화협정을 권유한 나라는 독일 밖에 없다.
독소불가침조약 제안, 프랑스와 영국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평화협상 제안,
프랑스 점령 직후 영국에게 평화협상 제안..
그리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할때 베를린 올림픽에있었던 일이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마라톤에 우승한것을보고 이렇게 말했다.
' 저렇게 뛰어난 민족이 미개한 일본인들에게 지배를당하다니...
오히려 히틀러는 우리민족을 게르만민족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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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승전국들에게 아첨을 하고 굴복하는 다른 정치인과는 달리,
약소국으로 만들려는 승전국들의 만행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했으며,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와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 휴게소를 만들었다.
난.. 히틀러의 성품과 인품을 닮고 싶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 역사이다.
히틀러는 역사의 패자였고, 따라서
미, 영을 비롯한 승자에 의해 왜곡, 조작된 역사가 진실인 역사인 것처럼 알려져 있다.
1. 히틀러는 정말 인종 차별, 인종 청소주의자였나?
- 히틀러와 흑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제시 오웬스
역사가 빌 헨리는 그의 저서에서 '히틀러가 오웬스와 악수할 기회조차 없었음에도 악수를
거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고 기술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히틀러는 오웬스와 악수는 물론 마주칠 기회조차 없었다. 히틀러의 나치즘을
비판하던 외신 등이 이 사실을 과장, 왜곡한 것이었다.
첫날 육상경기가 벌어진 1936년 8월 2일 히틀러는 육상 경기장을 찾았다가 일찍 자리를 떳다.
빡빡한 스케쥴 때문이었다. 당시 높이뛰기에서 정상에 오른 미국의 흑인 코넬리우스 존스는
늦게 경기를 펼치는 바람에 히틀러의 축하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러자 뉴욕 타임스는 '히틀러가 흑인 금메달리스트들을 무시했다
(Hitler Ignores Negro Medalists)고 전했다.
오웬스도 히틀러에 대해 담담히 말했고, 그가 쓴 기록에도 적혀있다.
"우연히 본부석을 지나가는 도중 히틀러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알아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나도 화답했다"고 말했다.
올림픽이 끝난 뒤 오웬스는 '히틀러의 냉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오웬스의 '증언'도 오래가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히틀러가 전범으로 몰리자 오웬스는 기자들의
유도 심문에 걸려들어 히틀러의 냉대를 본의아니게 시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작 금메달을 따 미국으로 돌아간 오웬스를 흑인이라고
냉대한 것은 당시 대통령 루즈벨트와 미국민들이었다.
또, 히틀러가 손기정 선수와 악수를 하며 격려한 것은 유명한 일화였다.
물론 독일 내의 문제거리였던 집시나 유대인에 대해선 예외였다.
2.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 오스트리아 진주
히틀러는 폴란드가 점유하고 있던 독일인
주거지역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폴란드가 거부한 것이고 폴란드 침공은
그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다.
오스트리아 진주에서도 보듯이 그는 그 민족에게 그 민족의 땅을 요구한 것이다.
(나의 투쟁에서도 동일한 사상이 엿보인다.)
3. 유대인 600만 학살
600만이라는 숫자는 철저히 조작된 것이다.
2차대전시 독일군 전체 사망자도 그 치열한 서부와 동부 전선과 약 7백만명정도인데,
수용소에서 600만명이나 죽인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영국, 미국의 폭격에 의해 몰살당한 독일의 드레스덴, 함부르크 폭격 등
예에서 보듯, 독일의 영토를 초토화시키며 부녀자 강간을 일삼았던
소련군의 예에서 보듯 연합군의 파괴도
추축군 못지 않게 지독한 것이었다.
연합군의 무자비한 폭격에 드레스덴에서는 건물이 부서진 재와
사람의 시체가 한 데 섞어 그것을 구별할 수 없었을 정도로
처참한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졌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아 참고로 히틀러가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애인(에바 브라운 이전의)의 자살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꾸역꾸역 고기를 잘 먹었지만 장례식을 치르고 난 이후 갑자기 고기를 못 먹게 됩니다. 히틀러 애인들은 줄줄이 자살 했는데 부하에게 다정(?)했을지는 몰라도 애인에게는 꽤나 제약과 압력을 일삼는 독재적인 사람이었다고 하네요. 아무리 역사가 승자에 의해 서술된다 해도 멀쩡한 사람을 '악마'로 만들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_- 히틀러는... 정말 못된 짓을 많이 한 사람이었어요.
에바브라운은 히틀러와함께 자살한걸로 압니다만?
에바브라운도 자살했구요. 에바 브라운 이전의 연인인 겔리 라우발도 자살했습니다. 그녀는 히틀러의 조카뻘되는 여자였는데 히틀러와 말다툼(?)을 한 후 자살합니다. 충격을 받았을거라 추측되는 히틀러는 그 이후 채식주의자가 되고요. 히틀러의 마지막 연인인 에바 브라운은 아예 히틀러와 함께 자살했네요.-_-; 결국 연애마저도 파란만장하게 한 히틀러였습니다.
맞아요. 유태인들이 고리대업 등으로 부당하게 이익을 챙긴 건 맞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들은 고리대업을 했을까요? 유럽 많은 나라들에서 유태인들이 정당한 직업을 갖는 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유태인들은 고리대업 외에는 선택할만한 직업이 거의 없었습니다. 때문에 유태인들이 부당이익을 챙긴다->유럽인들이 유태인들을 미워한다.->위기감을 느낀 유태인들은 더더욱 부당이익을 열심히 챙긴다->유럽인들은 유태인들이 더더욱 싫어진다 라는 나쁜 방향의 순환이 계속 되었습니다. 이 감정을 히틀러가 참... 잘 이용했죠.
히틀러가 자국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라는 것도 맞아요. 하지만 자국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수백만명의 생명을 희생하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건 잘못된 일입니다. 그 어떤 조건에서도 생명은 우위입니다. 자신의 모국을 살리기 위해 수백만의 생명을 짓밟았다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조작은조작이라도 그럼 안네의일기 어떻게 설명할거야
일본에 대한 관점은 맘에 드는군...
아무리 악명높은 사람이라도 누구에게나 인간적인 면 한두개 쯤은 있었겠죠, 하지만 그걸로 그사람이 지은 죄까지 정당화 시키는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성품이 뛰었단던 어쨋건 유대인 학살이라는 이름아래 타당한 이유없이 (이유가 있었더라도 안되는거지만) 그 많은 사람들에 목숨을 잔인하게 앗아간 사람을 옹호하는건 있을수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