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거라고
이제 나는 그것이 조금도 슬프지 않다고 담대한 척 고백
해놓고
조금은 슬펐어
철가루처럼
곳곳에 흘린 나를 회수하겠다고
자석을 들고 종종거렸지
날마다 철가루 수북했어
그러다 너를 봤어
단박에 알아보고 물었지
너도 있지 철가루
이상하지,
너와 마주친 순간 왜 하늘에서
철가루가 눈처럼 흩날렸을까
왜 슬픈 장면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했을까
*
그날 이후
이따금 너를 소환하곤 해
백지 앞에서 마음이 한없이 캄캄해질 때
너는 등뒤에 집채만한 나무 그림자를 매달고 나타나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누가 본다고 이렇게 정성 들여 지붕을 색칠하려는 걸까?
땅만 보고 걷는 사람은
거기 지붕이 있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할 텐데
그러면 너는 단 한 사람*이라고 말해
단 한 사람은 지붕의 색을 이정표 삼아 이곳을 찾아와줄
거라고
*
어느 십일월의 저녁이었지
비가 오고 있었고
밖으로 나왔는데 놀랍도록 날이 포근했어
지구가 단단히 미친 것 같아
인간은 숨만 쉬어도 지구의 붕괴에 가담하고 있어
멋지게 비를 맞으며 살고 싶은 데 오늘 또 우산을 샀지 뭐야
그날도 우리는
가방은 필요 이상으로 무겁고
미래는 망가진 장난감이라는 듯 굴었지만
각자의 우산이 있었음에도
하나를 나눠 쓰자 청했어
그렇게라도 새로 산 우산의 쓸모를 구하다보면
걸음이 나란해지고
서로의 몸속에서 피가 도는 박자를 알아봐주면
단 한 사람
멀리서 구하지 않아도 이미 도착한 것일지 모른다고
그때 알았네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한 사람 안에 포개진 두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는 거
계속 계속 우산을 사는 사람은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이라
는 거
*
어쩌면 우리의 임무는 그것인지도 몰라
철가루 눈처럼 흩날리는 날
서로의 목격자 되어주기
멀리서 보니 지붕 칠한 집이 확실히 생기가 돌더라
저도 모르게 혼잣말하고 화들짝 놀라기
서글픈 농담하고 싱긋 웃기
*
수신인이 물인 편지는 잉크로 써야 한다고
그래냐 글자들이 올올이 풀려날 수 있다고
이제야 나는 진심으로 고백해
걸고 쓰는라 부서진 마음 알아봐주는
단 한 사람
수신인이 붙인 편지를 쓰기 위해
밤낮없이 장작을 모으는 사람
여기도 있다고
* 최진영
[당근밭 걷기],문학동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