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864〉
■ 돼지의 변신 (최영미, 1961~)
그는 원래 평범한 돼지였다
감방에서 한 이십 년 썩은 뒤에
그는 여우가 되었다
그는 워낙 작고 소심한 돼지였는데
어느 화창한 봄날, 감옥을 나온 뒤
사람들이 그를 높이 쳐다보면서
어떻게 그 긴 겨울을 견디었냐고 우러러보면서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졌다
그는 자신이 실제보다 돋보이는 각도를 알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방향으로) 몸을 틀고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무슨 말을 하면 학생들이 좋아할까?
어떻게 청중을 감동시킬까?
박수가 터질 시간을 미리 연구하는
머릿속은 온갖 속된 욕망과 계산들로 복잡하지만
카메라 앞에선 우주의 고뇌를 혼자 짊어진 듯 심각해지는
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
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
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
앞으로도 이 나라는 그를 닮은 여우들 차지라는
변치 않을 오래된 역설이… 나는 슬프다.
- 2005년 시집 <돼지들에게> (실천문학사)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예로부터,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바라보며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 자신의 실수에는 너그럽고, 타인의 잘못에는 냉정하게 비판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새로운 사자성어가 생긴 것이겠죠.
그런데 어쩐 일인지 특히 요즘에, 사회적인 지위에 맞지 않게 그 정도가 지나친 사람들이 자주 등장해서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서글프게 하는 일들이 왕왕 있더군요.
<돼지의 변신>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이러한 병폐를 거침없이 비판하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바르게 사는 것인지 곱씹게 해줍니다.
이 詩를 읽으면, 별 볼 일 없던 사람이 실력이 아니라 오랜 감옥생활로 대중들의 인기와 추종을 받아 학계의 거물로 변신한 지식인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을 대담하고 거침없는 언어로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따라서 그는 거물이 아니라 한갓 냄새나는 돼지에 지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이처럼 시인은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선적인 지식인들을 돼지와 여우로 풍자하며 정직하고 내실 있는 사람이 아닌, 가식에 찌들은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대중의 찬사와 인기를 얻고 있는 현실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참고로 논쟁을 즐기는 어떤 이들은 이 詩의 돼지를 지칭하는 사람이,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으며 수 년전 타계한 모 교수라고 하여 논란을 지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특정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주무르는 위선적 지식인의 보편적인 모델’이라고 하는군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