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1일(금)
* 시작 기도
주님...
밤 사이에 이 종의 심령이 가시떨기 같이 되었나이다.
온갖 상념이 머리를 가득 메워서 떠나가지 않고 그것이 또한 비존재 세력이 되어 나를 덮나이다.
세상이 나를, 내가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 되었으나 이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에 연연하여 함은 어찌된 일인지요?
주의 보혈로 오염된 이 영혼을 씻어 말갛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게 하소서.
결코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도 않는 생수의 근원 되신 생명의 샘물을 오늘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레 21:1-9
제목 : 죽은 직계가족의 주검을 만져서 더럽히라는 말씀의 의미.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그의 백성 중에서 죽은 자를 만짐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려니와
2. 그의 살붙이인 그의 어머니나 그의 아버지나 그의 아들이나 그의 딸이나 그의 형제나
3. 출가하지 아니한 처녀인 그의 자매로 말미암아서는 몸을 더럽힐 수 있느니라.
4. 제사장은 그의 백성의 어른인즉 자신을 더럽혀 속되게 하지 말지니라.
5.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 자기의 수염 양쪽을 깎지 말며 살을 베지 말고
6. 그들의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그들의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
7. 그들은 부정한 창녀나 이혼 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거룩함이니라.
8.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그는 네 하나님의 음식을 드림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나 여호와는 거룩함이니라.
9. 어떤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자신을 속되게 하면 그의 아버지를 속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지니라.
* 나의 묵상
레위기 18-20장까지는 일반 백성들의 삶에서의 성결 규례를 다루었는데 오늘 본문을 비롯하여 21-22장은 제사장이 일상생활 중에서 지켜야 할 성결 규례를 기록하고 있다.
그중에서 오늘 본문은 제사장 성결 규례로서 제사장 개인 및 제사장 가정의 성결 규례를 다루고 있다.
제사장들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해서 하나님을 섬겨야 했고 모든 규례와 법도를 그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책임이 있다.
따라서 일반 백성들보다 더 엄격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다.
먼저 장례와 관련된 제사장의 성결 규례인데 제사장은 죽은 자의 시체를 접촉하여 스스로를 더럽혀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부모, 자녀, 형제, 출가하지 않은 친 자매의 경우는 예외로서 만질 수 있다.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이므로 자신을 더럽혀 속되게 하지 말 것이다.
무엇보다 미신적인 관습을 좇지 말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것은 머리의 삭발, 수염 양편을 깎는 것, 살을 베는 행위 등이 그것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거룩하고 그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다.
또한 제사장 가정에 대하여 성결할 것을 명하신다.
제사장은 부정한 창녀나 이혼 당한 여인을 취하여 아내로 삼지 말 것이다.
이스라엘은 제사장을 거룩히 여겨야 할 것인데 그는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제사장의 딸이 행음하거든 그를 불사를 것이다.
제사장은 여호와의 화제 곧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이므로 거룩해야 한다.
화제란 제단에 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이다.
번제는 전체의 제물을 화제로 드린다.
화목제와 속죄제 그리고 속건제의 경우 제물의 기름을 화제로 드린다.
이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음식이다.
따라서 이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위하여 제사장은 거룩해야 하는데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시체와 접촉하는 것은 스스로를 더럽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제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날마다 성소로 나아가 분향단과 촛대 그리고 떡상을 간검하였다.
그러나 지성소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바로 지성소임에도 그곳에는 감히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지성소의 주변만 맴도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언제든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또한 나아가야 한다.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히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얻은 특권이며 또한 왕 같은 제사장의 놀라운 특권이다.
한편 구약의 제사장들은 주검을 만져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자기의 가족의 주검은 예외였다.
주검은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이다.
하지만 직계가족의 주검은 부정할지라도 만지도록 허락하신다.
그런데 직계가족의 주검은 그저 단순히 만지도록 허락하는 정도가 아니라 원어적 의미로는 오히려 명령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2,3절에 기록된 제사장의 직계가족이 죽으면 그들을 장사지낼 책임이 제사장에게도 있기 때문에 제사장 역시 자기의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3절 마지막에 나오는 ‘더럽힐 수 있느니라’의 의미는 허락의 의미를 넘어 ‘더럽힐지라도 너의 책임을 다하라’는 적극적인 명령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제사장은 어떠한 경우에도 부정한 주검 곧 자신을 더럽게 하는 세상의 부정한 것들을 만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것은 아예 원천봉쇄를 해야 한다.
그런데 구약시대 직계가족은 오늘날 그 영적 의미가 대폭 확장된다.
그래서 직계가족의 범위가 단순히 혈연적 직계가족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직계가족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예수를 믿는다 할지라도 이들이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아들의 생명을 얻기 전까지는 그들 역시 영적으로 죽은 자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죽은 자를 나 혼자 부정해지지 않으려고 두고 관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직계가족의 주검으로 인하여 더럽힐지라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처럼 오늘날 왕 같은 제사장인 나와 우리가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 곧 영적 주검에게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며 이 보혈로 그들을 씻고 날마다 성령 안에서 복음 곧 말씀의 양식을 먹임으로 그들의 죽은 영혼이 살아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의 책임은 단순히 장례를 치러주는 것이 아니라, 죽은 그들의 영혼을 살려야 하는 것으로 그 책임은 막중하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오직 복음 외에 다른 유(類)가 없다.
사람들의 최대의 관심은 프쉬케 곧 목숨에 있다.
육신의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고민하고 몸부림친다.
그러나 프쉬케를 넘어 완전한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인 ‘조에’로 나아가지 않으면 그저 땅의 것으로 만족하다가 끝나는 인생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80~90년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셨다.
그 영생은 이 땅에서부터 누려야 할 생명의 실재이며 이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 안에서 누리는 교제와 사귐이다.
나는 이런 생명을 누리는 영생의 실재를 알지 못하는 자였다.
그저 구약에 나오는 율법의 조항들을 지키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가 아니라 나의 의를 드러내고자 내가 주인 된 상태에서 지키는 그런 율법적 제사장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그런 자 말이다.
복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그저 막연하게 교회를 다니는 것, 예수를 믿는 것으로만 알았을 뿐 믿음의 실재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런 상태에서 나의 열심으로 목사가 되었으니 나는 영혼을 살리는 제사장이 아니라 율법에 매여 죽은 영혼을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그냥 두지 않으시고 심판을 통하여 복음을 알게 하셨고 그 복음이 나에게 날마다 먹는 생명의 양식을 가져다주었고 지금도 그 영생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 자리는 인간적으로 고독한 자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도 이런 자리에 홀로 앉아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다.
(렘 15:16-17)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예수님께서도 창세전부터 늘 아버지의 말씀 곧 명령을 얻어먹으며 사셨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신 것이다.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나만 홀로 있으면 외롭다.
이 외로움은 질병이지만 주의 말씀 앞에 홀로 있음은 고독이며 이는 곧 영성이다.
나는 오늘도 이 고독을 즐긴다.
겉으로는 나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혼자서 외로움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 주님께서 늘 나와 함께 하시기에 외로움의 질병 안에서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고독을 즐기되 주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오늘도 홀로 하루를 시작하나이다.
그러나 나의 홀로 있음은 아픈 외로움의 자리가 아니라 고독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영성의 자리임을 믿습니다.
성령 안에서 주의 말씀인 복음이 나의 생명 곧 프쉬케에서 조에로 나아가게 하였고 더 나아가 죽은 영혼들을 살리는 생명의 도구로 사용하시오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나이까?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요 이미 죽은 자였지만 복음을 통하여 프쉬케에서 조에로 살아났사오니 내게 주신 이 생명 또한 죽은 영혼을 살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게 하옵소서.
지금도 프쉬케에 머물고 있는 이들을 주께서 긍휼히 여기사 힘과 능력이 있는 주의 보혈을 힘입어 아버지의 품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그 품에서 생명의 잔치를 벌이게 하옵소서.
영원한 생명인 조에를 누리며 나아가 죽은 영혼들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오늘부터 단기선교팀이 와서 사역을 합니다.
그들을 잘 섬기게 하시고 무엇보다 그들 또한 복음을 알고 생명을 얻은 자로서 이 땅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