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마 우린 물에 멸치 한줌, 채소를 크게 썰어 넣고 끓
인다
채소가 무르고 멸치 비린내가 날라가면, 그때 불을 줄여
졸인다
근데 날라간다고 말하면, 좀 슬프지 않아
웅? 멸치는 똥을 빼고 대가리는 그대로 둔 것, 냉동실에
보관한다
반드시, 라는 말을 빼놓지 않으면서 날라간다는 말
건성으로 애호박을 썰고 무심하게 당근도 그렇게 채 썬다
먹기 좋게라는 말을 두세 번 한다
졸인 육수에 집간장을 약간 두르고, 얼마나? 물으면 집
간장은
국간장이라고 재작년 봄까지는 돌아가신 할머니 장독 것
을 썼는데......
끝이 허물어진 말은 적지 않는다 다시다도 약간, 얼마나
라고 물으려다
많이는 아니지라고 고쳐 물으면 적당히, 라고 대답한다
우리
면을 삶지 않아 다시 육수에 불을 크게 올려 면을 넣고 끓
인다
후추도 깜빡하고 계란 없이 심심한 육수에 통깨를 한줌
뿌려 먹는다
국수는 불어 있다 창밖은 눈이 날리나, 날아가나? 사방
하얗고
사방이 희한해서 창밖에 눈 떼지 못하고 사각,
투박한 호박이 부드럽게 이를 씻기는 소리
듣는다 면이 곱고 희어서 호박 뒤로 숨는 맛이다
붉은 입 속에 내리는 하얀 것을 생각하다
눈은 무슨 맛일까?
녹는 맛, 어린아이의 말이 창밖처럼 환하고 예뻤는데.....
요 며칠 어떤 새가 거실 창을 자꾸 두드린다며 날 풀리면
창밖에 새장을 하나 달아준다는 말
이렇게 세상이 환하면 함부로 아프지도 못하겠다는 말
그건 새의 말인가, 엄마 너의 말인가, 나는 알면서 또 모
르면서
그릇에 얼굴을 꾹꾹 눌러 담고
국수를 마신다
날라가는 중이다
오늘은 오지 않는다는 창밖의 새처럼
국수도 우리도 이제 말이 없다
비어진 장독 속으로 졸린 눈들이 쏟아지는 저녁이다
조금씩 기울어지는 몸이 버젓한 내게 기대면
고요다, 폭폭하다는 고향 말이 생각나서 장독에 쌓인
눈의 맛을 떠먹어보면 이제 엄마에게서 죽은 할머니는 무
심한 맛인가,
그 폭폭한 마음을 받쳐 창밖만 볼밖에
오직, 아무런 할일이 없다
나는
하지만 녹는 맛, 이라는 어린 너의 말이 귓가에 자꾸 내
린다
사라질까봐, 내가 적은 국수의 말은
건성의 맛
내가 뚝뚝 면발을 흘리면
주워먹는 맛
나는 자꾸 흘리면서 잠든
너의 이마를
닦고만 있다
[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문학동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