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일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앉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2006
조용한 일 [최지인]
얼굴
창백하다
무슨 일이야?
엄지와 검지 사이
꾹꾹 누르며
팔 쓸었다
찬 기운 가실 때까지
일그러진
얼굴
김장하는
철거촌 사람들
디데이가 적힌 타일 벽
신의 이빨 자국
붉은색 래커
거주하고 있음
불거진 철근
철근들 범람하는 것
개천을 어슬렁대다가
돈과 명예를 좇다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어디로 가시나이까
살아남은 자여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고 말하지 마라
한바탕
태풍이 몰아치기 전
*
스물여섯 살 노동자가 파쇄기에 빨려 들어갔다. 오래전 그의 아
버지는 제재소 분쇄기에 손이 꼈다.
*
목이 베인다
목
목들
갈색으로 변한 국화 다발
*
중앙선을 넘나드는 화물차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전복되기 전
우리가
사로잡힌 것은 무엇인가
꽃이 얼음을 뚫고,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왜 나는 내려놓지 못하나
꿈만 같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어요
번 돈의 절반을 집에 보낸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세 번 병원에
가야 하고
똑똑
들어가도 돼?
젖은 신발
걸을 때마다
개구리 울음소리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네
친구여 나는
돌아갈 집이 없네
사람들 묻힌 웅덩이
눈동자 같네
- 계간 발견,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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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조용한 일 [김사인] / 조용한 일 [최지인]
joo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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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5 22:1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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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사인 시인의 조용한 일이 평화라면
최지인 시인의 조용한 일은 침묵이군요^^
일상의 평화를 빕니다.
네, 늘 평안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