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허겁지겁 뛰어 내려왔는데
발목을 삐끗하지 않았다
오늘은 이런 것이 신기하다
불행이 어디 쉬운 줄 아니
버스는 제시간에 도착했지만
또 늦은 건 나다
하필 그때 크래커와 비스킷의 차이를 검색하느라
두번의 여름을 흘려 보냈다
사실은 비 오는 날만 골라 방류했다
다 들킬 거면서
정거장의 마음 같은 건 왜 궁금한지
지척과 기척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을지
장작을 태우면 장작이 탄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오래 불을 바라보던 저녁이 있다
그 불이 장작만 태웠더라면 좋았을걸
바람이 불을 돕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솥이 끓고
솥이 끓고
세상 모든 펄펄의 리듬 앞에서
나는 자꾸 버스를 놓치는 사람이 된다
신비로워, 딱따구리의 부리
쌀을 세는 단위가 하필 '톨'인 이유
잔물결이라는 말
솥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신기를 신비로 바꿔 말하는 연습을 하며 솥을 지킨다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
내겐 그것이 중요하다
[2023 제68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수상후보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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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한 삶 /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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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9 09:16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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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솥이 끓고
신비로 바꿔 말하는 연습
늘 고맙고 궂은 비에 괜찮으신지요?
'시숲에 들다'에 올리는 시 중에 오타 있는 시는 지가 올린 시란 걸 보며 '아이구 ' 놀라기도 하구 반성도 하지만
지가 중증인가 봅니다 joofe님~~ ^^*
귀여운 오타는 삶의 활력소입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