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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그릴라는 운남성 중덴이라고 불리우다 1933년 영국의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서 처음 사용된 지명으로 상그릴라는 티벳어로 "내 마음의 해와 달"
이라는 뜻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상처를 입은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든 이 소설은 그 배경이 되었든
이상향 상그릴라에 큰 관심을 가졌고, 상그릴라의 이름이 알려지자 인도, 네팔, 미얀마 등에서 소설에서 설명한
부분을 근거로 그들 나라에 있는 지역이 소설의 주 무대인 상그릴라 라고 주장하자,
중국 정부는 1998년 운남성 서북부 더친(德欽)을 상그릴라로, 2002년 그 주변 중덴현(中甸縣)을
상그릴라 현이라고 공식발표를 했고, 상그릴라 현의 중국 행정명칭은 티벳트족 자치주이다.(옮김: 관광 브로셔)
중국 운남성은 면적이 436,2004km2 로 한반도의 면적 22만 평방 키로 미터의 약 2배, 남한 99,000 평방 키로
미터의 약 4,4 배의 크기의 면적을 보유한 만큼 광활한 지역으로 남쪽은 베트남과 라오스, 서쪽은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州都(주도)는 쿤명으로 일명 "봄의 도시" 라 불리울 만큼 1년 내내 꽃이 만발해있는
꿈의 도시이다.
내가 배낭여행을 자주 다닌다는 소문을 들은 지인들로 부터, 가끔 여행지에 관해 질문을 받는다.
"지구상에서 어느 나라가 제일 가볼만 하느냐?" 란 질문을 가끔 받으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을 보고 싶다면 유럽과 인도를~
-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함께 보고 싶다면 남미를~
- 오로지 자연유산만을 보고 싶다면 카나다, 뉴질랜드, 몽골과 운남성을 권유한다.
이렇듯 운남성은 많은 자연 관광지를 소유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여행지 패키지상품이라고는
곤명 여강 대리, 상그릴라주변을 겉핥기식으로 다녀오는 것이 전부다.
나는 미지의 세계를 찾아 사람과 역사의 풍경, 그리고 신과 자연이 만들어놓은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2018년 3월 3일 사시사철 봄의 도시, 소수민족의 천국, 차마고도와 호도협, 히바설산, 옥룡설산, 메리설산,
천상고원 무스탕으로 유명한 상그릴라를 가기위해 대한항공 쿤밍(곤명)행 항공기에 올랐다.
기운차게 솟구친 항공기 속에서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4시간 반을 지난 새벽 3시 사뿐하게 가라앉으며
곤명공항에 내려 주었다. 우리나라 시간보다 1시간 늦으니 새벽 4시였다.
황급히 공항을 빠져나와 호텔에 도착해서 잠을 청했다.
윈난성에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종족이 각기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며 살아왔는데, 오늘날에도 이 지역에는
타이족, 이족, 먀오족, 바이족, 나시족등 20여 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으며 당나라 때는 버마족이 세운 남조국,
송나라 때는 타이족의 일파인 바이족이 세운 대리국에 속했으며,
원나라에 멸망해 비로소 중국권에 속했다.
대리국 멸망 이후 일부 집단이 동남아로 피난하여 세운 나라가 태국과 라오스, 삼국지에 등장하는 맹획이
대리국에 있던 지역의 군주였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맹획이 삼국지 내용과는 거꾸로 제갈량을 일곱 번 사로잡았다는 전승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므로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
대리국은 남조국과 마찬가지로 불교가 무척 발달했는데 역대 왕들이 왕위를 宣讓(선양)하고 승려가 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다음날 09시경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호텔 프런트에서 예약한 쿤밍의 대표적인 관광지를 둘러보는
여행길에 나섰다.
석림에 입구에 도착하니 길가의 안내광고 간판에
"지상에서 석림을 보며 구향에 놀다"란 문구가 보인다.
석림과 구향이 쿤밍을 대표하는 자연경관임을 알 수가 있었다.
바닷속 석회암이 솟아오른 바위 숲 석림, 중국 4대 절경의 하나이며 쿤밍 제일의 명승지는 단연코 이곳이라
할 수 있었다. 석림은 이족 자치현 안에 있으며 이족의 한 지파인 샤니족이 석림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석림을 보기 위해서 쿤밍에 왔다고 해도 좋을 만큼 기기묘묘한 돌 숲의 모습은 쉽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석림은 소석림과 대석림이 있는데, 기기묘묘한 바위마다 재미있는 중국의 설화가 덧붙여져 더욱 흥미진진했다.
석림의 대표적인 기암괴석인 "아스마석"은 애인과 이별한 이족 처녀의 슬픈 전설이 어려있으며 거대하고 길쭉한
바위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대석림은 영화 "서유기"의 촬영무대라고 했다.
둘러보니 쥐 모양, 고양이 모양, 삼장법사, 아가씨가 등에 바구니를 진 모양 등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쉬운 것은 당대의 세도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바위에 붉게 새겨 놓고 자연을 훼손시키고 있었다.
(이런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수없이 많다)
소석림 주변엔 작은 연못을 꾸미고 잔디와 나무를 심어 조경의 효과를 한층 높였다.
이곳엔 관광객들을 위해 자세를 취해주고 있는 샤니족 아가씨들의 전통의상이 검은 회색의 거대한 바위 앞에서
꽃처럼 빛났다.
니 종족의 모자의 삼각 깃이 2개면 처녀, 1개면 결혼을 앞둔 처녀, 없으면 이미 결혼을 한 사람이라고 했으며
남자가 이 깃을 만지면 청혼을 의미하는 것이라는데, 아까부터 모자가 신기해서 만져보려는 사람들의 손길을
피해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지역에는 신기한 바위말고도 대리석이 많이나는데, 대리국의 고토에서 나는 돌이란 뜻으로 대리석이란 말이
생겼다고 했다.
점심을 먹은 후 버스로 반 시간 정도를 달리니 구향동굴이 나왔다.
이 동굴은 중국 3대 동굴의 하나로 석림과 함께 쿤밍을 대표하는 자연유산이다.
물에 녹은 석회석이 다랑논 형태를 이루며 다시 굳어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바위벽에 수만 년의 세월을 두고
형성된 종유석의 모양도 기묘하지만,
암벽 틈에는 각종 식물이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어서 신비감을 더해 주었다.
구향동굴 입구에는 전족한 할머니가 아기 발에나 맞을만한 작은 꽃신들을 팔고 있었다.
억지로 발 크기를 줄였던 탓에 모양이 뭉뚝해진 할머니의 발은 서너 살 먹은 아이의 발만큼이나 작았다.
명 시대에 유행했던 이 풍습은 후에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고 여성운동에 의해 쩐족 해방이 되었다는데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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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으로 돌아와 이른 저녁을 먹고 차마고도(호도협 구간)을 트레킹 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여강에 도착,
게스트 하우스에서 1박을 했다.
다음 날 늦은 아침을 먹고 교두진으로 이동하여 차마고도 트래킹 출발점인 나시객잔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사진을 찍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차마고도 트레킹은 히바설산(5,596m) 2,000m 이상의 4부 능선을 오르내리는 코스로 지금으로부터
2,200여년 전 윈난성 푸얼지역 보이차(tea)의 고장 시쌍반나에서 북쪽으로 여강 및 상그릴라를 경유하여,
티벳지역의 말(horse)을 교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대 무역로이고
남쪽으로는 실크로드의 관문인 돈황의 북쪽 위먼관으로 연결되며, 돈황 남쪽의 양관을 나서면 천산남로 로
이어져 우루무치를 거쳐 실크로드의 중심인 서안으로 연결된다.
서안에서부터 시작된 실크로드는 중앙아시아 7개국을 지나 코카셔스(3개국)로 연결되어 터키까지 이어 진다.
실크로드의 돈황까지 이어진 차마고도는 실크로드 보다 무려 2세기나 앞서 만들어 졌으며 운남성과 티벳의 산을
넘어 "라싸"까지 도착하는데 총 길이는 2,800km 약 3개월이나 소요된다고 했다.
이 거리 중 호도협 구간 16km를 1박2일에 걸쳐 상, 중, 하도협까지 걷는 코스를 차마고도 트래킹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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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객잔 28밴드 차마객잔 중도객잔(1박) 관음폭포 티나게스트하우스 호도협 신천객잔
나시객잔을 출발해 30여 분쯤 오르니, 차마고도 최대의 난관인 28밴드 입구에 도착했다.
2,317m부터 시작 2,700m까지 28번의 굽어진 악마의 오르막길은, 자칫 고산병을 느낄 수도 있는 백두산
높이의 길을, 1시간 30분 정도를 올라야 되는 코스다.
이 코스를 오르기 위해 대부분 말을 타고(200위안) 오르지만, 나는 걸어 오르는 동안 숨은 헉헉거렸지만
오를만 했다.
말을 모는 마부는 중간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같이 오르다가 중간에서 낙오되는 사람들을 태워 주지만
도중에 말을 탓다고 절대로 요금을 깍아주지는 않았다.
28밴드를 다 오르고 나면 누구든지 성취감을 느끼며 건강에 대한 자긍심도 가진다.
이후 산허리를 끼고 도는 약간의 높낮이는 있었지만 비교적 상쾌하게 걸을 수가 있어 옥룡설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걸어서 차마객잔에 도착 점심을 먹었다.
TV 프로그램인 "신서유기"팀이 묵었다 해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차마객잔의 점심은 비교적 우리나라 사람
들의 입맛을 고려한 듯 향내 나는 음식은 없었다.
점심을 먹고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걸어서 중도객잔에 도착 1박을 했지만, 힘이 들어서인지 한 번도 깨지 않고
푹잤다.
다음날 새벽 일어나니 2,300m에 있는 중도객잔 주변에는 온통 비탈진 밭에 옥수수를 심어논 밭들과 수확한
옥수수를 역어 지붕 끝에 매달아 말리는 풍경들이 즐비했다.
5,000m의 히바설산 자락에서 어떠한 곡물이라고 자랄 수가 있겠는가?
척박한 풍토에서도 굳건히 살아가는 이들의 미소가 부러울 뿐이다.
아침을 먹고 중도객잔을 출발해 차마고도 트래킹 중 최고 명소인 관음폭포를 지날 때 쏟아지는 폭포물을 한
잔 마시며 잠시 쉬었다. 중국의 물은 석회수가 석여있어 건강에 안 좋다고 하지만 한 잔 쯤이야 어떠랴~ 마셨다.
2시간 반쯤 걸어서 티나 게스트하우스가 나오는 것으로 차마고도 호도협 구간 중 히바설산 코스는 끝났고
아침을 먹고 호도협 트레킹을 해야 됐다.
차마고도는 히바설산(5,596m)의 4부 능선을 걷는 코스지만, 정작 히바설산은 제대로 보지를 못하고 대신,
강 건너 옥룡설산(5,396m)을 보며 걷게 되는데
인도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충돌로 야기된 지각운동이 히바설산과 옥룡설산을 갈라놓았고 그 틈으로
16km의 협곡이 생겼는데,
호도협이란 명칭은 사냥꾼에게 쫒기던 호랑이가 커다란 바위를 딛고 한걸음에 강을 건너 도망쳤다는 옛이야기
에서 유래되어 호도협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상도협에서 중도협을 거쳐 하도협까지 걷고난 후 배를 타고 상을 건너 신천객잔에 들려 점심을 먹고
나시족의 마을 석두성마을에 들려 1박을 한 후
다음날 옥룡설산 4,506m에 있는 모우평까지 리프트를 타고 다녀오는 것으로 일정을 마쳤다.
인류최초의 교역료 차마고도의 풍경을 마주하고 만년설을 덮고 있는 옥룡설산을 마음껏 품에 안아본 것으로~
고달픈 삶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石頭城(석두성)
돌 위에 건설된 소수민족 나시족의 요새이자 안식처, 삶이 주는 고단함과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을
뒤로하고
꿈속에서 그리는 이상향의 마을 상그릴라를 가기 위해 리장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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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에서 매리설산 트래킹의 시발점인 해발 2,100m 위치한 시당촌까지 가는 길은 약 500km이다.
500km라 함은 서울에서 부산 까지 가는 거리로, 우리는 큰마음을 먹고 가야 되는 길이고 고속도로가 잘 건설
되어 있어 5시간이면 도착하지만, 중국이나 몽골에서의 500km란? 옆 마을로 놀러 가는 거리이다.
시당촌에서 출발해서 온갖 야생화가 만발한, 시땅패스(2,650m)와 남중패스(3,700)를 넘어 해발 3,200m에
위치한 위뻥촌 객잔에 도착하면, 오지를 돌며 험지를 걸어야 되는 매리설산 트레킹은 시작된다.
위뻥촌에서, 설산이 녹아내리면서 호수를 만들었다는 해발 4,100m의 삥호 까지 다녀오는 16km 코스와
위뻥촌에서, 환상의 산림지역 16km를 걸어 도착하게 되는 신의 폭포라 일컫는 신폭은, 떨어지는 새하얀
솜사탕같은 폭포수가 많은 물보라를 일으키고, 이 물줄기를 맞으면서 3,6,9(3의 배수)로 돌면 자신의 죄업이
씻겨나간다는 장족의 믿음이 있는 곳이고,
마지막 날은 하산길로 위뻥촌에서 14kn를 걸으면, 매리설산에서 녹아내린 빙하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란찬대협곡"을 빠져나와 니농촌으로 도착면 3박 4일간 60km를 걷게된다.
니농촌에서 매리설산의 감춰진 비경(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곳) 비단길을 가기 위해, 더친마을을 거쳐 비래사에
도착해서 외딴 곳의 게스트하우로 들어갔다.
공동 발코니가 복도식으로 늘어져 있는 이 층의 세 번째 방
들어가 보니 자그마한 나무 침대에 탁자 하나가 달랑 있는 전등불조차 희미해 일기도 쓸 수 없는 단출한 방이다.
해가 완전히 꼬리를 감춘 매리설산의 밤은 정말 캄캄했다. 어둠에 정복당한 칠흑 같은 밤 마음의 빛으로
불을 밝혀라!
자그마한 창문으로 희미하게 얼굴을 내민 구름에 살짝 엉긴 달!
가녀린 빛을 깜빡거리는 수줍은 별들 여행자들만이 부스스 깨어나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떼었다.
한참을 엎치락뒤치락 배낭과 씨름한 뒤 겨우 탁자 위에 촛불을 켰다.
갑자기 뱃속 아래 어디쯤에서 반응이 온다.
이 깜깜한 밤중에 저멀리 떨어져 있는 화장실을 간다는 것은 공포였다.
하지만 어찌하랴 헤드 랜턴을 머리에 감고 세면도구를 챙겨들고 씩씩하게 화장실로 향했지만 이제껏 보았던
공포영화와 전설의 고향 몇몇 장면들이 오버랩되었다.
까만 옷을 입은 저승사자 3명이 얼씬거렸고 누군가 내 뒤를 잡아채는 듯 등줄기가 오싹해 지더니 어둠 속
어디쯤에선가 강시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걸음이 빨라지지만
이름 모를 날 것들이 사방에서 모여들며, 헤드 랜턴의 불빛 때문인지? 얼굴만 노리고 달려들었다.
간신히 도착한 화장실에서 투박하게 생긴 수돗물을 틀자 쏟아져 나오는 물이 어찌나 차갑던지 얼굴이 얼얼하고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래,, 여기는 상그릴라야!"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이 정도의 불편은 당연히 감수해야지. 라며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문밖으로 줄줄이 서있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보자 괜스레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그라 들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창밖의 반짝거리는 별들을 쳐다보는 동안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 콸콸콸 흘러내리는 계곡 물소만 요란할 뿐
바깥에는 아무도 없었고, 충전이 덜 되어 있었던 랜턴이 껌벅껌벅 신호를 보낸다.
매리설산에서의 첫날 밤, 사방이 온통 거대한 산으로 둘러싸였고 바로 옆 계곡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자리에 들려니 기분이 참 묘했다.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낯섦
평소와는 다른 익숙하지 않은 색다른 경험이 나를 다소 들뜨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들을 잠식시켜버린 거대하고도 칠흑 같은 저 어둠, 이 암흑의 첩첩 산중에서 마치 눈, 코, 입은 사라
지고 달랑 귀만 남은 느낌이었다.
몽골 흡수골에서 차탕족의 무녀가 주술을 외듯 소곤소곤 별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어느새 별들의 속삭임은 모차르트의 자장가가 되었다가 슈베르트의 자장가가 되더니 이내 쇼팽의 자장가 선율이
되어 힘차게 포효하는 계곡물에 연기처럼 스며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비래사에서 바라보는 일조금산(매리설산)의 모습은 글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카메라에 담았다: 포토에세이방 참조)
(비레사에서 바라본 일조금산이라고도 불리는 매리설산의 모습)
리장에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절친 이정의 사장이 있다.
외국어대 중어과를 나와 (주)대우에 근무 중 시장개척차 운남엘 왔다가 상그릴라에 반해 사표를 내고 와서,
눌러앉아 버린 케이스다.
처음엔 알음알음 소개를 받아 VIP의 가이드를 하다가 아예 모두투어의 특별 상품만 취급하는 에이전트의
사장으로 있으나, 본업보다는 운남 및 상그릴라의 명소를 찾아내 여행상품으로 만들어내는 멋진 일을 하고
있는 멋진 절친이다.
비단길 트래킹은, 이정의 사장이 발견해 냈기에 비단길이란 명칭도 그가 작명했으며 중국의 관광책자이나
지리서등 어디에도 없는 곳이다.
이 친구가 고향인 청주산학회를 비단길로 모셔왔고, 그 일행들 틈에 끼어 비단길 트래킹에 동행을 하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비단길을 가려면 매리설산 하단부를 끼고 만들어 놓은 도로를 달려, 더친에서 별도의 티벳 퍼밋이 필요한 곳,
1,000M 전에서 우회전하여 차 한 대가 겨우 지다 다닐 수 있는 비포장 길을 2시간 넘게 달려와 도로가 멈춘
장소에서 하차를 했다.
여기서부터 1박 2일을 트레킹 해야 했다.
해발 2,500m의 야생화가 만발한 길을 헤치며 다녔다. 이 트래킹은 걸어서 목표지점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다니며 즐기는 길이다.
(비단길 야생화 벌판)
길이 없는 곳을 통과하기도 했고 맘에 들면 아무 장소에나 앉으면 되었다.
사방이 초원이지만 몽골의 초원과는 다른 밀림지대 속 초원이다.
다행히 누가? 누굴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인지? 모를 통나무로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숙영지도 만들어 놓았다.
일행들은 별도의 장소에서 텐트를 쳤고, 몇몇은 마을 이름도 없는 곳! 단지 억새를 엮어 만든 5채의 집 만 있는
마을의 농가로 갔고,
침낭을 준비한 3명은 침낭을 펴고 누워 별 하나 별 둘 별 셋을 세자말자 곧 잠이 들었다.
붙임 말씀: 황홀함에 도취해서 글로는 도저히 담을 수가 없었고, 표현해 낼 자신도 없어서
이제껏 여행기를 쓰지못한 유일한 여행지였지만 대신 사진으로는 많이 담았으므로.
0 이글을 읽으시기 전이나 읽으신 후, "포토에세이방"의
- 상그릴라 매리설산과
- 상그릴라 천상고원을 봐주시면 멋진 사진을 감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첫댓글 운남성 곤명은 다녀왔지만 수박 겉 핡기 식으로 다녀 왔어요 자세한 여행기와 아릉다운
자연 넘 아름다워요
운남은 남한 4배의 면적입니다.
대부분 곤명, 석림, 구향동굴과 차마고도와 호도협을 다녀오지요~
상그릴라와 유채꽃이 펼쳐진 원앙이 너무 좋은데요~
다시한 번 가보세요. 너무 좋은 곳입니다.
장맛비가 내리는 군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유인 상그릴라는 유채꽃이 필 무렵이 5월 쯤 되나요 야생화도 아름다운데 그시기는 언제가 좋은가요
다시한번 가보고싶은곳.
무거운 배낭메고 언어도 잘 안통해서 눈짓 몸짓 해가며 ~~~
그래도 얼마나 행복
했었는지.
그때가 그립습니다.
그때 구해온 손수 제작한 주전자에 물 끊여 차 한잔 해야겠네요.
멋지게 운남여행을 하신듯 합니다.
상그릴라 비레사의 밤은 너무 황홀했습니다.
저도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올여름은 배리설산 아래에서 지내고 왔을 텐데 아쉽습니다.
멋진 하루 되십시요.
신과 자연이 만들어 놓은 풍경을
사람과 그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베낭으로 무장을 하면
노천에 텐트하나면 족하고
별밤을 헤는 나그네의 발길을
구애없이 즐기는...
미지의 세계를 찾아 즐긴다는
유인님은
'인생 뭐 별거있냐' 하는
방랑객이기도 하네요.
가는 곳마다
상그릴라의 주인공이십니다.
유인님 처럼 기록하지 않고
세월가니, 덕분에 그 곳을
다시 상기 시켜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운남성의 곤명 여강 대리
옥령설산, 실크로드의 돈황등
가 본 지명이 심심찮게 등장하네요.
유인님의 여행 기행문을 읽으면,
요런 때만,
남자이고 싶답니다.ㅎ
멋진 기행문,
감사해요.
발자취를 따라 차마고도~ 실크로드 천산북로~
천산남로~ 서안~ 중앙아시아~ 코카셔스3개국~ 터키까지 다녀 왔습니다.
신라고승 혜초님이 왕오천축국전을 쓰셨다는 막고굴에서 묵념도 드리고
명사산에서는 모래의 울음 소리를 들었던 기억도 떠올려봤구요~
타지키스탄에서 지구의 지붕이라는파미르고원(6,400m)을 넘을 때,
트럭을 개조한 탱크같은 차를 타고 조그만 강을 사이에두고 분쟁지역인
아프카니스탄을 끼고 달리며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넘으면서
해발 6,200m쯤에서 토담으로 지어진 게스트하우스에서
밤새 콜록이며 한 잠도 못 자고 뜬눈으로 밤을 세울 때,
많은 생각을 했었지요~
이러다 히말리아 어느 한켠에 숨을 거둘지 모른 다는 생각?
이를 악물고 숨을 들이켰든 순간 순간마다 고통과 함께 희열도 찾아왔습니다
보고싶은 사람이 많아 아직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고 갈고은 많은데
코로나도 아쉽고 무의미한 시간이 흐르는 것도 아쉽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읽어본 최고의 수필여행기를 읽어봅니다.
어떻게 이렇게 장문에 글을 담을수 있으신지?
지루하다는 생각도 없이 빠져 들면서
차마고도와 호도협, 곤명의 석림과 구향동굴등 가보았으면서
사진으로만 담았던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리장의 소수민족과 어울려, 우리나라의 강강수월래 같이 춤을추며
광장을 돌았던 기억도 불러냈고.
원앙의 유채꽃도 좋았습니다.
리장의 사쿠라란 카페에서 교민인 주인이 연주해주는 기타반주에
오래 한곡을 불렀을 때
동행했던 와이프의 눈가에 스며들었던 미소는 지금도 잊을수가 없네요.
저도 수필 한 편 올리고 싶어
이틀에 걸쳐 애쓰며 써보았던 제 수필은 꼬리를 내립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무놀님의 댓글에서,
수필방 사랑을 느끼고 있어요.
노래도 많이 부르면 잘 불러지듯이
글도 자주 쓰면,
잘 써져요.
무놀님, 화이팅 ! 합니다.
지금 이글이 수필형식에 맞는 글인데,
너무 장문인가요?
너무 길면 사람들이 싫증을 느끼겠죠?
하지만 수필들은 점차 사라지고 없네요~
수필은 수필다워야 되는데 자꾸만
삶의방에 올리는 글들이 많아져 아쉽습니다.
리장의 사쿠라란 라이브 카페를 들리셨었군요?
지금은 중국 삼합회요원들이 접수했습니다.
저랑 여행컨셉이 비슷한 것 같으신데, 언제 기회가되면
운남~ 원앙~징홍을 거쳐 베트남 하장으로 점핑하십시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참 오토바이를 안타보셨으면 연습을 해두시면
동남아여행에서는 최고입니다.
하장에서 125cc 오토바이를 3,500$ 정도에 사서
베트남 15일- 캄보디아에서 20일쯤 보낸 후
라오스로 넘어가 여행을 끝낼떄 오토바이를 팔면
4,000$은 받을 수 있습니다.
ㅎㅎ저는 수박 겉핥기로 운남성 다녀 왔지만 .....
그것만으로도 역시 운남성은 충분히 상글리라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추억을 더듬어 쓴 긴 여행 후기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운남을 4번 다녀왔습니다.
사계절이 봄이라~ 여름철 혹서기, 겨울철 혹한기를 보내기에는
가성비가 높은 여행지로
일 30$이면 관광 숙식이 해결되는 흔치않은 여행지입니다.
다시 한 번 가셔서 비단길을 걸어보시길~~
리장의 이사장 스케쥴에 맞추면 가능합니다.
좋은 하루되십시요~~
기록없이 다녀본 곳이라
아련한 추억만 남았을 뿐인데...
하나씩 꼭찝어 자세한 설명을
곁드린 안내는 처음 찿아 가는 여행객
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저는 패키지 여행 이었기에 ...
사람의 발길이 뜸한 ~
자연만이 반겨주는 오지 가까운 곳은
경험을 못해 봤기에
잠시 젖었던 추억도 희미할 뿐입니다
제가 중국을 수십번 가본곳의 하나라면
우루무치도 꼽습니다
물론 유인님도 다녀 오셨겠지만
말입니다
에세이방의 사진도 잘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수필속 기행문으로
건필 하시기를요~^^
댓글을 읽으며
우루무치에서 기차를 타고 밤새워 달려서 돈황에 도착해서는
신라시대 혜초스님이 왕오천축국전을 집필하실 때 머물렀던 막고굴의 흔적을 보며
숨이 멎었던 기억도 있고
명사산에서 모래썰매를 타며 모래의 울음소리를 들었던 기억
암튼 천산북로의 멋진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우루무치- 돈황으로 해서 차마고도는 티벳의 메싸까지 연결되죠~
우루무치에서 천산남로로 서안까지 가면 실크로드가되어
터키까지 연결되구요!!
그 발자취를 따라 중앙아시아~ 코카셔스를 걸은 추억도 새롭구요~
여행을 해야 에너지가 솓는데
코로나가 웬수입니다.
멋진 밤 되십시요.
10년 쯤 전에 동티벳/ 메리설산까지 1달을 배낭했는데 추억을 되살리는 기분입니다.
일행들과 떨어져서 혼자 중도객잔에서 묵었던 생각도 나고...
티벳과 매리설산 트레킹은 남자들도 힘든데
여성의 몸으로 대단하십니다.
28밴드가 힘이 들었던지 중도객잔에서는 쓸어져
잠만잤던 기억뿐이구여~
한 달간 여행하셨으면 상그릴라를 제대로 느끼셨을 터이니
저와같은 추억을 가끔 회상하실 것이구요~
멋지신 여행하신걸 축하드립니다.
유인님의 여행지를
숨막히게 따라다니다 보니
마치 제가 여행을 한 듯...
황홀하고 숨이 차네요 ㅎ
수필방을 들랑날랑하며 대리만족을 하게되니
감사 감사예요~
제 글에는 30%도 못 담았습니다.
직접 다녀오셔야 멋진 상그릴라를 느끼실것이구요~
비단길로 초대하오니
멋지게 다녀오십시요~~
시간을 내시어 상그릴라와
티벳을 꼭 다녀오시길요~
멋진 주말 되십시요.
눈으로 보는듯 머리속으로 그려집니다
어쩜 역사 문화 자연유산 까지 잘 다듬어
주셨고 걸어서 세계속으로 TV 에서 보는듯
눈앞에 그려지내요
언젠가 꼭 가봐야 겠습니다
잘 읽고 느끼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요
늦은 시간에 다녀가셨군요.
다소 지루하셨을 긴 글을 읽어 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운남은 멋진 여행지이니
꼭 다여오시기 바랍니다. 편한 밤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