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710
ㅡ '훈육'과 '폭력' 사이? ㅡ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과 코치진이 최근 아동학대 혐의로 피소되어 검찰조사를 받아 이에 대한 논쟁이 갑론을박으로 소란스럽다.
고소인은 "A 씨(손웅정과 코치진)가 경기에서 패한 뒤 허벅지 부위를 코너킥 봉으로 때려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혔고, B 씨는 평소 숙소에서 엉덩이와 종아리 등을 여러 차례 때렸다"며 "손웅정 감독이 훈련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거친 욕설을 수 차례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에 벌어지는 고소인의 돈 요구나 손웅정 동영상 파동은 법이 처리하리라 믿고 오늘 이야기에서는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단지 고소한 내용이 이 정도라면,
<이 정도 폭력을 고소할 만큼 '폭력'으로 보아야 할까? 아님 '훈육'차원에서 보아야 할까?>
라는 문제이다.
시대가 변한만큼 시각차이는 분명있지만 50년 가까이 된 내 초중고 시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던 지금 시각으로 학폭을 본다면 당시 교사들 중 학폭으로 부터 살아 남을 교사들은 거의 없다.
윗 기사 내용대로 교폭이 고소할 정도로 문제가 된다면 이미 고인이 된 우리 때 선생님들을 다시 '부관참시'라도 해야 할까?^^
내가 다녔던 시대 고등학교 시절(1970년도 말~1980년대 초)을 잘 표현한 영화가 있었다.
'말죽거리잔혹사'와 '친구'이다.
그 영화에 나오는 군복입은 교련선생 폭력이나 "니 아버지 머하노?"를 묻고 시계를 풀고 무자비하게 주먹질을 하는 선생들보다 조금 더 심했던 것이 내가 살았던 고등시절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나 또한 직, 간접으로 여러 번 겪었다.
초딩시절부터 떠올려 본다!
초딩시절은 회초리 비슷하게 맞은 기억은 여러 번 있었으나 크게 당한 적은 없다. 내가 당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큰 행사였고 학부모들도 많이 모인 장소에 학생들이 열지어 서있다 한 학생이 건들 거린다고 체육선생이 그 학생 배를 발로 세게 차 학생이 병원까지 실려 간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았지만 그 체육선생은 아무 일 없었다.
중학시절 부터는 교사들 폭력이 정말 무서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중 1시절이었다. 얌전하게 보이는 학자풍 선생님이었다. 본인은 거의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증오스러웠던 폭력이었다. 수업시간 떠드는 학생 둘을 불러내어 서로 뺨을 때리게 했다. 상대방을 세게 때리지 않으면 그 학생 뺨에 직접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 주었다. 그가 직접 폭력을 행하는 유일한 경우였다. 나중에는 두 학생이 서로 울면서 시뻘게지게 뺨을 때렸다. 그걸 웃는 모습으로 보는 선생님의 모습을 우리는 두려움으로 보았던 기억이 뚜렷하다.
중 3때는 내가 당한 거 아니지만 한 선생이 영화 '친구'에 나온대로 시계를 풀더니만 학생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주먹질 하며 그 학생을 교단에서 복도까지 한바퀴 몰고 다니며 두드려 패다 다시 교단으로 돌아와 기어코 그 학생을 기절 시켰다. 그때까지 모든 학생들은 숨도 쉬지 못 하고 지켜만 보았다. 그 무시무시한 장면은 지금도 공포로 남아있을 정도로 내 기억 속 가장 끔찍한 교사폭력 이었다. 그 선생은 덩치도 '곰' 만했다. 우리는 이후 그 선생을 몇 미터 앞에서만 봐도 오줌을 찔끔 쌀만큼 저승사자로 보았다. 후일담이지만 맞은 학생은 당시는 몰랐지만 광주서 알아주는 집안이었다. 그리고 내가 대학가서 보니 그 곰같은 공포의 저승사자 선생은 저명한 교수가 되어있었다.
"참말로~~~~"
정말 폭력이 일상화 되어 있었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던 그런 세상 이었다.
고등시절은 교련선생도 있었고, 시계를 풀고 팬 선생도 있었지만, 그렇게 까지 심하지는 않았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광주에서는 학생들에게 가장 자율을 주는 학교로 알려져 있었고 사실 그랬다.
'참스승님'으로 존경할만한 분들이 상당히 계셨다.
그래도 기억나는 것은 '울대'라는 별명의 선생님이다. 키가 짝달만 하고 개그맨 김병만처럼 몸도 단단하게 보인 선생님이 우리들 군기반장이었다. 항상 손에 '바리깡'을 들고 다니면서 머리가 조금이라도 길면 먼저 목 '울대'를 정조준하여 수도로 갈겼다. 을메나 세게 때리는지 10초 정도는 숨 쉬기 힘들었다. 그리고 키도 작은 선생이 깨금발을 딛고 학생들 옆 머리를 치켜 올려 서울구경 시켜줄 때 그 아픔은 상상을 불허한다. 비명이 자동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서 머리 한 가운데로 고속도로를 뚫었다. 당시 우리 학교에는 이발소가 있었다. 고속도로를 반항의 표시로 그대로 하고다닌 학생들도 개중에 있었지만 고속도로 난 즉시 우리는 이발소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발소 아자씨가 그 선생님 술상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ㅎㅎ
사실, 우리 때는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안 맞아 본 학생은 거의 없다.
나도 여러 번 당한 바 있다.
내가 직접 겪은 최고 폭력은 고 2때 였다. 내 담임 수업시간 이었다. 나는 쪼게 야한소설이었는데 수업시간에 거기에 빠져 열독 중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우리 담임이 내 옆에 서서 일분 정도를 보고 있었는데도 난 그것도 모르고 킥킥거리며 책보는데 빠져 있었다고 한다. 너무 화가 난 담임은 가지고 있는 지휘봉처럼 생긴 회초리로 나에게 인정사정없이 휘둘렀다. 난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몇 분 정도를 맞았을 것이다. 나중에 보니 내 손등 등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우리 담임은 순하고 좋은 분으로 학교 내에서 유명했었다. 그런 분이 얼마나 화났음 그렇게 심하게 날 팼을까? 수업이 끝나고 담임은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빼앗아간 책을 돌려주고 내 상처를 이곳저곳 살펴보더니 "아까는 내가 너무 흥분했다며 미안하다" 했다.
"담임 시간에도 이러니 다른 선생님 시간에는 어쩔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예 공부를 포기한 애라면 모르겠지만 나름 공부 좀 한다는 넘이 그래서 더 화가 났다"고 했다.
우짜튼 난 고로케 맞고도 선생님이 나를 불러 미안해 하고 위로해 주는데 감동을 받았을 뿐이다.^^
우리 집에서도 손등에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도 누구하나 신경도 안 썼다.
그런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이 좋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러한 교사들 폭력은 일제식 교육 잔재라 한다.
당시는 선생님들도 우리도 학교는 물론 가정에서나 군대에서 그리고 모든 사회가 폭력이 일상화된 야만적 시절에 살았다.
국가자체가 군인들 폭력에 유린 된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냈으니 교폭은 어쩜 당연한 결과였다.
칼만 옆에 안 찼을 뿐이지 일제식 교육이 그대로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아예 '교련'이라는 명목으로 군사훈련을 미성년인 고등학교부터 정식과목으로 가르쳤던 시대였으니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걸 '훈육'으로 보아야 할까? '폭력'으로 보아야 할까?
우리 때 교사들 행위는 분명한 '폭력'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훈육'으로 받아 들였다.
지금 손웅정과 코치들 행위는 윗 내용대로만 보자면 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훈육'으로 받아 들일만 하다.
그러나 이들을 고소한 학부모는 무자비한 '폭력'으로 받아 들였다.
훈육과 폭력사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
이번 손웅정 사건, 그 옳고 그름은 여러분 판단에 맡긴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