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폭탄의 창조자, 그러나 파괴자이고 싶었던 두 천재 이야기 -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를 통해 본 시대상
위대한 인물은 필요한 시기에 발견됐을 뿐이다.
이 책을 쓴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이 위대했던 두 과학자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어떻게 다른 연구자나 친구들과 교감했고, '위대한 사람'이 된 후에 자신을 어떻게 가꾸었으며, 자신들의 '위대함'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또 서로의 위대함을 어떻게 평가하고 교류하였는지를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천재'라는 수식어가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데 있다. 그 둘을 도왔던 개인과 사회의 역할도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도 오펜하이머도 개인에 불과했다.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 배경과 환경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의 발전, 확장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에 태어났다. 아인슈타인이 특정한 업적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업적이 필요한 역사적 장면에 그가 도착했기에 가능했다.
오펜하이머의 자자한 명성은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재직 당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그는 세계를 변화시켰다. 그러나 이 성취는 그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고, 집단으로서 인류도 아직 감당하기 힘든 성취였다. 오펜하이머는 핵무기가 개발되어 사용된 순간 이미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의 비선형 장방정식과 중력, 전자기장의 '통합' 이론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근본적인' 수준의 입자에 대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을 결코 잃지 않았다. 그는 비선형 장방정식을 통해 양자물리학에서 다루는 확률에 대한 설명도 가능하게 할 수학적 접근법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브라운 운동을 설명해 낸 후 자신감을 얻은 후 광자 가설을 통해 태양의 흑점 스펙트럼을 설명하고, 광전 효과를 해석하고, 단순한 고체에서 발생하는 특정 열에 대한 양자이론까지 확립하고자 했다.
오펜하이머의 상황은 너무나 달랐다. 물리학계의 문제가 자신에게도 큰 문제였고, 자신의 명예도 중요한 문제였다. 이론물리학자로서 '순위'를 마치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로 삼았다. 전쟁 이후 비록 연구 활동은 그만두었지만, 고에너지물리학 진화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고등연구소 소장을 맡으면서부터 진행한 이론 세미나들과 2년에 한 번씩 열린 '로체스터' 고에너지 물리학회는 그에게 무척 중요했다.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 사이의 껄끄러움은 양자물리학과 유대인 문화, 전후 정치적 판단과 주장, 연구 방식 등 다양한 측면에서 드러난 시각차에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