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 주신글]
달구벌 이야기
경주 계림(鷄林)은 달구세끼 서라벌이고 대처 대구는 달구벌이다. 참 멋있는 이름이다. 팔공산에게 물어본다.
서울역으로 가던 나를 태운 택시기사가 갸우뚱하며
아직도 대구에 열차가 서나요?
목이 달아난 정신 나간 여당대표 실언대로 대구를 봉쇄했다면 KTX는 동대구역을 3초 만에 지나쳤을 테고, 나는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중무장한 배낭엔 우비와 함께 소설 알베르 카뮈를 넣었다.
역사상 최악의 가공할 적, 1억에 가까운 인명을 앗아간 죽음의 전염병 '페스트'
병균이 쓸고 간 아프리카 오랑은 세상에서 격리된 채 생명도 넋도 실종된 도시였다. 대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감염자의 7할이 이곳에서 나왔다는데. 보수적인 선비들의 고장이 전염병의 발원지가 되었으니.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나의 망상을 깨뜨렸다.
대구에는 봄볕이 따뜻했다, 수건을 동여맨 인부들은 팬지꽃 1만8000분을 저녁나절까지 심어야 한다며 춘풍 속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서울서 왔다는 말에 일하던 여인이 소 닭 보듯
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이고. 우짤낍니꺼. 대구는 잘 이겨낼 것이니 서울 걱정이나 하이소!
트로트를 틀어놓은 예순의 택시기사는 불안감을 넉살로 눙쳤다.
백수 취준생 아들눔 있으니 내가 벌어야지! 마누라 눈치도 뷔고 예! 요요 트로또가 있어 숨 쉬고 산다 아입니꺼!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벅 찬 생의 의지는 바이러스도 꺾지 못했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망연자실한 사람들과 함께 우체국 앞을 서성이다 계산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토록 와보고 싶던 대구 골목을 마스크 두 겹에 라텍스 장갑을 끼고 걷게 될 줄이야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져야 할 '청라언덕'엔 새소리, 바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1899년 설립된 제중원과 위급한 환자들에게 사용했다는 산소치료기가 물끄러미 이방인을 쳐다본다..
우뚝 선 제일교회 담장 아래로 '3·1 만세운동 길'이 이어졌다.
1919년 2월 24일 서울서 밀명을 가지고 내려온 이갑성
제일교회에서 지도자들과 만나 거사를 도모한 일,
계성학교 지하실에서 독립선언문을 등사한 일,
신명학교 학생들이 이 길을 따라 시위대에 합류했다가 징역을 살았다고 담벼락에 새겨져 있다.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보도블록에 한 자씩 새겨져 있었다. 길은 이상화 고택으로 이어졌다.
1901년 대구서 태어난 잘생긴 시인은 중절모를 쓴 채, 코로나 악령으로 얼어붙은 고향을 응시하고 있다.
시인의 집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둔 곳이 서상돈 고택이다. 역사 시간에 배운 국채보상운동의 주역이다.
일제로부터 국권을 되찾기 위해 나랏빚을 갚자는 운동이 100년 전 이곳 대구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목이 메었다.
납작만두, 수제냉면, 반월당 고로케…. 문 닫힌 식당에서 허탕을 치고 도로 계산 성당 앞에 왔을 때 십자가 상을 우러러 기도하는 여인이 보였다.
미사가 중단된 한 달 전부터 매일 예배당 마당에 서서 묵상한다는 여인
누구 한 사람만의 잘못이겠능교. 시련 많고 풍파 깊은 이 나라에서 그저 우리들은 배고프지 않고, 설움 받지 않고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더. 늙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엔 없어서!
대구가 천국이었다. 천국은 종말(終末)의 그날 황금마차 타고 간다는 저 하늘에 있지 않았다.
의사들은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방호복 속에서 비지땀을 흘렸다.
자원봉사자들은 의료진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게 양보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생수와 도시락을 날랐다.
주말도 없이 쪽잠 자며 일하는 간호사들의 눈은 피로에 절어 퀭했지만, 하루 몇 톤씩 쏟아지는 의료 폐기물 처리 전담 반원들의 안위를 더 걱정했다.
이웃을 내 몸처럼 돌보기 위해 아수라장 된 이곳이 천국이었다. 나는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전염병으로 숨진 시신을 화장하는 명복공원에선 소장 혼자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가족들 근심이 많겠다고 하자 고글 속에서 말없이 웃었다.
방호복을 입은 상주(喪主)가 영정을 안고 화장에 들어왔다. 울고 있는 아들을 영정 속 여인이 미소를 띤 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악착같아, 오늘의 고난과 탄식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망각은 좋은 것이다. 슬퍼하지 마라.
살아있다는 사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다오. 부디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고 웃으면서
- Copy -
떠나버린 것은 모두 그립다.
잃어버린 희망,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사랑,
잃어버린 산천.
만날 수 없는 것은 모두 그립다.
소꿉동무의 어린 손,
고향의 늙은 소나무,
어머니의 땀 냄새,
천렵에서 송사리 떼.
그리운 것은 모두 님이다.
시인 한용운이 말했다.
하나님,
부모님,
사랑하는 사람,
친구,
고향,
까꿍 아침산책 200330
===========================================================
김추자 - 님은 먼 곳에(You So Far Away) Cover by YOYOMI
===========================================================
첫댓글 떠나버린 것은 모두 그립다.
잃어버린 희망,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사랑,
잃어버린 산천.
만날 수 없는 것은 모두 그립다.
소꿉동무의 어린 손,
고향의 늙은 소나무,
어머니의 땀 냄새,
천렵에서 송사리 떼.
그리운 것은 모두 님이다.
시인 한용운이 말했다.
하나님,
부모님,
사랑하는 사람,
친구,
고향,
까꿍 아침산책 20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