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47호
봉우리
김민기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저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야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
지난 21일, 또 한 별이 졌습니다.
뒷것 김민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은 그의 노래를 한 곡 듣는 것으로 시편지를 대신할까 합니다.
싱어송라이터, 가수, 작사가, 작곡가, 편곡가, 극작가, 연극 연출가, 뮤지컬 기획자, 뮤지컬 연출가, 뮤지컬 제작자, 극단 학전 대표, 민주화 운동가 등등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정작 본인은 '뒷것'으로 불리길 원했던 '사람' 김민기.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모했기에 저까지 보탤 필요는 없겠다 싶었지만, 결국 보태고 맙니다.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야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이 문장에 그가 자신과 타자의 삶을 대했던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끝까지 아름다운 사람이었고, 사람이 아름답다는 믿음(인내천, 人乃天)을 실천한 사람.
그렇게 오롯이 사람의 길을 걸었던 뒷것 김민기.
그의 명복을 비는 아침입니다.
2024. 7. 29.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첫댓글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이런 가사때문에 저도 무척 좋아하는 노래랍니다.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좋은 노래들이 남아 있어 위안을 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