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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군중들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 산 안으로 올라가 앉으셨으며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왔습니다(마 5:1).
그리고 그의 입을 여신 그가 그들을 가르쳐 말씀하셨습니다(마 5:2).
여기서 “제자(disciple)”라고 번역된 헬라어(마떼테이스)는 “배우다”(만따노)로부터 나온 말로 “배우는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로 와서 그에게 배우는 자들입니다(마 5:1).
이하에 나오는 내용은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가르치신 말씀인 까닭에, “산상수훈(山上垂訓)” 또는 “산상설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산상수훈(山上垂訓)”은 “산 위에서 베풀어 가르치신 교훈”을 뜻하며,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교훈하셨던 마태복음 5~7장이 “산상수훈”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의 백성이 어떤 자들이며 어떤 삶이 그 왕국에 합당한지 산 안으로 올라가 앉으신 그가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쳐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 율법이 시나이산 위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것과 같이, 신약시대에 말씀이 특정한 산 위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산상설교는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에 의해 계속 다루어져 왔습니다.1) 산상수훈은 마태가 예수님의 설교를 요약하고 편집한 것입니다.2)
1. 크리스천은 그 영(靈)에 가난한 사람이므로 복됩니다.
마태복음 5장 3절에 “복되노라 그 영(spirit)에 가난한 자들은, 그 하늘의 왕국이 그런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되노라(Blessed)”라는 단어(마카리오스)는 원어로 먼저 나옵니다. 영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Blessed are~”(복되노라~)라고 시작됩니다. 헬라어 원어와 영어 번역본 성경에는 “복되노라”가 맨 처음에 나옵니다. 한국어는 서술어가 맨 끝에 나와 “~은 복되노라”가 맨 끝에 번역됩니다.
“복되노라(Blessed)”라는 말은 “복된”이라는 형용사며 번역하면서 be 동사 “are”를 첨가해 “복되노라”라는 서술어로 만듭니다.
이처럼 헬라어와 영어 성경에는 “복되노라”라는 말이 맨 처음 나오고, 어떤 자들이 복된 자들인지를 밝히는 부분이 계속하여서 뒤따라 나오고, 마지막으로는 “이는(for)”이라는 접속사로 복되다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그 영(spirit)에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으로 드러나고, 부자의 압제에 직면하여 겸손히 하나님의 보호를 의지하는 자입니다.3)
이사야 66장 2절에 “내가 영(spirit)의 가난한 자에 바라보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영(spirit)에 가난한” 자는 하나님이 필요함을 아는 사람입니다.4) “그 영(spirit)에 가난한”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가난한 자들”을 언급하였습니다.5)
“그 영(spirit)에 가난한 사람들이 복되다”라고 말씀하셨고, 이 사람들은 그 영(spirit) 안에(in) 자신의 가난함을 느끼는 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복됩니다.
구약성경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복되다고 말씀합니다(시 84:12).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힘입기 때문에 복된 자들입니다.
“가난한(poor)”(아니)은 “괴롭히다”(아나)에서 나온 말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악인들에 의해 부당하게 괴롭힘을 받게 되는 자들입니다.
구약성경의 표현으로 말하는 때 가난한 자는 괴롭힘을 받는 자입니다. 가난한 자는 압박함을(oppress) 받는 자입니다(창 16:9, 출 10:3).
이집트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씨를 400년 동안 괴롭힙니다(창 15:13). 우리로 괴롭힘을 당하게 하시는 것은 겸손하게 만드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을 훈련하시려는 목적에 괴롭힘을 당하게 하십니다.
압박되는 자는 하나님의 손아래 기꺼이 복종하는 자입니다(창 16:9). 세상의 체계(system)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게 만듭니다(창 34:2). 권세를 가진 자가 힘이 없는 약한 자를 압박하고 학대합니다(mistreat). 힘센 남자가 연약한 여자를 강제로 취하고 비천하게 만드는 세상입니다.
속죄일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영혼들을 괴롭힙니다(레 16:29). 그들이 그들의 영혼들을 괴롭히는 것이 영원의 법규였습니다(레 16:31). 그들은 속죄일에 그들의 영혼들을 반드시 괴롭혀야만 합니다(레 23:27). 이날에 괴롭히지 않을 때, 그 백성들에서 잘라냄을 받습니다(레 23:29).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그들의 영혼들을 괴롭혀야 하였습니다(레 23:32). 그들은 7월 10일 속죄일에 그 영혼들을 괴롭혀야 하였습니다(민 29:7).
하나님께서 그들을 괴롭게 하시려고 황야에 가게 하셨습니다(신 8:2). 그가 그들을 괴롭게 하셨습니다(신 8:3). 인류가 빵 위에 살 것이 아니며 하나님 입의 모든 나옴에 의해 살게 될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을 괴롭게 하시기 위해 만나를 그들에게 먹게 하셨습니다(신 8:16).
괴롭힘을 받는 이유가 죄악에 대한 징벌일 수도 있습니다(왕상 8:35). 아담이 죄를 범한 후에 인류는 크든 작든 이 땅 위에 괴롭힘을 받습니다. 세상살이가 괴로운 것은 아담의 자손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하나님 하지 말라 하신 것 안 하면 되는데 하니까 괴로워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간음하니까 괴로워진 것입니다.
다윗이 소년일 때는 하나님을 잘 섬겼고 거인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는 자신의 부하들을 전쟁터로 보냈습니다. 다윗 자신은 왕궁 옥상에서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왕궁 옆에 ‘우리야’라는 이름의 부하 장군 집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왕궁 옥상에서 우리야의 아내가 목욕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 우리야의 아내를 불렀고 그녀와 섹스하게 됩니다. 우리야의 아내가 임신하니 다윗은 우리야를 최전방에 보내 죽게 합니다. 우리야는 적군에 죽었지만, 다윗이 우리야를 죽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후 그의 인생에 고통이 시작되고 그를 죽이려는 적들이 생기게 되고 아들들인 왕자들끼리 죽이고 죽고 아들은 자기를 죽이고 왕이 되려 하고 다윗 집에 피바람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윗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그 죗값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괴롭힘을 받는 이유는 크게 2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잘못 안 했는데도 하나님께서 훈련하시기 위해 괴롭힘을 받게 하시고, 또 다른 이유는 죗값으로 괴롭힘을 받는 것입니다.
다윗이 괴롭게 된 것은 다른 여자와 섹스해서 그 죗값 받는 것입니다. 어쨌든 사람이 괴롭힘을 받을 때 그 영(靈)에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나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나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일 뿐입니다. 나에게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이런 자들이 영(靈)에 가난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복된 자들인데 구원자를 찾고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천국이 그의 것이 되기에 영(靈)에 가난한 자들은 복됩니다.
구약시대에 예언자들이 있었는데,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언하는데 그들이 예언하는 말이 너무나 듣기 좋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루살렘 도시에 전쟁이 없고 오직 평화,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으니 번영하고 부자 도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듣기 좋은 말을 한 예언자들은 다 거짓 예언자들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하면서 그 거짓말하는 것이 너무 좋은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예언자들은 평화가 없는데도 사람들에게 평화를 외쳤으며 참 예언자인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하니 듣기 싫은 것입니다. 거짓 예언자가 예레미야 뺨을 치고 왕은 예레미야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거짓된 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2평 감방에 가두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군대가 오자 그때 거짓 예언자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때 거짓 예언자들은 심판받고 죽게 되고 예레미야는 풀려난 것입니다.
그때 왕과 왕자들은 적에 잡히고 왕은 왕자들의 죽음을 지켜봤습니다. 왕은 두 눈이 뽑혔고 그 왕이 최후에 본 것은 그의 아들들의 죽음입니다.
누가 참이고, 누가 거짓입니까? 거짓말하는 자의 말은 듣기 좋습니다. 참말 하는 사람의 말은 듣기 싫은 것이며 옳은 말을 하면 듣기 싫습니다.
‘듣기 싫어 그만해 닥쳐’. ‘잔소리 그만해 듣기 싫어’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말 하는 사람이 참 예언자가 되는 것이죠!
오늘날 거짓 목사들은 예수 잘 믿으면 복 받고 부자가 된다고 하지만, 예수 믿어도 모두 부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정직한 방법으로 사업하다가 전보다 더 가난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된다고 말하는 목사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듣기 좋은 말을 들려주는 교회들로 몰려갑니다.
많은 목사가 강단에서 예수 믿으면 부유하게 될 것이라고 설교하는데, “그 영(spirit)에 가난한 자들”이 복되다고 설교하는 자들은 소수입니다.
다수의 사람이 이런 설교를 싫어하고 대중에 인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 같은 거짓 복음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설교로 대형교회가 되면 성령의 역사라고 하며, 맘몬의 능력을 성령의 능력으로 둔갑시키는 못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라는 말씀처럼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똑같이, 폭이 좁은 문을 통하여 들어가는 사람들은 적은 숫자입니다.
그리고 예수 크리스트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자 노릇을 한 많은 사람과 그들을 따른 다수의 군중은 멸망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70여 년 이전에 아더 핑크(Arthur W. Pink, 1886~1952)는 이미 ‘그 영(spirit)에 부유한 자들’에 대하여 꿰뚫어 보았습니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 더하면 더하였지 절대로 덜하지 않은 세상입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그 영(spirit)에 부유한 자들’입니다.
“그 영(spirit)에 가난한 자”로 삶을 살 수 있는 소수가 복된 자들이니, 좁은 문을 통해 들어가는 소수만이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세속 정신과 견해에 반대(反對) 문제(問題)가 됩니다. 세상은 자기 신념과 자기 의지와 자신과 자기표현을 강조합니다. 이런 관념이 현대인들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념이 크리스트교 바깥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고 있습니다.6)
“그 영(spirit)에 가난한 자들”은 자기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합니다.7) 세상은 “자신감을 가져라”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반대입니다. 세상은 자기 PR 시대라고 합니다. 성경은 나의 힘으로 못한다고 합니다. 세상은 자기주장을 말하여도 성경은 자기부정을 말씀합니다. 성경은 세속 정신과 철저하게 반대인데 대부분은 세속 정신으로 삽니다.
성경에 따르는 자는 세속적인 사람에 인기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데 왜 너는 저렇게 생각하냐는 것입니다. 99%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데 왜 너는 다르게 생각하냐는 것입니다. 세상 풍속에 휩쓸려 살아가는 세속적인 교인들이 오늘날 매우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을 개성이 없다고 평가하며 매력을 못 느낍니다.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과장하여 자기 PR을 적당히 해야 매력을 느낍니다.
취직하기 위한 “자격조건”을 영어로 “스펙(specification)”이라 하는데 온갖 스펙(specification)으로 치장하여야 매력적인 사람으로 느낍니다.
사람들은 죄가 죄인 것을 모르고 살고 그 죄 때문에 멸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율법은 죄가 죄인 것을 알려주므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율법을 아는 것은 특권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죄인 것을 모르고 살 때 죄가 죄인 것을 알고 잘못이 잘못인 것을 아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율법의 기능은 여기까지입니다.
죄가 죄인 것을 알게 되면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함에도 죄를 범합니다. 죄의 권능 앞에 자신이 무능한 것을 깨닫고 가난한 영(spirit)이 되는 것, 이것은 오직 성령님께서 죄를 깨닫게 하시는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받고 그 영(spirit)에 가난한 자가 되는 자가 복됩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힘으로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는 하지 못함을 인정하고 나를 구원하려고 손을 내뻗은 구원자의 손을 붙잡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나의 힘으로 하겠다고 고집부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벌거벗고 가난한 사실을 인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입히시고 부유하게 하실 수 있으신 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도움의 손길을 요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구원의 옷으로 입히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예복을 입을 때만이 결혼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겸손하고 가난하여야 구원함을 받고 교만한 자들은 낮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spirit)에 가난한 자들이 복됩니다(시 18:27).
예수님께서 그 영(spirit)에 가난한 자들이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영(spirit)에 가난한 자들”이며 복된 자들입니다. 이유는 하늘의 왕국(kingdom)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1) Hans D. Betz, The Sermon on the Mount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5), 1.
2) David L. Turner, 『BECNT 마태복음』, BECNT 성경주석, 배용덕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199.
3) R. T. France, 『NICNT 마태복음』, NICNT 성경주석, 권대영·황의무 옮김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9), 216.
4) France, 『NICNT 마태복음』, NICNT 성경주석, 217.
5) Turner, 『BECNT 마태복음』, BECNT 성경주석, 208.
6) D. M. Lloyd-Jones, 『산상 설교집(상)』, 문창수 옮김 (서울: 정경사, 1999), 59.
7) James Boice, 『산상수훈 강해』, 이상원 옮김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2), 28.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