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한 회사에는 텃새가 산다 [김광명]
오착륙이라면 좋겠어 오늘의 도래지는
종이컵을 사랑의 날개라고 부르지
유럽의 여름을 탁자 위에 늘어놓고, 풍선도 불어
최대한 쓸모없게
따듯할수록 잘 녹는 기포
달달함은 이때 등장하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부리로 농담을 저어버리지
눈이 마주칠 땐 어떤 얼굴이 어울릴까
노르딕풍의 쓰다 남은 겨울과 털실 조끼와 통조림 산타
기억 니은 기억 디귿 기억 리을 기억 다시 도돌이표
자작나무의 자세로 시럽이 되지
휘청거리며 더 아래로 날아
난 꿈을 잃어버린 나이부터 체인질링*이 취미였어
일어서지 못하면 팔짱 끼고 떠날 수 없지
끝이 아니야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랑의 시작이지
왼뺨이 부서진 철새는 잘 날 수 있을까
잘 숨을 수 있을까
깃털이 얼어붙은 겨울에 웃어도 될까
단맛이 부족한데 내일은 괜찮을까
불안은 새장속에서도 충분히 아름답지
함께 날아보지 않겠나? 반짝이는 새 깃털을 개봉하든 말든
베이비의 수염은 자라고
옮겨 쓰는 자서전은 늘 열린 결말
부푼 일거리는 무제한의 기회, 영웅이 되면 어떡하나
시간을 앞당겨 여행할 수 있다면 죽은 후가 가장 좋겠지만
판타지를 엎지르면 누군가 눈치 챌지도 몰라
북쪽창을 바라보는 여기는
텃새들이 사는 세상
돌아보면, 달콤한 점심시간이었는데
아무도 내 이름을 물은 적 없다
* 인간의 아기와 트롤의 아기를 바꿔치기하는 것
- 23년 반연간지 〈시인들〉 가을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