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 먹는 자리
참돔 찌개! 주일 예배 후 각별한 점심 메뉴였다.
넉넉하게 끓이려고 농어를 넣었다.
잡채가 잔칫집 분위기를 잡았다.
감기로 입맛 잃어 그냥 가실 정 권사님!
찌개 챙겨 간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어울려 먹는 밥맛이 몸을 녹였다.
두 커피포트에 물을 팔팔 끓였다.
알맞게 부은 믹스 커피를 섬겼다.
별것 아니지만 달게 마시며 제주 귤을 맛봤다.
간병하는 집사님 간식은 따로 드렸다.
설거지 한 분들 몫도 남겼다.
잔반은 필요한 사람이 나눴다.
식탁은 한자리에 올렸다.
한 끼 먹는 일이지만 어울림으로 쉬웠다.
하 집사님 혈압 오른다는 말씀 끝에 기도 부탁하셨다.
신 권사님, 강 권사님, 김 집사님께서도 연달아 오셨다.
간절하게 기도해 드리고 차량 운행을 나갔다.
임 권사님이‘목사님! 교회 밥이 너무 맛있어요.
요즘 입맛 없어 아침도 안 먹고 오거든요.
아들 출근하면서 보일러 틀고 게시라 해도 그냥 지내요.
노인정 앞에서 내릴게요.
목사님 주신 것 한 조각씩 나눠 먹고 따뜻한 곳에 지지고 갈래요.’
시대적 어려움을 안고 약하지만 예배 자리 지켜낸 분들이 소중하였다.
아내가 잔심부름을 시켰다.
도중에 뜻하지 않게 비를 만났다.
이튿날 꿈자리가 사나웠다.
별똥 떨어져 심장에 박혀도 감사하게 여겼다.
맹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엄동설한 이불 속에서 뒹굴며 꼼지락거리고 싶었다.
기지개 커며 벌떡 일어나 여전한 삶을 이어 갔다.
빈속에 들기름 한 숟가락을 삼켰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팔 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는 기본이었다.
백초를 미지근한 물에 타서 마셨다.
새벽 기도 설교 준비에 임한 은혜가 컸다.
가나 혼인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질 때였다.
‘겸손한 물은 예수님을 보고 얼굴을 붉혔다.’
16세기 어느 무명작가의 표현에 온기가 돌았다.
밥은 안 먹어도 시 없으면 못 살 것 같았다.
지인의 카톡 말씀 읽고 심보선 시인 ‘무정과 다정’을 선사(膳賜) 했다.
그 찰나 속에 눈매가 고와졌다.
손녀 손자에게 매일 시와 시인을 소개하고 입원 중인 할머니 안부를 물었다.
좀도둑처럼 긴장하는 삶의 연속이었다.
달리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아 단단히 챙겨 입고 나섰다.
칼바람이 코끝을 내리쳤다.
장갑을 겹으로 껴도 손끝이 떨어져 나갈 태세였다.
요플레 문고리 전달한 날, 뜀질에 땀방울이 맺혔다.
30분간 달리고 수영장 온 탕에 담갔다.
몸이 풀려 가벼웠다.
물 찬 제비처럼 선두를 지켰다.
배고픈 체중계를 밟았다.
원하는 위치에 바늘이 섰다.
꿀맛 같은 밥맛에 게눈 감추듯이 먹고 빈 그릇을 씻어 엎었다.
쓰레기를 분리배출하는데 약지 손톱 끝이 갈라졌다.
전에 없는 일로 나이 먹은 징조로 보였다.
신경이 쓰여 밴드로 묶으면서 황 목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송 목사님 오신대요. 차 한 잔 마시고 저녁 먹게요.’
가는 길에 썬 베이커리를 들렸다.
아내가 한 글자 들어간 ‘빵’ 싫어한다고 푸념을 섞었다.
‘우리 밀이라 괜찮다’ 우기며 손 내민 빵을 주섬주섬 담았다.
부피를 키우려고 옥수수 식빵도 넣었다.
휴심 정에서 내밀었다.
‘와~ 목사님! 대박!!
우리 성빈이가 좋아하는 빵이네~ 혀를 내 두른 표정 찍어 인증 보낼게요.’
테이블에 빈 찻잔과 주전부리한 빵 부스러기가 놓였다.
인사로‘광주 오면 큰 교회 가서 밥 사 달라 하세요.’
황 목사님이 잠재웠다.
‘섬기고 나누는 교회가 크다고 어제 설교했네요.’
무너진 목회 현장 속에 아름다운 은퇴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나눴다.
‘주변에 아프면 아프다고 말 못 한 자의 아픔이 컸어요.
함께 할 생각이 없었던 거지요.
그럼에도 넘어진 자 존중하고 인정해야지요.
어쨌든 개혁주의 신학 배운 자답게 모범적인 선례를 남겨야지요.’
완주 자가 소수인 시대적 어두움을 품었다.
언사 능한 분의 논리는 명확했다.
노욕 생기지 전에 젊은 후배에게 길을 트자는 거였다.
그를 거들며 한마디 남겼다.
‘자전거 탈 때와 내릴 때가 위험하니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게요.’
흐르는 물 위, 스쳐가는 바람에게도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다.
‘목사님! 3백만 원으로 결혼해 네 아이 가르치고 살아왔는데..
앞날도 하나님이 책임 지실 것 믿어 걱정하지 않네요.’
저녁 위해 달맞이 흑 두부 집으로 옮겼다.
해 질 녘에 멋진 정원 분위기를 자아냈다.
들어가는 길이 황금으로 대접받은 기분이었다.
스벅 커피 점을 모른 분이 ‘와~ 경치 끝내 주네요.
우리 부부 사진 한 장 찍어 주세요.’
같은 곳, 같은 일, 같은 음식 먹는 행복한 자리였다.
지금의 사역을 즐김이 고마웠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강요하는 게 아니었다.
공든 탑의 무너짐은 한순간이었다.
더불어 가는 길은 인내의 반복이었다.
영혼의 맑지 못함은 헤아림 없는 욕심의 끝이었다.
타산지석 삼아 환골탈태할 일이었다.
숨겨진 흑 두부 맛 집!
입안에서 살살 사라지며 고소함이 퍼지는 속도가 느껴졌다.
점심 거른 탓에 막무가내로 먹었다.
소화불량으로 잠자리가 편치 않았다.
탐식이 낳은 결과였다.
새벽에 바지게 똥을 싸고 풀렸다.
오후 시간 아내와 스벅을 찾았다.
유독 파란 하늘의 흰 구름이 눈에 띄었다.
거기 쌓인 눈이 그렇게 많이 내렸나 보다.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개의치 마시고.”
시 구절이 구름 따라갔다.
밥 대신 딸기주스와 자몽을 주문하고 쟁반에 쿠키 얹었다.
지인이 선물한 쿠폰으로 결재하고 호사를 누렸다.
다음날 아침 눈을 쓸었다.
눈 뒤집어쓴 마른 가지가 흔들렸다.
들어와서 완벽한 영점으로 돌아가는 ‘존엄한 퇴거’ 시 낭송을 들었다.
긍휼함이 흘렀다.
2025. 1. 11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