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눈부시지만 5
2013.10. 금계
10월 18일에는 영암군 삼호읍으로 갔다. 삼호읍은 원래 삼호면이었는데 조선소와 대불대학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증가하여 읍으로 승격하였다. 가을 햇볕이 나 혼자 보듬고 궁글리기에는 과분하리만큼 짱짱하고 쟁강쟁강 튀었다.
에벤에셀 유치원. 어쩜 저리도 예쁘게 지었을까. 이국적인 분위기까지 풍긴다.
삼호초등학교. 건물 색깔이 화사하다. 가을 대낮의 햇살이 운동장에 뻑적지근하다. 나는 삼호 상공과 운동장에 가득 찬 햇빛의 현란한 마술에 홀려서 거의 눈시울을 적실 뻔했다. 오, 태양이여, 태양이여.
오른쪽 사진 산 아래 멀리 보이는 건물이 삼호중학교.
왼쪽이 삼호고등학교. 교훈이 身言書判이다. 신언서판을 제대로 갖춘 호방하고 시원시원한 인재를 길러내는 모양이다.
대불대학교는 이름을 세한대학교로 바꾸었다. 나는 무엇이든 이름 바뀌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하녀가 가정부로 바뀌고 소경이 시작장애인으로 바뀌고 문교부가 교육인적자원부로 바뀌는 것은 당연할지 모르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바꾸는 것은 말맛이 달라져서 이상하다.
세한대학교 앞 정원의 피라칸사스 붉은 열매가 햇빛을 듬뿍 받고 있다. 나는 햇빛을 옹골지게 뒤집어쓰고 햇살로 멱을 감는 처절하도록 붉은 알갱이들을 눈이 가물가물하도록 오래오래 노려본다.
영산호와 영암호를 연결하는 대학교 앞 수로에 거대한 구조물이 괴물처럼 버티고 섰다. 소위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축조한 모양인데 나는 아직 저 거물의 용도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발간 감도 그렇고 새파란 하늘에 부풀어 오른 뭉게구름도 그렇고 고색창연한 기와지붕도 그렇고 내가 삼호에서 본 가장 아늑하고 고즈넉한 집이었다.
금방이라도 무슨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았다.
여기도 현수막이 걸려 있다.
전교조 탄압 이겨내고 민주주의와 참교육을 지키겠습니다.
나는 저 뜨거웠던 89년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직되었다가 4년 반 만에 복직하는 아픔을 겪었다. 보상도 못 받고, 호봉도 올라가지 않고. 김대중 정부 때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인정한 것이 전부였다.
해직자를 조합원에서 빼지 않는 것이 규정 위반이니까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밀어내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엄포다. 다른 산업 노조에도 없는 규정이고, 다른 나라 노조에도 없는 규정인데 왜 그런 억지를 부리는지 부아가 치민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도 분수가 있지. 이 무지막지한 폭거를 역사는 잘 기억할 것이다.
오랜 숙원 해결, 무화과 재해보험품목 지정 확정.
삼호는 무화과의 고장이다. 다른 농산품들은 자연재해에 보험이 되는데 무화과는 빠져 있다가 이번에 보험 품목으로 지정되었단다. 무화과 많이 먹을 일이다. 무화과는 아주 신통한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제7회 영암 왕인 국화축제를 알리는 광고탑이 높다랗게 세워져 있다.
작년 축제 때 가보았더니 화려함의 극치였는데 올해는 얼마나 더 멋질지 궁금하다.
읍사무소. 무화과의 고장 삼호읍
풍요와 희망의 활기찬 새 영암.
얼추 점심때가 넘었다. 삼호까지 와서 짱뚱이탕을 안 먹고 가면 반칙이제. 삼호읍에는 짱뚱이탕 식당이 열 곳을 넘지만 나는 점심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산호식당으
들어간다. 전에 몇 번 들렀던 곳이다. 건물은 허술해도 맛은 끝내준다. 햇살은 식당 지붕에도, 앞뜰 꽃밭에도, 장독대에도, 뒤란의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는 넝쿨에도 골고루 세차게 퍼부어 내리고 있었다. 참 그윽하고 옹골진 삼호에서의 한나절이었다. 복이 넘친 하루였다. 나는 삼호를 돌아다니며 탐조등을 비추는 것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모든 풍경이 눈물겨웠다. 햇빛에 번들거리는 삼라만상을 가슴 두근거리며 바라보는 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것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