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0차 ‘한국인의 얼굴, 몸, 뇌, 문화’ 강의를 듣고/안성환/240611
장소; 청소년차오름센터
일시: 2024. 6. 11.(화) 18:50~20:50
강사: 조용진교수(Dr/ 미술해부학/ 전 국가표준영정 심의위원장)
먼저 조용진교수님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한다. 교수님은 미술해부학분야에 흔치 않은 학자이다. 이 분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한 때 카톨릭의대에서 신체해부학조교수로 7년간 근무한다. 이때 엄청 많은 사람들을 해부 할 수 있는 기회에 참여 하게 된다. 그리고 미술해부학 분야에 연구를 하면서 발명에도 관심을 가지는데 업적을 보면 한때는 발명가가 될 뻔 하기도 했다. 아마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미술해부학 최고의 권위자가 되기 위한 고집이었든 것 같았다. 특히 팔순을 가까이에 둔 노학자는 열정이 넘치는 강의와 강의 사이사이 부르는 노래는 수강생들의 혼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성악가이지 누가 미술해부학자라 하겠는가?
마치 이탈리아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보는 기분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탈리아의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해부학자이자 과학자이며 가수였다. 그는 사람의 몸을 해부해 과학적으로 분석했고, 여기서 얻은 지식들을 수많은 인체 소묘와 회화로 표현했다. 음악, 화확, 천문학. 건축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다양한 연구를 했다. 실제 다빈치 선생의 주 수입원은 노래였다고 한다. 사실 그는 노래로 생업을 이어 갔다고 한다. 그 이유를 보면 알 수있다. 일생에 남긴 작품이 21점밖에 되지 않기 때문인다. 하지만 몇 점 되지 않는 그의 작품속에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가 있다. 여기서 잠시 다빈치 선생의 ‘모나리자’ 작품에 대하여 살펴보자. ‘모나리자’가 비싼 이유를 교수님의 강의에 기준에 준하여 옮겨본다. 다빈치 선생은 모나리자를 과학적으로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분명히 그는 해부학자 이므로 과학적으로 그릴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모나리자’는 실존얼굴이 없다. 모나리자의 얼굴은 해부학적으로 풀어 보면 얼굴의 왼쪽은 남자얼굴이고 오른쪽은 여자얼굴이다. 위쪽은 성인의 얼굴이고 아래 턱쪽은 소년과 소녀의 얼굴로 만들었다고 한다. 세상없는 얼굴을 그렸기 때문에 모나리자의 가치는 대단하다고 한다. 만약에 한 개인의 얼굴을 그렸다면 아무리 잘 그려도 한 사람의 인물이지 가치를 넘어설 수 없다고 한다. 참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필자는 글을 쓰다가 펜을 놓고 멍때리기를 한참했다. 아마 지향하는 목표에 도달 하려면 ‘열심히’가 아니고 ‘몰입’을 하면 된다는 교훈을 주는 것 같았다.
이어 본 강의가 시작 되었고 대형 스크린에는 동양화와 서양화 각각 두 초상화를 화면에 띄우고 초상화의 본질적 차이를 말씀하셨다. 서양의 그림은 색체와 명암, 그리고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강조하고 입체감과 현실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동양의 초상화는 명암법으로 있는 그대로 신원증명서처럼 그린 초상화이므로 자연과 하나됨을 강조하는 느낌이었다. 이 두 예술세계의 차이는 동양과 서양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철학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해야 될 것 같다. 이 말은 동양은 언어화로 그리고 서양화는 형상화로 그린다고 볼 수 있을 것같다. 그래서 동양화는 그림이 시(詩)이고 시(詩)가 그림인 것 같았다. 교수님이 말씀중에 신원증명서처럼 그린다는 말씀은 있는 그대로 거짓없이 그린다로 이해했다, 좋은 예로 조선후기 영의정 지낸 채제공의 초상화가 생각났다. 채제공선생은 어릴 때부터 사팔뜨기 눈이라고 한다. 당시 이명기라는 화가는 채제공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그림으로 묘사하니 눈을 살짝 돌려 바로 그려도 될 터인데 비록 채제공이 영의정일지라도 사팔뜨기 그대로 그렸다, 이렇게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조선의 선비정신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퇴계이황이 가장 중시 했던 무자기(毋自欺), 즉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란 뜻이 더욱 간절히 생각났다.
교수님은 40여년간 얼굴학연구하셨다. 얼굴을 연구하는 데는 총 4가지(얼굴과학, 얼굴공학. 얼굴의학. 얼굴문화학)있는데 4가지 모두가 미술해부학에 속하고 이를 연구 하셨다.
물론 1928년 인류학자들은 이미 얼굴측정 가능한 32군데를 개발했다고 한다. 여기에 10배를 더하여 300군데를 측정한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은 의과대학에서 해부학조교로 7년간 근무했든 경험이었다고 한다. 미술학도로서 의과대학 해부학조교로 일했다는 그 자체가 좀 특이했다. 흥미있는 것은 해부학적 측면에서 미인의 기준은 없다고 한다. 엄밀히 따지면 본인이 자주 보는 유전적 프로그램이 뇌속에 메모리 되어 있으므로 얼굴을 봤을 때 프로그램에 가까워 졌을때 기분이 좋아지면 미인이라고 하였다. 동양인의 뇌에 메모리된 프로그램에 의하면 현시대는 턱과 얼굴이 작아야 미인 미남으로 본다. 조선시대에는 턱과 얼굴이 큰 것이 미인 미남이다. 어떤형질의 데이터베이스가 뇌속에 오랬동안 축척하느냐에 따라서 기준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사람이 나체로 살 수 있는 온도는 26도이라고 한다. 26도 이하로 내려가면 인간은 살 수 가 없다. 인류의 이동은 2천년 주기로 한다고 한다. 이런 예를 보면 아프리카에서 먹이사슬따라 남방이나 북방으로 이동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긴 세월을 통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아프리카인과 한국인은 오른 손잡이가 많고 일본인과 중국인은 왼손잡이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얼굴의 형상은 북방계얼굴이 가름하고 이마가 좁고 볼록하며 허리가 짧으며, 다리가 긴 반면에 언어력이 낮아 말이 짧다. 주로 경상도와 경기북부 강원쪽에 많다고 한다. 남방계는 얼굴이 크며 이마가 넓고 도드라져 있으며,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길며 반면에 언어력이 좋고 말이 길어 노래를 잘 한다. 주로 호남지역에 남방계가 많다고 한다. 한국인은 북방계가 75%이다. 한국인은 북방계가 많기 때문에 우뇌가 발달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우뇌를 많이 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좌뇌를 작게 쓰게 된다는 뜻이다. 좋은 예로 우뇌와 연관된 연예활동은 ‘한류열풍’과 세계 인구수 29위의 한국이 올림픽 금메달 10위권 등 눈부신 영광을 가져 오지만 과학관련 은 좌뇌가 발달한 일본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가까운 일본은 28명이나 노벨상을 배출했지만 우리나라는 단 한명도 배출 못했다. 억지로 우긴다면 노벨평화상 1개 정도는 있다. 여기서 느낀점은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한쪽으로 만 치우치면 균형을 잃게 되며, 장점마저도 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는 의미인 것 같다.
한국인의 특성을 설명하기에 간단한예로 성리학(性理學)이 쉬울 것 같다. 일본사람들은 성리학(性理學)에 우리나라보다 관심이 없다. 이유는 좌뇌 발달로 언어와 수치에 발달 하므로 현실론(現實論)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인은 현실론자가 70%이라고 하니 그들의 민족성을 이제야 이해 할 수 있었다. 한국은 이상론(理想論)과 명분론(名分論)상대적으로 높다고 한다. 둘 다 합치면 약 60%이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고유의 특징이라고 한다. 때문에 홍익인간의 이념도 대동사회에 대한 이상추구도, 성리학도 성하게 되고 독립운동도 강하게 일어 날 수 있다고 하였다.
오늘 강의에 필자의 느낀점을 정리한다.
먼저 교수님의 강의 내용 중 조선후기 실학자 이익선생 말씀 한 줄을 옮겨 본다.
‘古疎今密 先卒後巧(고소금밀 선졸후교)’ ‘무릇 옛 것은 엉성하고 이제 것은 친밀하며, 같은 물건이라도 먼저 나온 것은 유치하나 이제 것은 교묘하다’ 라고 했다. 굳이 설명안해도 이해 되겠지만 지금의 방법이 완전하지 않을 수 있음을 기억하며, 늘 새로운 해법을 공부 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인상깊은 말씀은 ‘생활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얼굴이 바뀐다.’ 즉 사람은 인상이 바뀌면 그사람의 인생이 바뀐다.는 뜻이다. 강의실을 나서면서 수없이 자문자답한다. 참 이상하다. 뇌속에 금석학을 새기듯 각인되고 있다. 교수님은 어쩌면 미술해부학자 이전에 과학자이자 인문학자이었을지도 모르겠다.감동의 시간이었다
필자는 지금 고운 얼굴를 만들기 위해 생각을 바꾸고 있다.
2024년 6월 13일 북방계인을 닮은 성환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