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이가 제게 보낸 편지에 여러분에게 보내는 편지가 첨부되어 왔길래 잽싸게 쳐서 카페에 올립니다. 그냥 넘어가지 말고 꼭 읽고, 그냥 읽지만 말고 꼭 답장도 하세요. 사이버 상에서 reply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죠...
사랑하는 경희 IVF 에게
여기는 경북 영천, 육군 제3사관학교 4중대 2소대 2분대 1내무반입니다.
지금 막 잠에 들려고 하고 자기 전 10분 잠깐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본문은 로마서 8장입니다.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오늘은 입교한 지 15일째 되는 날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은 생활입니다. 행동이 느리고 눈치가 빠르지 못해 지적을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옆에 있는 동기 후보생조차 싫은 소리를 할 때가 있는데 애써 참습니다. 여기는 말그대로 군대입니다. '요'와 '니'라는 단어 대신 '다'와 '까'라는 접미어만 사용됩니다. 그런데 그게 아직까지는 어색합니다. 아직 군기가 덜 잡혔나보지요?
매일 계속되는 시험과 훈련…
그렇지만 배우는 것도 있습니다. 기다림보다는 목표 도달, 임무수행만을 소리치는 그런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이 있을만한 이유는 다름아닌 예수님 때문입니다. 입교 열흘이 지나 부대 교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딱딱 끊어지는 군가만 부르다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부르려고 하니 왜 그리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지… 불과 몇 주일 전에도 불렀던 노래였지만, 여기서 되내이는 찬송이란 실로 의미에 의미를 더합니다.
이제 취침 시간.
내일 또 쓰겠습니다.
2000년 7월 22일 지훈
일요일입니다. 이 곳 무더운 영천에도 오랜만에 가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바깥에서는 긴 장마가 진행되고 있다 하더군요. 호우경보도 있었다 하구요. 어제는 박찬호가 10승을 했다는 소식을 제2훈육장교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NEWS란 단어가 여기선 생소합니다. 주어진 일정, 일정한 방침을 따라갈 뿐입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전 9시였습니다. 오늘은 성가대가 '힘들고 지쳐'를 특송하더군요. 요즘의 내 모습이 생각나 잠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내일부터는 분대장을 합니다. 잘 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IVF 식구들, 혼자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경희대에 있든, 공동체 혹은 군대에 있든-무리를 지어야 하고 주변에 동역자가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같이 기도제목을 나누고 QT Sharing을 할 수 있는 동기를 찾고 있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일요일 오후 40분간의 자유시간입니다. 할 일은 많은데 주어진 시간은 적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꾸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매일 밤 꿈을 꿉니다. 그것도 번갈아가면서…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형, IVF 식구들 등등 입니다. 동시에 잠꼬대도 한답니다. 옆에서 자는 동기 후보생들에 의하면 지훈이는 잠 중에 '차렷', '질문있습니다', '네, 사관후보생 안지훈' 등등을 외친답니다. 웃기지요. 찬미예수 1000에 실린 쪼가리글에 이런 말이 실려 있더군요. 꿈 속에서도 예수님을 부르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겠냐고. 무의식 중에도 물 한모금을 가지고 옆사람과 신경전을 벌이고, 저녁 특식시간 음료수 한 모금, 빵 한 조각을 놓고 애타하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위와 같은 사람이 되야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답니다. 그러고 보면 4년 동안의 경희 IVF 공동체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진한 영상으로 떠오릅니다. 인격적인 대화, 소위 원투원이라 지칭되는 여유있고 깊이 있는 '기다림'과 '격려' 그리고 '도닥거림'입니다. 상점과 벌점으로 한 인간의 수준을 판단하는 칼날 같은 세상에서 버틸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게 만드는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참, 수련회는 잘 끝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몇 명이나 갔는지, 마지막 날 소망나누기 날 어떤 Sharing을 하였는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여주, 지훈, 은경, 민지, 도형, 수정, 지애, 현미 등의 리더들은 처음 맡은 수련회 조장을 잘했는지도요. 99학번 형제 자매들은 수련회를 마친 후 얼마만큼이나 연합되고 서로를 섬길 수 있고 공동체의 비밀을 같이 꿈꾸는 이들로 거듭 태어났는지, 그리고 00학번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도… 철희 예비 간사님은 아마 '군대' 강의를 재밌고도 유익하게 전하셨겠죠? 간사시험 준비도 잘 하고 계실거라 믿습니다.
내일은 또 고된(?) 훈련이 있습니다. 열심히 산을 오르고, 훈련 중 땀을 쏟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습니다. 그것은 긴 빗줄기가 지나간 후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같습니다. 얼마 후 아님 벌써 챕터 캠프를 했겠군요. 한 학기동안 수고했던 후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부탁합니다. 마지막까지 그 모습 그대로 변치 않도록…
사랑합니다. 멀리 있다보니 이런 말이 왠지 더 친근하군요.
God will make a way where there seemsto be no 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