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ㅅ언니랑 극적으로 접선했다.
두어 번의 연기 끝에 겨우 맞춘 일정이
바로 오늘,
옥계에서 기다리고 있는 ㄱㅈ씨를 태워
25번 국도를 탔다.
그동안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인간 내비게이션 ㄱㅈ씨의 지시대로
씽씽 달리던 중,
낙동에 내려 매기매운탕을 먹고 가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 높은 집 식당 - 문을 열고 들어서니
허름한 외관에 비해 넉넉한 방 안,
방석을 깔고 앉아 주문을 했다.
토속적인 반찬에 수제비가 들어있는 푸짐한 매운탕,
어찌나 맛있던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ㄱㅈ씨는 역시 정보통이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점을 어떻게 그리 잘 알고 있는지?
친절한 식당 아저씨의 권유를 못이긴 나는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나왔다.
비록 커피 전문점을 찾아나선 길이라고는 하여도
자판기 커피의 달달한 맛을 굳이 거부할 것까진 없을 테니.
커피에 관해서 나는 톨레랑스를 지닌 것일까?
상주 시내 소주 골목의 커피 가게,
그것도 막걸리집 2층의 커피 전문점,
계단을 오르는 우리 셋의 코를
달콤쌉싸름, 구수하고 그윽한 天上의 香이
무자비한 몸짓으로 자극하고 있었다.
한번 맡고 나면 빠져들지 않고선
도저히 못 배길 그 놈의 커피 향!
밀고 들어서면 뭔가 신비로운 것들로
꽉 차 있을 것만 같은 공간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그 곳엔 사장님인 민우님과 바리스타 커피마녀님이
고요한 눈길과 편안한 마음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ㄱㅈ씨는 이미 여러 차례 와 본 적이 있고
나도 몇 년 전, 친구가 데려가 줬던 곳,
내게 처음으로 예가체프의 맛을 각인시켜 준 곳,
커피를 배우면서 다시 그 곳을 떠올리게 된 곳,
그리고 우리 둘의 강추에 등 떼밀려
오늘 처음 그 곳을 찾게 된 ㅎㅅ 언니,
이런 의미를 각각 마음에 품은 우리 셋에게
커피 가게는 만족스러운 분위기를
안겨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무질서한 가운데에 나름의 질서가 잡혀있는 것 같다는
ㅎㅅ 언니의 예리한 관찰력,
온갖 형태의 커피 주전자,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글라인더가 놓여있고
원통형의 생두통, 빨간 색 커피 통, 고풍스러운 스피커들,
개성있게 생긴 커피 대장 민우님,
어떤 화가가 그린 민우님의 캐리커처,
착하고 다소곳한 분위기의 커피 마녀님,
그리고 잔잔한 음악,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와 브라질 세하도를 시켜
마가렛을 적셔 먹었다.
ㄱㅈ씨가 가방에서 마가렛을 꺼내는 순간
어떤 그림이 떠올랐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의 어느 한 때,
집에 마가렛을 쌓아두고 먹었더랬지.
끊느라 애먹었었는데.
커피와 달콤한 것이 잘 어울린다면서
우리는 아껴아껴 마가렛을 먹었다.
역시, 역쉬! 커피 맛은 아주 좋았다.
ㄱㅈ씨의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꿈,
ㅎㅅ 언니의 구미, 대구, 찍고 서울, 셋 집 살림살이 이야기,
곧 있을 나의 서유럽 여행 계획,
ㄱㅈ씨의 그리스, 터키 여행 계획 등등,
세 여자의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오는 가운데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훌쩍 지나려 했다.
민우님과 마녀님한테 서둘러 인사를 나누고
아쉬운 마음을 살짝 접은 채 계단을 내려왔다.
이런 곳이 집 가까이에 있다면
난 정말 자주 찾아가서 편하게, 오래오래
죽치고 앉아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야
오늘처럼 찾아오는 맛이 있어서 더 좋다는
ㄱㅈ씨의 답변.
과연 그럴까? 흑흑.
공사 중이라 길이 막힌 고속도로,
(공사 중이라니? 생긴 지 얼마 되었다고?!)
20킬로 이상 발을 떼었다 놓았다,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에 발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달팽이 운전을 했다.
그러면서도 초조하지 않았다.
소박한 기쁨을 누릴 여유가 내게 있었으므로.
눈부신 햇살을 온 몸 가득 받으며
우아한 ㅎㅅ 언니의 분위기에 맞춰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차 안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맘 편히, 속사포처럼 쏟아낸 우리의 이야기들,
다음 만남을 애써 기약하진 않았지만
조만간 ㄱㅈ씨의 화실로 들이닥칠 이벤트를
꿈꿔 봐야겠다.
화실 한 켠에서 연기와 실버 스킨 가루 폴폴 날리며 볶은
케냐 피베리를 빨리 맛보고 싶으니까.
장작 때는 난로에 고구마도 구워 준다고 했지.
자신에게 주어진 좋은 것들을,
좋은 사람들과 나누며 살고 있음이 분명한 ㄱㅈ씨,
나에게도 좋은 기를 팍팍 전해주겠지?
오늘처럼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
길이길이 이어가고 싶다.
첫댓글 글 너무 고맙습니다.
오셨을때 친구분 3명이서 몇주를 기다렸다는 말씀에 마음이 얼마나 뭉클했는지 모릅니다.
가게에서 일하다 보면 좋은 일만 있을수 없기 때문에 힘들때도 많지만 손님처럼 좋은 분들을 만나고나면 꽤 오랜 기간을
사용할수 있는 에너지가 충전이 되는 듯 합니다.
행복한 하루 하루 되세요.......커피가게 김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