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 麻谷寺 )를 2015년
10월 27일 공점포토 사진출사
마곡사( 麻谷寺 )의 전경을 파노라마로 편집 한것임
고려 후기 보물 제 799 호 오른쪽 및 마곡사대광보전 조선 후기
보물 제' 802호 석탑 높이는 876cm,
요약 대한불교 조계종 제 6 교구 본사 640년
신라 선덕여왕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 율사가 통도사
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이 절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가 그뒤 1650년
효종 주지인 각순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찾았으나
1782년 정조 6)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1051여 칸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1788년정조 에 재건되었고 영산전과 대웅보전은 1842년
헌종에 개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이 절의 가람배치는 대웅보전 보물 제801호
대광보전 보물 제 802호 층석탑 보물 제799호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된 특이한 형식이며
보물 제 800호을 비롯하여 응진전 명부전 국사당 대향각
흥성루 해탈문 천왕문 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역사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 泰華山麻谷寺事蹟立案 에 따르면
신라 선덕여왕 때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慈藏)율사가
통도사 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절의 이름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는데 자장이 절을 완공한 후 설법했을 때
사람들이 麻과 같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고 해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과
신라 무선無禪 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麻谷普澈)선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이 절은 고려 문종 이후 100여 년간 폐사되어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으나 1172 년 명종에 왕명을 받아 보조국사가 그의 제자인
수우(守愚)와 함께 왕으로부터 받은 전답 200 만 평에 중창했다
당시 사찰의 규모는 지금의 배가 넘는 대가람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뒤 1650년 효종 주지인 각순(覺淳)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찾았으나
정조때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1051여 칸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대광보전은 1788년 정조 에 재건되었고 영산전과 대웅보전은
1842년헌종에 개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항일독립운동가 김구가 일본 헌병 중위를 죽이고
잠시 피신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