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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을
만든 헛스윙"
우리가 흔히 홈런왕이라고 부르는 이승엽 선수의 최고 타율은 지난 1997년 달성한
0.329다.
이 말인즉 10번 중 6,7번은 '헛손질'을 했다는 의미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하나부터 열까지 손만 대면 빵빵 터지는
미다스의 손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무수히 많은 '삽질'을 하고 주저앉아 울음도 터뜨리고 땅을 치지만
'승영이의 소원'이 만든 행복한 요양원
[성수대교 붕괴 20년… 14가지 소원 남기고 간 女大生]
-보상금 전액으로 '승영 장학금'
89명 장학생 중
최만재 목사 "복지마을 소원은 내가 대신…"
-쉼터 어르신 중 資産家가…
3년간 모신 고집 센 할아버지 용인 땅 기증 "요양원
짓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풀 내음 나는 시골길
끝자락에 널찍한 요양원이 하나 있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 26명과 이들을 돌보는 15명이
함께 모여 사는 '작은손길 공동체'라는 곳이다.
이곳을 일군 최만재(57·목사)씨는 해마다 10월 21일이 되면 20년 전 숨진
스물한 살 여대생의 이름을 되뇌며 기도를 올린다.
그를 위한 기도는 한결같다. "승영씨, 당신의 이름은
'오늘 하루 제가 무엇이 부족했나' 되묻게 하는 이름입니다."
이승영씨는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서울교대 3학년생이었다.
그는 교생 실습 닷새째, 버스를 타고
강북에 있는 초등학교로 출근하던 길에
다리 상판과 함께 2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당시 30대 회사원이었던 최씨는 승영씨의 이름도 얼굴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최씨의 삶에 두 번의 선물을 선사했다.
가난한 신학생이던 그를 목회자로 이끌고,
기댈 곳 없는 노인들을 모시던 50㎡(15평) 무허가 판잣집을
대지 3159㎡(956평)의 번듯한 요양원으로 변신케 한 기적이었다.
최씨는 나이 마흔에 공부를 시작한 늦깎이 신학생이었다.
쪽방에 살면서도 2000년부터 아내 김영샘(52)씨와
인천 부평 뒷골목에서 매주 무료 급식을 했다.
파지를 주워 연명하던 노인 11명을 모시고 무허가 건물에
월세 20만원짜리 세를 얻어 '작은손길 공동체'를 세웠다.
학비가 없어 힘겨워하던 그는 2002년
"승영장학생으로 선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승영씨의 '14가지 소원' 이야기도 그때 처음 들었다.
딸의 유품을 챙기던 승영씨 어머니 김영순씨가 딸의 일기장에서
'내가 일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이란 14가지 소원을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대신 이루고 있다는 뭉클한 이야기였다.
'한 명 이상 입양한다, 장학금을 만든다, 이동도서관을 강원도에 만든다,
복지마을을 만든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
승영씨 어머니는 딸의 사고 보상금 2억5000만원 전액을
남서울교회에 기탁해 가난한 신학대학원생을 위한 장학금을 만들었다.
최씨는 4학기 동안 장학금을 받아 2003년 대학원을 마치고
목회자가 됐다.
그는 "승영씨의 소원 중 '복지마을을 만든다'는 꿈은
내가 꼭 대신 이뤄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무허가 보금자리는 불안하고 불편했다.
최씨의 아내는 "남편은 매일 새벽 '우리 어르신들
편히 지낼 곳을 마련해달라'는 기도를 올렸다"고 했다.
하늘의 승영씨가 도운 것일까.
또 하나의 기적이 시작됐다.
그가 모시던 80대 구씨 할아버지가 어느 날
"내 고향 용인으로 같이 좀 가자"고 최씨를 조르기 시작했다.
"가족도, 갈 데도 없는데 재워달라"며 와서는
3년간 함께 지내온 고집 센 할아버지였다.
최씨는 "마지막 소원 들어 드리자는 심정으로
고향으로 모시고 갔다"고 했다.
고향 땅을 밟은 구씨 할아버지가 거짓말 같은 얘기를 꺼냈다.
"여기 야산과 논밭이 다 내 것이네."
할아버지는 십수억원대 자산을 가진 이 동네의 유명한 갑부였다.
최씨는 "아들딸과 떨어져 살던 어르신이
외로움 때문에 우리 공동체를 찾아오셨던 것 같다"고 했다.
구씨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당신의 기도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 산과 논밭을 모두 목사님과
우리 공동체 명의로 돌리고 싶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최씨가 만류했지만,
할아버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최씨는 논밭 대신 공동체 건물을 세울 수 있는 야산 일부만 받았다.
작은손길 공동체는 기적처럼 당시 정부 지원금 2억8000만원을 받아
새 보금자리를 지을 수 있게 됐다.
구씨 할아버지가 땅을 기증하겠다고 한 지 3년 만인 2007년 11월,
지금의 터에 건물 면적 633㎡(192평) 규모의
'작은손길 공동체 요양원'이 탄생했다.
구씨 할아버지는 부지 기증 후 자녀들 집에서
투병 생활을 하다 2006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숨을 거두기 전 "요양원이 생기면 돼지 잡아
마을 잔치라도 하라"며 건넨 100만원과,
최씨 부부를 억지로 금은방에 데려가 직접 골라준
5돈짜리 금반지가 할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지난 19일 저녁 요양원 거실은 TV 앞에 둘러앉은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장정자(77) 할머니는 "깨끗하고 따뜻한 이곳에서
새 친구들까지 만났으니 말년에 축복을 받은 셈"이라 했다.
초기 치매를 앓고 있는 장원순(82) 할머니도 거들었다.
"기적이지… 고마운 일이죠…."
최씨는 "구씨 할아버지 덕에 승영씨에게 약속했던
진정한 '복지마을'을 완성할 수 있었다"며
"이것도 승영씨가 하늘에서 꾸준히 기도하고 응원해준 덕"이라 했다.
최씨 내외는 요양원을 운영하며 무료 급식도 15년째 계속하고 있다.
부인 김씨는 매년 10월만 되면 가장 힘들 때
힘이 돼준 승영씨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승영장학생 89명이 지금도 각지에서 묵묵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승영씨라는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20년이 지나서도 계속 열매를 맺고 있는 셈이죠.
살아있는 우리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데
진정 살아있는 건 그분 아닌가 싶어요."
‘공짜 점심’에 교육의 質 뚝!… 교사 줄이고 교실보수 미뤄
[미로에 갇힌 무상복지]<上>복지 봇물에 백년대계 휘청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등 각종 무상복지 정책이 삐걱대고 있다.
예산이 넉넉하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뿐 아니라 고교생, 나아가 대학생도
‘공짜 점심’을 주면 좋겠지만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각 시도와 교육청 모두 ‘돈이 없다’며 아우성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책 순위에서 무상복지에 밀린 사업도 적지 않다.
경기도교육청은 내년부터 계약직 직원 인건비를 564억 원
줄인다.
수석교사와 일부 기간제 교사는 전혀 채용하지 못한다.
진로상담교사와 보건교사도 대폭 줄어든다.
교육감 공약으로 확대 추진하려던 ‘교원 연구년’은
대상 교사 358명의 예산 179억 원이 전액 삭감돼 내년부터 잠정 중단된다.
교원힐링센터와 보건교육센터, 경기학습클리닉센터 건립은 보류됐다.
무상급식 등 복지예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교육의 ‘질’은 밀려나는 상황이다.
○ 무상복지에 교육사업 차질
전남도교육청은 학교 시설사업비가 해마다 큰 폭으로 줄고 있다.
강당 신축과 특별교실 증개축 같은 시설 예산이
2009년 1210억 원에서 지난해는 401억 원으로 67%가량 급감했다.
학교 외벽 균열보수, 방수작업 등 안전 관련 교육환경개선 사업비도
1175억 원에서 지난해 906억 원으로 23% 삭감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교육환경개선 사업비 감소가 누적되면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전시 관계자도 “무상급식에 너무 많은 예산을 지원하다 보니
힐링캠프 같은 청소년 선도사업도 하기 어렵다”며
“새로운 교육사업 발굴은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전남도교육청은 내년 예산이 2000억 원가량 부족할 것으로 보고
교직원 명예퇴직을 절반으로 줄이는 한편 ‘농어촌 에코버스’ 등
주요 정책도 최소한만 도입할 것을 검토하는 등
예산 절감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은 최근 은행에서 ‘급전’ 100억 원을 빌렸다.
정부 교부금은 늦고 당장 지급해야 할 공사대금과
물품구입비 등은 쌓였기 때문이다.
이 교육청 관계자는 “내년 재정이
1900억 원가량 부족할 것으로 예상돼
무상복지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감들의 무상급식 확대 공약도 재정난에 부딪혀 ‘빈말’이 되고 있다.
인천시교육청은 교육감 공약인 중학교 무상급식을 내년부터 시행하려 했지만
인천시와 기초자치단체의 예산 분담이 확정되지 않아 불투명한 상태다.
교육청은 초등 무상급식 예산 319억 원을
인천시에 요청했지만 244억 원만 편성됐다.
중학교 무상급식은커녕 초등학교 급식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인천시 관계자는 “재정 압박이 심해 지방채 발행을 확대하거나
급식비 정부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부산시교육청은 중학교 무상급식을 내년부터 도입할
계획이었으나 일단 1년 정도 미루기로 했다.
부산시는 내년 초등 무상급식 예산을 50억 원 늘려달라는
교육청의 요구를 거절했다.
김석준 부산시교육감은 “정부 교부금이 크게 줄어드는 데다
지자체의 지원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교육재정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며
“중학교 무상급식 유예에 따른 예산 106억 원은
교육환경 개선사업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충북도교육청도 교육감 공약인 무상급식 확대를
예산 사정으로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 소방도로도 못 내는 실정
무상급식 등 복지 수요는 치솟고 있지만 지자체들은
주민을 위한 최소한의 민원조차 해결해주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복지가 봇물 터지듯 하다 보니
지자체 기능이 마비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광주 동구는 숙원사업인 도시재생 선도지역에 선정됐지만
구청이 부담해야 할 50억 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또 옛 위생매립장에 짓고 있는 다목적체육관 건립의 구청 부담금
17억 원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광주 남구도 내년 6월 준공 예정으로 건립하고 있는
다목적체육관에 공사비 38억 원이 모자라 공사가 중단될 처지다.
광주 서구에는 30년 된 낡은 구립어린이집을 다시 짓고
비좁은 동사무소를 신축해 달라는 민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예산이 없어 손을 대지 못하는 실정이다.
서구 관계자는 “도로 개설도 여러 곳 필요하지만
전혀 추진하지 못한다”며 “표를 앞세운 무상복지가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재정자립도가 15% 수준인 대구 서구는 복지예산에 기반시설 보수공사 등
필수 예산을 제외하면 자체 사업에 쓸 예산은 거의 없다.
낡은 동주민센터 신축이나 아스팔트 포장,
인도 블록이나 가로등 교체도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서구 관계자는 “문화회관의 음향장비 교체비용 5000만 원이 없어
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는 마이크를 고치면서 대충 쓰고 있다”며
“대응 투자할 여력이 없어 복지사업 하기가 겁이 난다”고 말했다.
서구는 예산(2290억 원)의 59%(1341억 원)가 복지예산이다.
대구 남구는 재정자립도가 10%로 전국 최하위권이지만
복지예산은 전체 예산(2231억 원)의 57%인 1272억 원이다.
600m짜리 소방도로 개설도 20년 동안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구 관계자는 “지방채 발행은 재정 여건을 더 어렵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며
“답답해서 에너지 절약과 일상적인 경비절약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戰作權(전시작전통제권)을 군사주권이라고 선동하는 이들"
單政 반대파 통일정부 열망은 서울 아닌 평양서 폐기됐는데
'이승만은 분단惡'이라 매도해 전쟁 억지 효과 큰 戰作權
행사
전환 연기한 걸 대외從屬이라니 정곡 떠난 민족주의 재연하나
이승만과 김구. 1945년 8월 광복 후 이 두 거인(巨人)은
서로 등을 보이며 반대 방향으로 갔다.
한 사람은 대한민국 건국으로, 또 한 사람은 '단독 정권(대한민국)' 수립 반대로.
그리고 70년이 흘렀다. 남은 것은 이승만 노선과 김일성 노선의 둘뿐
김구·김규식·남북협상파 노선은 휴전선 양쪽에서 다 사라졌다.
이게 '해방 70년사'의 움직일 수 없는 기정사실이다.
이 기정사실은 그러나 휴전선 이북에서는 확고하게 굳어졌는데
휴전선 이남에서는 그러지 않았다는 데에 한국 정치의 아이러니가 있다.
대한민국이 선 지 69년이 지났는데도, 그래서 그 나라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개최할 정도로 컸는데도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 노선이 옳은가,
김구의 남북 협상 노선이 옳은가?"라는
'선사(先史) 적' 싸움이 툭하면 재연(再燃)하곤 한다.
그것도 사극(史劇)이 아닌 국회에서까지.
이건 무얼 뜻하는가?
우리 정계와 지식인 사회 일각엔 아직도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에 대한 불복(不服)이
끈질기게 꿈틀거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불복 심리가 '이승만 죽이기'와 '김구 띄우기'로 연출되는 것이다.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 노선은 '분단 악(惡)'이고,
이에 반대한 김구의 남북 협상 노선만이 '통일 선(善)'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이는 중대한 사실 오인(誤認)이다.
분단은 북쪽의 인민위원회 1당 독재가 먼저 시작했다.
이승만은 그에 대응해 '가능한 지역이나마' 자유 체제로 건지려 한 것뿐이었다.
1948년 4월 19~23일 평양에서 있었던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에 참석한
김구 등의 '통일적 민주 정부론'을 짓밟은 장본인도 이승만 아닌 김일성이었다.
김구·김규식 등 남북협상파는 남과 북의 일대일
협상을 기대하고 평양에 갔다.
그러나 회의장에 가보니 그들은 수많은 공산당
외곽 단체 틈에 섞인 '여럿 중 하나'였다.
회의는 공산당이 짜놓은 각본대로 진행되었다.
남쪽 참석자들은 발언 한 번 변변히 하지 못했다.
4월 30일에야 남북협상파의 입장이 반영된 '전(全) 조선 정당·사회단체
지도자 협의회 공동 성명'이라는 문건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성명은 이랬다. '외국군이 철거한 후에 민주주의 임시정부가 수립될
것이며,
이 정부는 일반적·직접적·평등적·비밀 투표로
통일적 조선 입법 기관 선거를 실시할 것이며,
조선 헌법을 제정하여 통일적 민주 정부를 수립할 것이다.'
남북을 통틀어 자유선거를 실시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헌법을 만들어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성명에 김일성은 뭐라고 반응했을까?
"엿장수 마음대로?" 하며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그는 이미 소련 점령군 사령관 스티코프의 지령에 따라
부르주아 민주주의 아닌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을
착착 진행시키던 참이었으니까.
김일성에게 남쪽의 남북협상파는
그들이 평양에 오기까지만 유용했을 뿐 그 이후는 필요 없었다.
이렇게 해서 김구·김규식 등 남북협상파의 '통일 민주 정부'
여망은
서울이 아닌 평양에서 폐기 처분당했다.
그래서 거듭 확인해야 한다.
"김구 등의 통일 충정을 실컷 이용만 해먹고 차버린 악당은
이승만이었나 김일성이었나?"
김일성이었다.
이게 그때의 사실이자 진실이다.
김구·김규식의 두 리더는 그래서 장개석 중화민국 총통의 특사
유어만(劉馭萬)의 설득대로 김일성의 '남북 협상 쇼'에 말려들기보다는
이승만과 함께 반(反)전체주의 자유 진영을 짰어야 한다.
그리고 다퉈도 그 안에서 다퉜어야 한다.
그러나 김구는 이를 사양하고 "소련이 북조선군(軍)을 남진시켜
인민공화국을 선포할 것"이라는 당장의 대세(大勢)론에만 잠겨 있었다.
민족주의의 화살이 정곡(正鵠)을 비켜 가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정곡을 비켜가는 민족주의 화살이 지금도 곧잘 있다는 사실이다.
한·미 FTA를 '이완용 짓'이라고 몰아붙이더니,
이번엔 또 전작권(戰作權) 전환 연기를 '군사 주권 포기'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매도하는 소리가 들린다.
야당으로서 이견(異見)은 말할 수 있지만 가장 확실한 전쟁 억지 장치를
그렇게 '대외 종속'이라고 터무니없이 때려잡는 것은
1980년대 NL(민족 해방) 운동권의 초짜들이나 하던 짓이다.
이런 용어 과잉, 남발은 노무현 시대로 끝났어야 한다.
이 시대의 민족주의는 '글로벌 민족 이익 추구'로 새롭게 정의(定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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