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강원도교육연수원에서 책자를 하나 발행한다고
교장연수 후기를 보내달라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원고를 보냈더니 책자가 한 권 왔더군요.
옮겨봅니다.
눈을 밟는 심정으로
(교장 자격연수 후기(後記))
김 태 완
철원중학교 교감
“내가 무엇이 안 되었음을 안타까워하지 말고 내가 무엇이 되었을 때 그것에 대한 준비가 없음을 걱정하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권 중간쯤에 소개된 글이다. 과문(寡聞)한 탓에 원문(原文)을 알 길은 없고 굳이 찾으려는 수고도 하지 않았지만, 지난 번 교감 자격연수와, 또 이번 교장 자격연수를 받을 때 화두(話頭)로 간직했던 말이다.
하기야 언제 내가 교감이 되려고 아등바등한 적이 있었으며, 교감이 된 후에도 언제 교장강습을 받을까를 궁금해 본 적이 있었던가?
교직 25년의 경력을 갖고 철원여고에 전근 가 보니, 어느덧 고참교사의 반열에 끼인 나를 발견했고, 분에 넘치게도 교무부장으로 임명 받았을 때 다른 선생님들의 전보 내신서, 교감 자격연수 대상자 평정표를 검토하면서 처음으로 ‘승진하려면 이런 점수들이 필요하구나!’ 하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 후로도 점수 챙기기보다는 철없이 아이들에게 수학 공식 하나 더 머릿속에 넣어주려고 회초리를 손에 달고 살았고, 주위의 선생님들이 내가 교감강습 지명을 받지 못함을 안타까워 할 때도 ‘때 되면 하겠지. 아직은 교실이 나에겐 더 소중하니까’ 하고 살았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남들보다 늦게 교감 자격연수를 받게 되었고, 교감 발령을 받았을 때도 기쁘기보다는 내 결정을 기다리는 선생님들에게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기억만 남아 있다.
이제, 교장 자격연수를 마치고 발령을 대기하고 있다. 과연 내가 교장을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교직에 들어와 36년 동안 모두 열아홉 분의 교장선생님을 모셨다. 젊었을 때는 그저 어려운 존재였을 뿐이어서 그 분들께 배운 것이 머리에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중년에 들어서부터 때로는 경탄을, 때로는 아쉬움을 갖고 교장선생님을 보게 되었다.
횡성여고에 재직할 때의 일이다. 그 시절은 학교 운동장에서 야영을 했다. 선생님들이 다도교육, 예절교육, 체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나는 캠프파이어를 맡게 되었다. 3층 옥상에서 운동장 중앙까지 케이블을 설치하고, 철사로 ‘횡 여 고’라는 글씨를 만들어 솜을 감아 세운 후에 조례대에서 학생회장과 교장선생님이 점화하여 글씨에 불을 붙이고, 그 불이 케이블을 타고 옥상까지 가서 솜뭉치에 점화, 케이블을 타고 운동장 중앙의 나무더미에 떨어지게 하면 불꽃이 확 일어나고, 그러면⋯ 참 멋있겠다⋯⋯.
나무는 300명의 재학생이 가져오는 장작을 사용하면 될 테고⋯⋯
그런데 막상 학생들이 준비한 장작은 장작이 아니라 성냥개비 수준이었다.
할 수 없이 교장실로 들어갔다.
“교장선생님, 여차여차해서 화목을 좀 사 주시면....”
당시 교장선생님 말씀을 그대로 옮기면
“아, 뒷산에 오리나무는 뒀다가 어디 써요? 그렇잖아도 간벌을 좀 해야 할 텐데.”
“누가 가서 잘라옵니까? 여선생님들 보고 하랄 수도 없고, 남자라고는 저 혼자인데 저도 맡고 있는 강좌가 있고.”
“아, 교장이 뭐해요! 할 일도 없는데 내가 잘라 오죠.”
“이 더위에요? 연세도 있으신데, 더위 잡수실라고”
왜 할 일이 없으시겠냐만, 하여튼 그리 돼서 교장선생님께서 행정실 김기사님과 두 분이서 삼복(三伏) 염천(炎天)에 넓적다리만한 오리나무를 다섯 리어카나 베어 운동장 중앙에 부려 놓으셨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
“김 선생! 숙제 다 했어요. 숙제 검사 해 줘요.”
죄송스럽지만 일부러 건방을 떨며 나가 보지도 않고 교무실 창 너머로 보고는
“수고하셨습니다. 됐습니다.”
“아! 이제 검사 끝났으니 샤워나 하고 쉬어야겠네.”
김택수 교장선생님이시다!!! 당신께서 지금 내 나이쯤 되셨을 때의 일인데, 지금의 나는 학교 4층 순시도 귀찮아하고 힘들어한다. 그 외에도 많은 일화로 가르침을 주신 분이시다. 내가 교장이 되면 과연 이 분만큼, 아니 반의 반 만큼이나마 할 수 있을까?
열아홉 분의 교장선생님 중에는
계신지 안 계신지 알 수 없이 조용하셨던 교장선생님,
기안문에(빈 기안용지 양식에 손으로 쓸 때다) 한 글자 틀렸다고 빨간 펜으로 북 그으시던 교장선생님,
바다낚시를 배워 보시겠다고 하시기에 모시고 갔더니, 몇 번 릴을 던지시다 당신 때문에 선생님들 낚시에 방해만 된다고 하시며 잡은 고기 회 치시어 술병 차고 초고추장 들고 고기 낚은 선생님들 축하주 드린다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시던 교장선생님,
되지도 않을 일에 고집세우시며 선생님들을 몰아세우던 교장선생님, ⋯⋯
각각의 개성이 있으신 분들이셨다.
난, 어떤 교장이 될까? 어떤 교장이 될 수 있을까?
교장 자격연수를 받는 내내 머리가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시․도연수를 제외하고서도 교원대에서 361시간이나 연수를 받았음에도 더 더욱 혼란스러워질 뿐이었다. 금과옥조(金科玉條)같은 좋은 내용의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일본 학교 방문을 한 후에야 조금은 가닥이 잡혀 갔다. 일상적으로 지나던 우리 교육의 타성에 젖어 있다가 우리와 다른 것을 보고 난 연후에야 갈피를 잡을 수 있었으니 가끔은 새로운 것을 접할 필요가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과연 학생들의 미래를 열어주는 교육의 책임자가 될 수 있을까?
나 혼자만의 일이라면 내가 책임지면 되고, 평교사라면 내가 수업하는 반과 담임 반만 책임지면 되었다. 교감이 되어서는 교장선생님이 있으니 의견을 말씀드려 같이 생각하면 되었는데 이젠 내가 잘못 판단하면 한 학교가 흔들리게 된다.
과연 내가 교장이 되어도 될까? 교직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36년간 내 마음에 깊이 간직하고 살아온 서산대사의 답설(踏雪)로 지금의 내 심경을 대변하며, 글을 끝맺고자 한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말라
今日我行蹟(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2010. 11. 금학산 자락에서
첫댓글 좋은내용의 훌륭하신 후기 잘 읽었습니다.....부디 기억남는 교장선생님으로 회자 되시길 기원드립니다.....다른분들 의 좋은자료 있으시면 자주 게재하여 주세요.....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다우십니다. 우리 가르치실때만 해도 펄펄 나시는 청년 선생님이셨는데... 교장선생님이 되신다니 축하를 드리면서도 감회가 새로워집니다. 선생님께서는 교육철학이 뚜렷하셔서 어느 학교에 가실런지 배우는 학생과 선생님들이 좋아 하실겁니다. 교장직을 훌륭히 수행 하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점쟁이 걸랑요. ㅎㅎㅎ
축하, 아니 경하 드립니다.
좋은 기억이 더 많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했던 1년동안요... 아직도 제 가슴은 고3시절 열정으로 넘치시던 선생님 생각으로 가득하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