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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그룹제로 3인전
김용정·김지연·안일순
2005.6.18.토-7.1.금|대안미술공간 소나무|초대일시 6.18(토) 오후 3시 30분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계륵리 232-8|TEL 031·673·0904|www.sonahmoo.com
2005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기획초대 세 번째 전시는
아트그룹제로의 M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전으로
각자 서로 다른 장르에서 활동해 왔던 여성 3인이 모여
알파벳 M에 관한 이야기를 회화에서 사진, 조각, 설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들을 이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형식으로 펼쳐보입니다.
.....내가 만난 안일순, 김용정, 김지연 역시 한 번도 정규 미술수업을 받지 않은 비주류 대안 작가들이다. 그 동안 소설가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혹은 사진작가로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해왔던 이들은 지난 겨울 한 스튜디오에 모여 아카데미즘에 반대하는 대안 미술인 모임인 아트그룹제로 결성식을 가졌다. 그동안 주류, 비주류 혹은 프로, 아마추어 작가로 구분되어 왔던 미술계의 높은 벽과 경계를 제로 상태로 만들어 보겠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들 그룹활동의 결실이자 첫 출발점이 될 이번 전시는 ‘Story about M’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알파벳 M은 거꾸로 하면 여성을 뜻하는 우먼의 첫 글자 W가 된다. 한 가정의 며느리, 엄마, 아내, 여성 전문인으로써 1인 4역의 삶을 살아왔던 그들이 지금까지의 일상을 뒤집고 온전한 예술가로써의 변신 혹은 반란을 꾀하는 첫 시도가 될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다양한 그들의 이력만큼이나 저마다 개성 있고 독특하지만 자신의 일상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의 엄마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임무를 다했던 그들은 이미 불혹을 넘기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가장 원했던 예술가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에게 예술은 치열한 번뇌의 대상도 현실을 등진 고독한 수행의 대상도 아니다. 그저 일상의 대상이자 그들이 살고 있는 일상 그 자체인 것이다. 늦은 나이에 신진작가의 대열에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민 그들에게서 한국 현대미술의 대안을 기대해본다.
이은화 (예술행정|중앙대강사)글 중에서
일상이 만든 예술가
● 예술가는 어떤 사람일까? 그들은 왜 예술가가 되었을까? 예술가의 조건은 또 무엇일까? 한때 의학도였던 볼프강 라이프는 의학의 한계를 예술로 극복하기 위해 예술가의 길을 택했고 유도 코치로 이름을 날렸던 이브 클랭은 정신의 자유를 위해 예술가의 길을 선택했다. 미식축구 선수이자 예일대 의대생이었던 매튜 바니는 치밀하고 복잡미묘한 영상물인 <크래마스터> 시리즈를 통해 남근주의적 사회를 비판하고자 했고, 캠브리지 대학에서 역사와 미술사를 전공했던 마크 퀸은 자신의 혈액을 수혈하여 만든 <셀프>라는 자소상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20세기 현대미술사를 논함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그들은 하나같이 예술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나름대로의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20세기 미술의 대가 요셉 보이스가 남겼던 ‘우리 모두는 다 예술가’라는 말은 곧 미술계의 예언이 되었고 지금 지구상 곳곳에는 비정규 코스로 혹은 독학으로 성공한 예술가들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윤석남, 김아타와 같은 국제급 작가들이 이들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내가 만난 안일순, 김용정, 김지연 역시 한 번도 정규 미술수업을 받지 않은 비주류 대안 작가들이다. 그 동안 소설가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혹은 사진작가로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해왔던 이들은 지난 겨울 한 스튜디오에 모여 아카데미즘에 반대하는 대안 미술인 모임인 아트그룹제로 결성식을 가졌다. 그동안 주류, 비주류 혹은 프로, 아마추어 작가로 구분되어 왔던 미술계의 높은 벽과 경계를 제로 상태로 만들어 보겠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 이들 그룹활동의 결실이자 첫 출발점이 될 이번 전시는 ‘Story about M’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알파벳 M은 거꾸로 하면 여성을 뜻하는 우먼의 첫 글자 W가 된다. 한 가정의 며느리, 엄마, 아내, 여성 전문인으로써 1인 4역의 삶을 살아왔던 그들이 지금까지의 일상을 뒤집고 온전한 예술가로써의 변신 혹은 반란을 꾀하는 첫 시도가 될 이번 전시는 미대를 졸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상 비주류 작가로 분류될 수 밖에 없었던 마이너리티 작가들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전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다양한 그들의 이력만큼이나 저마다 개성 있고 독특하지만 자신의 일상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 <뺏벌><과천미인> 등의 소설가로 알려진 안일순은 에너지가 넘치는 행동하는 예술가다. 전직 국어교사이기도 한 그녀는 그동안 시나리오 작가, 퍼포먼스 예술가, 행동주의자, 페미니스트, 연출가, 화가 등 다양한 수식어를 달고 다양한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해왔다. 일상 속에서 예술의 소재를 찾기보다 직접 발로 뛰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는 현장을 자신의 일상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안일순은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중시해 왔던 작가이다. 그녀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필리핀의 전 미군기지인 캡콤과 마답답 마을을 직접 방문하고 그곳에서 만난 미군기지의 피해 여성과 기형으로 태어난 어린아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녀는 여러 장의 투명한 플라스틱 필름 위에 사진을 복제한 후 그 위에 글을 쓰고 해체하고 또 쓰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여 투명한 문자 회화를 만들어 냈다. 분해되고 해체되어 모호한 이미지로만 남아 있는 그녀의 작업은 더 이상 이미지도 문자도 아닌 동시에 둘 다를 수반한다. 그런 작업을 그녀는 언화도 혹은 언화설계도라 명명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글쓰기에 매달려 왔던 그녀는 문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미지를 차용하기 시작했고 이미지를 통해 문자를 파괴하고 해체시켜 언어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고 언어와 이미지의 경계를 허무는 일에서부터 다시 출발하고 싶다고 말한다. 문자와 이미지 사이에서 애매모호하게 경계하고 있는 그녀의 언화도는 그런 점에서 다분히 성공적이며 완성을 위한 예술이 아닌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프로세스적 작업인 것이다.
● 김용정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천상 여자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다양한 패턴의 천과 비즈, 단추, 레이스, 냅킨 등 지극히 여성적인 일상용품들을 가위로 자르고 오리고 붙여 만들어낸 그녀의 지도 그림은 일단 그 섬세함과 화려한 색상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프리랜서 편집 디자인을 하는 그녀는 자신의 일상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신의 집에서 작업의 모티브를 찾았다. 자신과 가족의 보금자리인 분당의 한 아파트에서부터 자신의 이동 경로를 따라 분당 지역의 지도를 작은 캔버스에 옮겨 그린 그녀의 지도를 보고 있으면 수공예품 신 네비게이션으로 분당 지역을 들여다 보는 듯하다. 이제 10년이 조금 넘은 신도시 분당은 그동안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도시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부동산 관련 기사가 탑 뉴스가 되는 한국 사회에서 분당은 항상 삶의 터전이 아닌 투기의 대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땅을 둘러싼 끊임없는 분쟁과 소송과 비리와 투기의 도시 분당은 과거 개발독재시대의 후유증을 그대로 안고 있는 도시다. 90년대 초부터 분당에서 살아왔던 김용정은 이 도시를 둘러싼 모든 사건들을 지켜봤던 증인이자 수혜자였고 또한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녀는 작업노트에서 ‘나의 작업 속에는 전쟁이 있고, 인간의 욕심이 있고, 사람이 있고, 타협이 있고, 억울함이 있고, 평화가 있고, 삶의 터전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산, 호수, 공원, 아파트, 자동차 길, 슈퍼마켓, 병원, 반찬가게, 음식점 등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버려진 일상의 오브제로 섬세하고 꼼꼼하게 재현한 그녀의 지도는 그저 단순한 지정학적 지도가 아니라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이웃의 삶과 역사와 애환이 담긴 생동하는 삶의 지도인 것이다.
● 김지연은 자신의 일상에서 작업의 모티브를 얻기 보다 남편이 일상을 보내는 장소를 자신의 일상으로 끌어들인다. 남편의 직장인 병원을 자신의 작업실로 애용(?)하는 김지연은 누구에게나 기피대상이자 공포의 대상인 치과를 남편 따라 매일 출퇴근 하면서 사진 작업을 해왔다. 고통과 고문의 현장을 기록하고 싶어서 병원이라는 장소를 택했지만 그곳에서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색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사진들 속에서 병원의 이미지나 고통의 이미지를 발견하긴 힘들다. 이름 모를 낯선 치과 기구들이나 남편이 의학용도로 찍어 놓은 엑스레이 사진들을 핀트를 흐리게 재촬영한 그녀의 사진들은 모호한 매력을 발산하는 한 폭의 회화를 연상시킨다. 의료용 매스로 인해 피 범벅이 된 한 환자의 잇몸은 강렬한 붉은색의 추상회화가 되고 낯선 의료기구들은 어느새 기하학적인 패턴의 추상회화로 변신한다. 의도적으로 핀트를 흐리게 촬영한 그녀의 사진들은 회화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 현실의 포착과 재현이라는 사진 본래의 속성과 기능을 철저히 왜곡시켜버린다. 카메라를 통해 실재하는 오브제를 보이지 않게,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오브제를 눈에 보이게 만들 줄 아는 그녀는 사진을 잘 찍는 사진작가라기보다 카메라로 주술을 부릴 줄 아는 마술사에 가깝다.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면서도 절대 컴퓨터를 이용한 보정이나 수정작업을 하지 않는 그녀의 사진 속에서 구체적인 형상을 띤 병원 기구들은 추상적인 형태로 변형되고 치아를 찍은 엑스레이 사진 속에선 엉뚱하게도 날고 있는 새의 형상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마치 매직처럼.
● 아이들의 엄마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임무를 다했던 그들은 이미 불혹을 넘기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가장 원했던 예술가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에게 예술은 치열한 번뇌의 대상도 현실을 등진 고독한 수행의 대상도 아니다. 그저 일상의 대상이자 그들이 살고 있는 일상 그 자체인 것이다. 늦은 나이에 신진작가의 대열에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민 그들에게서 한국 현대미술의 대안을 기대해본다.
이은화 (예술행정|중앙대강사)
김용정|KIM YONGJEONG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292 효자촌 311-1003
016·738·8368|catharine@kornet.net
1962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부산 대청동 산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산 중턱에서 아랫동네의 지붕 조각들과 계단, 탁 트인 하늘을 보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이화여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였으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으로 다양한 미술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염색, 패턴디자인, 드로잉, 사진, 컴퓨터그래픽, 편집디자인, 책그림 등의 분야를 홀로 혹은 비정규적 통로로 공부하였다. 김건희에게 회화와 염색 사사, Cuyahoga Community College(미국 오하이오) 예술학부 1년 수료, 가톨릭사진문화원 수료, Alberta College of Art and Design(캐나다 캘거리) 책그림 과정 수료, 그리고 10년 전 DTP 독학 후 현재까지 편집디자인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영역을 경험하였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아내로서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면서 ‘새로운 시작’의 시점을 40대로 잡고 꾸준히 준비해왔다. 그리고 이제 그 시간이 되어 지금까지 모은 조각들을 나만의 독특한 방식을 통해 엮어내려 한다.
My Map 463
'My Map'은 나를 포함해서 내가 사는 동네 이웃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우리 모두의 공통된 삶의 이야기로의 초대이다.
‘지도 地圖’는 말 그대로 ‘땅 그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표면의 모양, 개인의 또는 공동의 편의 내지 이익을 위해 분할된 땅의 형태이다.
산과 강, 들과 도랑, 언덕, 둑길, 자동차길, 횡단보도, 샛길, 산책길, 다리, 개천 길, 아파트, 고층 건물, 단층집,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 옷가게, 반찬가게, 슈퍼마켓, 병원, 은행. 내 땅, 네 땅, 빌린 땅, 조상 무덤이 있는 땅, 서로 맞물려 싸움이 끊이지 않는 땅, 빼앗긴 땅, 거저 얻은 땅, 숨겨 놓은 땅, 그리고 선을 확실히 그을 수 없는 바다…. 똑바로 그은 선, 구불거림, 탁 트임, 좁아터짐, 비탈짐, 오밀조밀함, 숨 막힘, 막다름….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태어나서 발 디디고 살아가는 공간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울고 웃고 춤추고 상처받고 위로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며 살다가 죽어 묻힌다. 우리는 한데 엉켜 상호작용을 하며 또 홀로 서있다. 나의 정체성, 소유, 생사, 뿌리의 이야기가 작은 조각들의 모음으로 펼쳐져 있다.
‘지도’는 우리들의 애환을 담은 선으로 나뉘어져 있다. 나는 그것을 캔버스에 위치 이동 시키며 재구성 한다. 천과 단추, 비즈, 레이스, 털실, 그리고 방 구석에 돌아다니거나 장롱 어딘가에 처박혀 있음직한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 오브제들을 자르고 붙이고 꿰매고 연결하고 덧칠하는 작업을 통해 우리들의 관계와 삶의 이야기를 내어 놓고 재조정하려 한다.
Story About Military Madness
안일순|AHN ILSOON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학일리 486-2|010·3001·1775|ahnilsoon2000@yahoo.co.kr
부산에서 태어난 나는 괴짜 아버지를 만난 덕에 서울, 문산, 홍천, 강화도 등지로 스무 번도 넘는 이사를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소설과 희곡인 <뺏벌>, <과천미인>, <사랑이 싫은 이유> 등에 담으면서 오로지 문자라는 표현방식에만 매달려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소설집의 표지 그림을 부탁하기 위해 방문한 윤석남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충격을 받았다. 삼천매가 넘는 원고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그 분은 단 한 개의 버려진 나무 조각에 새겨 넣고 계셨던 것이다. 나무 위에 으깨진 한 여자의 얼굴은 나의 심장을 두들겼다. 나무작업에 매료된 나는 무조건 그 작품을 탐구하고 모방하고 흉내 내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나는 시각이미지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조미연, 이경신, 이은화 등의 젊은 작가들을 찾아 다니며 그들에게 새로운 표현방식을 배웠다. 그리고 기지촌 여성기금마련전(21세기화랑), 캐나다전시‘幻’(Galleries@the galleria화랑), 개인전‘이복남’(한국미술관) 등을 가지게 되었다. 표현의 확장을 위해 더 많은 장르를 결합해 보고 싶으며 최근에는 총체예술이라 할 수 있는 퍼포먼스 <닥쳐 퓨쳐>와, 여성평화 祭儀인 <Art in action> 등을 구성 연출하기도 하였다.
Military Madness
言/畵/圖
나는 언어(言)의 생각을 그린다(畵). 이를 언화도(言畵圖)라 명명한다. 언화도는 언어와 이미지의 설계도면으로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나만의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다. 언화도는 이미지를 사용한 언어파괴. 언어해체부터 시작한다. 새로운 답을 구하기 위해선 새로운 질문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자의 이면에 가려진 진실, 언어의 배후에 있는 생각을 캐내는 것, 그것은 문자와 이미지의 경계를 허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기존의 글쓰기 방식을 낯선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글 그리기, 또는 그림 쓰기라는 방식을 나의 주요한 표현도구로 삼기 시작한다. 언화도는 작업의 순차성이 없다. 시작과 끝이 모호하다. 부서진 이미지들이 조합된다. 문장은 토막 나고, 문자와 그림이 비벼진다. 시인지 그림인지 낙서인지 모호하다. 깨진 문자들이 병렬 결합한다. 언화도는 클리쉐에 익숙한 눈을 불편하게 하므로써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진다.
Military madness는 2004년 11월 필리핀의 전 미군기지인 캡콤과 마답답 마을을 방문하고 거기서 만난 여성과 아이들의 삶을 형상화한 언화도 첫 번째 작업이다. 미군이 버리고 간 땅 캡콤은 군대의 독극물과 중금속으로 오염되어 있었다. 수년간 이 땅에서 살던 마을 주민들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이백여 명이 넘는 기형아들이 태어났다. 아이를 가진 여자들은 사산하거나 암에 걸렸다. 지금도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필리핀 여성과 아이들. 나는 이 군사주의의 속성을 반짝이면서 번들거리는 PVC필름과 OHP필름의 결합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다. 필름들은 현상되지 않은 음화들처럼 빨래집게에 걸린 채 줄 또는 나무 아크릴 사각 안에 설치된다. 필름의 플라스틱 물성은 군사주의의 독성처럼 투명하면서도 공업적이고 흡착력이 강하다. 이 필름들을 매체로 하여 아날로그와 디지털방식의 반복 작업을 통해 Military madness라는 주제를 표현해 보았다.
사이라
필리핀땅끝마을마답탑에는사이라가산다일곱살짜리사이라는키가크지않는다사이라는늘눈물을흘린다블로크로두른담안에는여덟형제들과개와닭과고양이들이같이산다엄마는냉랭한부엌앞에앉아늘고운수를놓는다삼일꼬박수를놓으면25페소를번다동네에는아이들이꼬부라진손가락으로하루종일춤을춘다땀을뻘뻘흘리며비비꼬인팔다리로트위스트를춘다마답탑에서제일큰것은성당이다일요일이면모두들성당에엎드리어기도를하지만천주님은귀가멀었다잊혀진땅끝필리핀마답탑마을에는그래도여전히아이들이태어나고봄에태어난아가가을에죽고가을에태어난아가봄에죽고마답탑요새는깊고단단해세상밖으로비명은들리지않고마답탑에는오늘도사이라가울고있다
CABCOM
캡콤에붉은달뜨다하늘에서독수리털쏟아져내리다캡콤에붉은폐수흐르다납수은질산석유기름칠을하고아이들태어나다벼락이치며화산이폭발하다우물물이펄펄끓기시작하다이백세개의펌프에서일제히붉은물이치솟다나무가부러지다아이들이고양이처럼울기시작하다처녀가죽은아이를낳다어미가새끼를목졸라죽이다싸늘하게식은시신앞에서밤새어미가짐승처럼울부짖다독기오른아비의눈에서붉은눈물흐르다땅위에떨어진눈물은독극물이되어다시땅속에스며들다캡콤에붉은달뜨다하늘에서독수리털쏟아져내리다캡콤에붉은폐수흐르다납수은질산석유기름칠을하고아이들태어나다벼락이치며화산이폭발하다우물물이펄펄끓기시작하다이백세개의펌프에서일제히붉은물이치솟다나무가부러지다아이들이고양이처럼울기시작하다처녀가죽은아이를낳다어미가새끼를목졸라죽이다싸늘하게식은시신앞에서밤새어미가짐승처럼울부짖다독기오른아비의눈에서붉은눈물흐르다땅위에떨어진눈물은독극물이되어다시땅속에스며들다
히빠리
식민일번지에밤이오면네온사인과레이션과위스키와매독균과임질
즈균이농이되어질질흘러나오고번쩍이는조명등아래환각과마리화나와포르노와달러와피에젖어허공을휘젖는손바닥이잘리워지고어두운골목에붉은달뜨고히빠리와콘돔과중성자탄과핵탄두와헬기와피고름과구데기와노랑내와펄럭이는성조기가미쳐날뛰고마돈나와정신착란과마이클잭슨과헬멧과방독면과허슬러와우산대가헐떡이며헐떡이며헐떡이며콜라병을내리꽂았다
Story About Medical Mystery
김지연|KIM JIYOUN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선경아파트 301-1604
017·349·2815|kjyoun6541@hanmail.net
화가, 음악가, 발레리나 등을 배출한 예술가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예술가 집안의 자손답게 나 역시 한 예술을 해보려 시도했으나 신은 가혹하게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평범한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적성과는 무관하게 성적에 맞춰 국어교육과에 진학했다. 무료하기 짝이 없던 대학 시절 사진 동아리 활동으로 인연을 맺게 된 카메라는 내 생애 최고의 고가의 장난감이었다. 학과 공부는 눈치껏 요령껏 접어두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면서 사진의 매력에 푹 빠졌고 사진 작가가 되려고 결심했다. 그런 결심도 잠시, 졸업과 동시에 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남편을 포함한 사내 아이 둘을 키우고 달래고 싸우고 하는 동안 이미 불혹의 나이가 되어 버렸다. 아들의 사춘기는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였다. 아들에 대한 나의 관심을 분산시켜 서로의 긴장을 덜어내려는 노력으로 ‘나를 찾는 작업’을 시작했다. 화실이나 대학의 평생교육원 과정들을 몇 년간 기웃거리기도 했고 부지런히 미술관들을 돌아다녔고 미술이론 공부를 통해 작업세계를 만들어 갔다. 아트그룹제로의 멤버로 활동하며 다른 장르의 작가들을 만나 신나게 수다를 떨었고 그동안 눌러왔던 ‘끼’를 발산하기 위해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이미 몇 차례의 그룹전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은 나는 올 한해 예정된 전시 준비로 정신 없이 행복한 나날에 빠져 살고 있다.
Medical Mystery
세상 사람들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을 몇 곳 말하라면 빠지지 않을 곳이 병원 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치과는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공포의 대상이다. 지익 지익 치과에서 나오는 그 특유의 소름 끼치는 소리와 냄새 만으로도 긴장과 공포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의자 위에 앉아 입을 벌리고 의사를 기다리는 순간은 마치 고문의자에 앉아 고문관을 기다리고 있는 발가벗겨진 포로의 심정과 흡사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 그 고문의 현장을 고통과 공포의 현장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가 튀기고 쓱싹쓱싹 살이 잘려지고 오려지고 대용품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다시 붙여지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한 컷 한 컷 조심스럽게 셔터를 눌렀다. 처음엔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에 포커스를 맞추다가 점점 그 주변의 병원 기구와 기기들까지 찍기 시작했다. 피비린내와 소독약 냄새, 병원기구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내 눈에 그리고 코에 익숙해져 오고 있었다.
어려운 병원 촬영을 끝내고 인화를 했을 때 내 눈 앞에 펼쳐진 사진들은 더 이상 고통도 공포의 이미지도 아니었다.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던 환상적인 붉은 핏빛과 심연 마냥 깊고 푸른 빛, 각종 병원 기구들이 가진 매혹인적 원색 컬러들은 Beauty 그 자체였다. 거기엔 고통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운 색이 있었다.
내 작업 속에서 모든 사물들은 흐릿하고 혼동되어 원래의 정체를 알기가 힘들다. 이미지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색 자체에 포커스를 주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병원의 색, 감추어진 아름다운 고통의 색만을 관객들이 보고 상상하길 바란다.
나는 오늘도 다시 카메라 가방을 챙겨든다.
고통의 현장 공포의 현장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현장을 발견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