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돌아가는 꼴이 참 우습다. 다들 지 잘난 맛에 허우적거리며 용케 버텨내고 있다고나 할까.
낙엽은 아무리 고와도 떨어져야 겨울이 온다. 이른바 空의 논리다.
空으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곱게 물든 저 갈색 낙엽도 떨어져야 새로운 봄이 온다.
무언가 잔뜩 쌓인 더미와 함께 걸어가노라니
어딘가에 가려서 희미하던 마음이 문이 열리고, 텅 빈 자유의 자리가 나타난다.
그 자리의 끝머리에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한 움큼의 추억이 환상의 그리움으로 걸어 나온다.
그는 마음이 너무 여유로워 늘 허허털털이다.
그래서 그의 주위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그를 너무 귀찮게 하며 맴돌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아무리 텅 빈 집이라고 해도 친구들을 위하여 깔끔하고 말쑥하게 새 단장을 하여
기꺼이 마음을 열기가 그렇게 쉬운 일은 분명 아니리라.
무조건 박수를 자꾸 치고 싶다. 그를 위해 또 웅크려드는 자신을 위해~
물론 그가 소개한 바로 집앞의 밥집도 나물랄 데가 없다. 설거지가 싫으며 아마 이용해도 좋으리라.
<담양숙소 : 객사4길 6-5>
<호남식당 : 061-383-9256>
버려두고(?) 떠나는 마음은 이런 것일까?
한번 왔던 그 길이라 쉬운 줄 알았더니 질척이는 발길이 눈길을 막아 못내 돌아서게 만들고 만다.
그래 길어봤자 하루저녁인데 한두 번도 아니고 벌써 여섯 번째라니
잘 이겨내리라는 믿음으로 옹골차게 잠시 헤어짐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白岩山 상왕봉?-741.2m / 말벌집이 보이는가?>
질척질척 눈이 녹아 발아래는 엉망인데
눈(雪)길은 눈(目)길 따라 마루금을 헤매고
혹시나
얼은 마루금
발길잡고 늘어지나? <백양사 어떤 풍광>
영감님만의 텃세나 투정이 아니다.
소쇄원(瀟灑園)을 설명하는 그만의 열정에 無名堂이라는 아호가 무색해지며
없을 無가 아니라 볼일 없는 無라는 덧붙임이 문화해설가가 머무는 온돌방의 분위기와 함께
望九(81세)를 바라보는 그의 연식이 오히려 더 젊어 보여서 좋다.
다시 들리리라는 소쇄원 영감님과의 재회약속을 과감히(?) 저버리고,
김삿갓이 이곳 화순 땅에서 生을 마감하기 전에 찾았다하여 더 유명해진 물염적벽을 찾아간다.
勿染 송정순의 호를 따서 물염정이라 하는데, 물염이란 속세에 물들지 않겠다는 뜻이란다.
하긴, 꿩 대신 닭이라고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화순적벽이 힘들어,
그 차선으로 동복호로 흘러드는 개울을 따라 펼쳐지는 풍광을 눈으로만 즐겨 본다.
물론, 삼국지에 나오는 양자강 상류의 웅장한 적벽에 비할 바는 못 되어도
아기자기한 멋이야 이쪽이 더 나으리라는 기대감으로 바라보지만 날씨가 흐려서~~
<勿染亭>
<물염적벽은 날씨가 흐려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푸조나무, 느티나무 등 170여 그루의 고목들이 즐비한
관방제림은 영산강의 범람을 막아 백성들의 살림을 살피고자 조성한 왕복 약 4Km의 제방 숲으로,
비가 부슬거려도 완전무장(?)을 한 새벽 산책객이 더러 눈에 뜨이는데,
공동묘지가 대숲으로 변한 죽녹원(竹綠苑)이 바로 지척이고, 더구나 경로우대가 적용되는 지역이다.
닭 모가지 살아있어 새벽잠을 일깨워도
자전거는 휑하니 제 갈 길이 바쁜지라
어쩌다
마주쳐 봐도
눈인사만 끔뻑끔뻑 <죽녹원을 찾아서>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한번 따져보고 싶으며
그냥 무작정 담양호 용마루길을 걸어보라!.
길지도 짧지도 않는 3.9Km의 그 길을 왕복으로 어슬렁거려도 2시간이며 충분하다.
데크길이 싫고 흙길마저 따분하다며 13개 능선을 오밀조밀 가꾸어 놓은 수행자길로 들어서도 좋으리라.
<여기가 적벽인가?>
<용마루길을 따라>
누구의 기준이나 호기심(?)으로 호남 5대 명산에 들지 않았다고 억울해 할 필요가 없다.
5대 명산에 무등산이 빠진들 어떠하고 들어간들 어쩌자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아니 남원의 지리산을 빼고 무주의 덕유산을 넣는다고 누가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인가?
하물며, 금강산을 빼어 닮았다는 영암의 월출산을 빼고,
담양의 추월산(秋月山-731m)이 대신한다고 하여 괜히 생트집을 잡으며 투덜거리지는 제발 말자.
잘못 신경을 건드리며 뒷방 늙은이의 오기나 부질없는 고집으로 비칠 터이니 그저 가만히 굿이나 보자.
넣고 빼는 것에 매달리며 아옹다옹 매달릴 연식이 지나도 벌써 지나지 않았는가?
이제는 뒤따라오는 젊은이에게 자리를 내주어도 좋지 않은가?
정읍의 내장산에 부대낀 세월이 아무리 억울하여도
슬그머니 백암산이나 강천산에게 자리를 내주어도 좋지 않은가 말이다.
<담양호 겨울풍광>
<용마루길을 따라>
엉뚱하게도 용마루길을 가면서
모두가 떠나간 수몰지역 언덕배기에서 큼직한 봉분으로 지 자랑이 물씬 나는 후손을 만난다.
호조참판에 창덕궁 위장이라니 꽤나 뻐길만한 자리이긴 한데
조선개국 531년이며 일제강점기가 아닌가?
金海金氏 묘역인가 했더니 선대의 묘역에는 金川 李氏 가 떡 버티고 있다.
그리고는 亡子는 죽은 듯이(?) 말이 없다. 어쩌라는 말인가?
길손의 눈에는 담양호에 드리워진 秋月山(731m)의 그림자가 더 빛나 보인다.
<묘역에서 바라본 담양호 겨울풍광>
<용마루길에서 바라본 추월산>
부슬거리는 비로 인해 이틀을 대충대충 뛰어넘다보니
오늘이 담양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어 부지런을 떨게 만든다.
용마루길이 끝나고 담양호의 어탕국수로 밥통을 가볍게 해결하고 부근의 금성산성으로 발길을 옮긴다.
<금성산성 등산로를 따라>
<보국문>
<충용문>
<금성산성>
금성산(603m)에 자리 잡은 금성산성(金城山城)은.
장성의 입암산성(立岩山城), 무주의 적상산성(赤裳山城)과 함께
호남의 대표적인 三處山城으로도 불리며
철마봉, 운대봉, 장대봉 등 支峰을 능선으로 연결하는 거대한 산괴로,
외성과 내성의 이중 산성을 이루는 거대한 석성이다.
비록 동문과 북문은 그 흔적만 남겨진 상태지만 어설프게 덮개를 씌운 여장의 모습이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손님을 맞이하여 조금은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한 복원이라는 아쉬운 후일담이 어디 금성산성뿐이겠는가?
서울성곽이 그렇고 남한산성이 또 그러하니
금성산성을 새삼 들먹인다고 복원의 기법이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고증된 복원이 어렵다며 그냥이나 둘 일이지~~~
담양의 마지막 숨고르기를 위해 죽녹원으로 향한다.
이미 새벽산책을 통해 눈에 익혀둔 곳이지만,
금성산성 등산로에서 마주친 아름드리(?) 대나무와는 조금은 격이 떨어지는 대나무 숲이다.
그래도 중국이 원산지인 진짜 대나무 왕대가 반갑게 길손을 맞이하니
죽녹원 봉황루에서 커피 향기에 잠시 취하며 하루를 녹여본다.
부엉이 바위에서 모든 것을 안고 사라진 그를 기린다며 뽑아놓은 죽녹원 8길 중에서
그가 걸어간 길을 하필이며 제4길 추억의 샛길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무슨 연유 때문일까?
그는 분명코 군대생활 3년을 시간낭비라고 외치던 사람이다.
정말 그럴까?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나름으로 판단할 일이기는 하지만~~~
<죽녹원 추억의 샛길>
담양을 열심히 돌아보지만 갈 곳은 아직도 많이 남은 셈이다. 담양10경만해도 그렇다.
그래 이쯤에서 마무리를 하자. 다시 찾을 명분은 있어야 하니까~~~
진우네 집국수에서 국수 한 그릇으로 담양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