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Chapter 2 코제트
추적 그리고 은신(3)
포슐방의 머리칼이 곤두섰다. 그는 비틀거리며 무덤구덩이의 벽에 겨우 기대어 섰다. 그는 장발장을 내려다보았다. 장 발장은 창백한 얼굴로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포슐방은 탄식하듯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죽어 버렸어.”
그는 두 주먹으로 양쪽 어깨를 콱 칠 정도로 왈칵 팔짱을 끼며 외쳤다.
“도와준다고 해 놓고 이게 무슨 꼴이람!”
이 가련한 노인은 흐느껴 울면서 독백을 했다. 독백이 자연 속에 존재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강한 흥분은 가끔 큰소리로 말을 하게 만든다.
“메티엔 영감이 나쁜 거야. 왜 이럴 때 숨졌단 말인가? 바보처럼. 하필이면 이럴 때 죽을 게 뭐란 말인가? 마들렌 씨를 숨지게 한 것은 그 늙은이야! 마들렌 씨는 관 속에서 돌아가셨어. 이젠 끝장이야. 이게 왠 청천벽력이람! 아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돌아가셨어! 그 아이 코제트는 어떻게 하지? 과일 가게 노파에게는 무어라 한단 말이냐? 이런 분이 이렇게 최후를 맞이해야 하다니 있을 법이나 한 일인가! 내가 수레바퀴에 깔렸을 때 날 구해 준 일을 생각하면…..마들렌 씨! 마들렌 씨! 내 소리를 듣지 못하게 돼 버렸어. 내 말을 믿지 않아 이렇게 된 거야! 돌아가시다니, 이처럼 훌륭한 분이! 그리고 저 어린아이! 아아, 나는 돌아갈 수가 없다. 이대로 있을 거야.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이분은 도대체 어떻게 수녀원에 들어왔을까? 그것이 비극의 시초였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마들렌 씨! 마들렌 선생! 시장님! 내 말이 안 들립니까? 저더러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포슐방 영감은 자신의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멀리 숲 저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묘지의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포슐방은 장 발장을 가까이서 굽어보았다. 그는 깜짝 놀라 무덤구덩이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뒤로 물러섰다. 장 발장이 눈을 뜨고 그를 쳐다보았던 것이다.
죽음을 본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지만, 살아나는 것을 보는 일도 이에 못지않게 무섭다. 포슐방은 극도의 충격에 압도당했다. 상대방이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자기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장발장을 바라보며 창백해진 채 석고처럼 굳어 버렸다.
장 발장이 말했다.
“그만 잠이 들었었나 보군.”
그가 일어나 앉았다. 포슐방은 일어서면서 외쳤다.
“고맙습니다, 마들렌 씨!”
그가 일어나 앉았다. 포슐방은 일어서면서 외쳤다.
“고맙습니다. 마들렌 씨!”
장 발장은 잠시 기절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바깥 공기를 마시고 깨어난 것이다. 기쁨은 공포의 퇴각을 의미한다. 포슐방도 제정신을 되찾는데 장 발장만큼 시간이 걸렸다.
“그럼 돌아가신 것이 아니었군요! 아아, 왜 그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셨나요? 얼마나 불렀는지 모릅니다. 당신이 눈을 감고 계신 것을 보고 이거 큰일 났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만일 당신이 돌아가셨더라면 저는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요. 그 어린 아이를 생각해 보세요. 과일 가게 노파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을 겁니다. 아이를 맡기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다니! 무슨 꼴이 되겠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아아! 살아 계셨으니 천만다행이에요.”
장 발장이 말했다.
“좀 춥군.”
이 말을 듣자 포슐방은 완전히 현실로 돌아왔다. 불길한 장소 때문이었을까? 이들은 이내 불안해졌다.
“얼른 여기서 빠져 나갑시다.”
포슐방이 재촉했다. 그는 미리 준비해 왔던 물통을 꺼내어 말했다.
“우선 한 모금 드세요.”
장 발장은 브랜디를 한 모금 마시자 완전히 원기를 되찾았다. 그는 관에서 나와 포슐방이 관 뚜껑에 못 박는 것을 도왔다. 3분 뒤 두 사람은 무덤구덩이 밖으로 나왔다.
포슐방의 마음은 안정되어 있었다. 그는 여유 있게 행동했다. 묘지의 문은 닫혀 있고 무덤 파는 인부 그라비에가 나타날 염려도 없다. 그 풋내기는 집에 가서 증명서를 찾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포슐방의 주머니에 들어 있으므로 집에서 발견될 까닭이 없었다. 증명서가 없이는 묘지로 들어올 수가 없다. 포슐방은 삽을 들고 장 발장은 곡괭이를 잡았다. 그들은 힘을 합쳐 빈 관을 묻었다. 일이 끝나자 포슐방이 장 발장에게 말했다.
“가십시다. 저는 삽을 가지고 갈 테니 당신은 곡괭이를 드십시오.”
주위는 어두워져 있었다. 장 발장은 걷거나 움직이는 것이 약간 힘이 들었다. 그는 관 속에서 굳어져 시체로 변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면의 판자 사이에서 죽음의 경직이 그를 엄습했던 것이다. 포슐방이 장 발장에게 말했다.
“추워서 뻣뻣해졌군요. 또 저는 절름발이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린 좀 더 빨리 갈 수 있는데 말입니다.”
장 발장이 말했다.
“괜찮아요. 조금 걸으면 나아질 거요.”
그들은 영구차가 지났던 길을 걸었다. 닫힌 철문과 문지기 초소 앞에 다다르자 포슐방은 손에 들고 있던 인부의 증명서를 통해 던져 넣었다. 문지기가 끈을 잡아당기자 문이 열렸다. 그들은 밖으로 나왔다.
포슐방이 말했다.
“일이 순조롭게 끝났습니다. 정말 멋진 착상을 하셨어요, 마들렌 씨!”
그들은 보지라르 성문을 쉽게 통과했다. 묘지 근처에서는 삽과 곡괭이가 통행권과도 같았다. 보지라르 거리에는 인적이 없었다. 포슐방이 집들을 기웃거리며 말했다.
“마들렌 씨. 저보다는 눈이 더 잘 보일 테니 87번지를 찾아 주세요.”
장 발장이 말했다.
“바로 저기군!”
“거리에 아무도 없습니다. 곡괭이를 주세요.”
포슐방이 계속했다.
“2분만 기다리십시오.”
포슐방은 87번지로 들어가 위로 올라갔다. 가난한 사람은 본능에 이끌려 올라가게 마련인 모양이었다. 포슐방은 어둠 속에서 어느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그리비에의 음성이었다. 포슐방은 문을 열었다. 무덤 파는 인부의 방은 모든 불행한 사람들의 거처가 그러하듯이 가구도 없는 지저분한 방이었다. 짐짝 같은 상자 하나 -관인지도 모른다- 가 옷장을 대신하고 있었다. 버터 통이 물병 대신, 짚 이불이 침대 대신, 마룻바닥이 의자와 탁자 대신이었다. 한쪽 구것에 낡은 양탄자가 깔려 있고 그 위에 수척한 여인과 많은 아이들이 한 무더기로 모여 있었다.
이 너저분한 방 안에는 온통 뒤집어 놓은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았다. 뚜껑은 열려 있고 누더기들은 마구 흩어져 있었으며, 병들은 깨져 있었다. 마구 뒤져 놓은 흔적이 보였다. 사내가 미친 듯이 증명서를 찾으면서 물통에서 아내에 이르기까지 이 방에 있는 모든 것에 그 분실의 책임을 뒤집어씌운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는 절망에 빠져 있는 듯했다.
포슐방은 사건의 해결을 너무 서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성공 뒤에 숨은 이 비참한 장면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들어가며 말했다.
“당신의 삽과 곡괭이를 가져왔소.”
그리비에는 멍청히 그를 쳐다보았다.
“아, 영감. 당신이군요?”
“내일 아침에 묘지 문지기한테 가서 증명서를 찾아가시오.”
그러면서 삽과 곡괭이를 마루에다 놓았다. 그리비에가 물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당신이 주머니에서 증명서를 떨어뜨렸더군. 당신이 나간 뒤 내가 찾았소. 내가 시체를 묻고 흙을 덮는 등 당신의 일까지 했소. 문지기가 증명서를 돌려줄 거요. 당신은 15프랑을 번 거나 다름없소. 이제야 알겠소 풋내기 나리?”
그리비에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외쳤다.
“고마워요, 영감님, 다음에 내가 사겠어요.”
한 시간 후 두 노인과 소녀 하나가 픡픡스가 62번지에 나타났다. 캄캄한 밤이었다.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손잡이로 문을 두드렸다. 그들은 포슐방, 장 발장 그리고 코제트 세 사람이었다.
이렇게 하여 이튿날부터 정원에서는 두 개의 방울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수녀들은 호기심 끝에 베일 자락을 들고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수녀들은 구석진 나무 밑에서 두 사나이가 나란히 땅을 파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큰 사건이었다. 수녀들은 침묵을 깨고 서로 수군거렸다.
“정원사의 조수로군요.”
장 발장은 윌팀 포슐방이라는 이름으로 채용되었다. 그는 무릎 가죽과 방울을 받았다. 코제트는 수녀원 부속초등학교의 학생으로서 기숙사에 들어갈 때 학생복을 입어야만 했다. 장 발장은 코제트가 입었던 상복을 돌려받아 수녀원에 많이 있는 향료와 장뇌를 뿌린 뒤 작은 가방에 넣었다. 그 가방을 침대 곁에 의자 위에 놓고 가방 열쇠를 언제나 몸에 지니고 있었다.
코제트가 물었다.
“아버지.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는 가방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나요?”
포슐방 노인은 선행의 보답을 받았다. 우선 그는 행복감을 느꼈다. 또한 일을 둘이서 분담했기 때문에 몸이 훨씬 편해졌다. 그리고 담배를 즐기던 그는 마들렌 씨가 온 후부터 세 배나 더 담배를 많이 피우게 되고 또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마들렌 씨가 사주었던 것이다.
수녀들은 결코 윌팀이란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녀들은 장 발장을 ‘또 하나의 포슐방’이라 불렀다.
만일 이 신성한 여인들이 약간이라도 자베르와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정원 일로 밖에 나가거나 할 일이 생겼을 때 또 하나의 포슐방이 나가지 않고 나이가 더 들고 불구인 형이 나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시선이 하느님께 향해 있었기 때문인지 또는 서로의 동정을 살피기에 바빴기 때문인지, 어쨌든 그 일에는 전혀 주의를 하지 않았다.
장 발장이 몸조심을 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자베르가 그 부근을 한 달 이상이나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수녀원은 장 발장에게 있어서 깊은 바다로 둘러싸인 섬과도 같았다. 그 주위의 담은 이로부터 그의 세계의 전부였다. 거기서 그는 마음이 맑아질 정도로 하늘을 볼 수 있었고, 코제트를 바라보며 얼마든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는 지극히 평온한 생활이 다시 찾아왔다. 이렇게 몇 년을 지냈다. 그동안 코제트는 여느 소녀와 다를 바 없이 밝은 모습으로 성장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