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
오늘의 묵상 제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민족시인 윤동주의 유고(遺稿)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서시’(序詩)의 첫 구절이지요.
서시를 감상 해봅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년 11월 20일)
민족시인 윤동주는 1917년 중국 길림성 간도 명동촌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평양 숭실학당에서 공부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서 수학하면서 기독교 신앙이 성숙해 갔습니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위치한 기독교계 학교인 릿교대학 영문과에 들어가 공부를 하다, 다시 교토에 있는 역시 기독교 대학인 도시샤(同志社)대학으로 옮겨 수학했습니다.
교토에서 공부하던 중 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조선 독립과 민족 계몽에 대해 논의하는 민족주의 서클을 만들어 활동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후쿠오카(福岡) 감옥에서 1년 7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던 중, 뇌일혈을 일으켜, 해방을 불과 반년 앞둔 1945년 2월 감옥에서 순국하였으니, 그 때 그의 나이 27세였습니다.
오래 전에 필자가 일본에서 모인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후쿠오카 공항에 내렸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후쿠오카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이 도시 어딘가에 윤동주 시인이 수감되었다가 그의 생을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아까운 나이에 민족 독립을 위해 고초를 당하다 쓰러진 시인을 회상하면서 힘없는 민족의 설음에 회한(悔恨:뉘우치고 한탄함)에 젖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필자는 ‘서시’의 첫 대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는 구절에서, 항상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하늘을 우러러...’라는 말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게 살기를 희구(希求:바라고 구함)하던 시인의 마음이 드러나 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나 많은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모습이지요.
나의 양심에 부끄러운 일, 내 가족과 이웃, 친구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행하고도 용서를 빌지도,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모른척하고 살아 가는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이웃)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제사 드리는 것을 중지하고, 먼저 형제(이웃)과 화해하고 나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마 5:24)
형제 즉 이웃과 화해해야 할 일이 있는데, 제물을 드리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볼 때, 형제에게 잘못한 일이 있어 화해를 해야 하는데도 이 일을 무시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예배는 아무리 정성을 드려 드린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나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고뇌했던 젊은 시인의 시는 바로 순수한 기독교 신앙에서 나온 진정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우리의 고백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경지에 나아가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노력합시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