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김파란
치킨 랩소디 외
귀여운 아들이 사 온 병아리가
베란다를 날아오르는 중닭이 되던 날
병아리를 품어 주었던 장난감 통은
석회 담장을 타고 올라간 담쟁이처럼
쾌쾌한 잿빛 닭똥으로 뒤덮였다
나는 인심 쓰듯 한 평 남짓한 욕실에서
뜨거운 물에 불려 철수세미로 벅벅 긁어대는
두어 시간의 간절한 세신 수행을 시작하였다
108배를 올리듯 다소곳이 합장하고
엎드려 무릎을 구부린 채
이마에서부터 발끝까지 땀을 쏟았는데도
삶에 집착이 심한 닭똥은
떨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포기하고 장난감 통을 버릴까 하니
갑자기 뒤통수가 번갯불에 뜨거워졌다
겉으로는 착한 척 우아한 척 위장하고
그 속은 닭똥보다도 더 비릿한 욕망에
사로잡힌 이기적인 오물 덩어리
간절한 세신 수행에도 씻기지 않았던 것은
닭똥을 품었던 장난감 통이 아니라
이기적인 오물 덩어리 나였던 것이다
결국, 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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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Hehr질 결심
수백 번의 달구질로 다져진 땅 위에
펑퍼짐한 주춧돌을 올렸다
돌 위에 나무 기둥을 세우기 위해
목수는 숨을 멈추고 고요한 그랭이질로
나무 밑동에 돌의 모양을 새겨 넣었다
자신을 깎아내지 않고서는
누구와도 하나가 될 수 없듯이
마침내
돌과 나무는 완벽한 사랑을 이루었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한 치목은
세상을 떠받드는 대들보가 되었고
큰 못질로 서까래를 이어
평생에 매정했던 하늘을 덮었다
그렇게 공들인 나의 한옥은
천년이 넘도록
흔들림 없이 견고하리라 믿었었다
너를 만나기 전까지 그렇게 믿었었다
너를 만나
나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깨져 집과 함께
안갯속 모래알로 흩어져 버렸다
기다렸다는 듯 붕괴되고 말았다
그래도 괜찮다
그래도 좋다
너를 영원히 놓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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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파란
강원도 정선 출생, 2024년 <강원시조>, 『시와소금』 2024년 가을호 신인문학상. 달빛문학회 회원, 달무리동인회 대표, 한국인문치료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