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해 첫달에 남도로 여행을 갑니다.
사람을 만나고
차를 마시며
새를 보는 여행.. 지차조 여행입니다.
첫날..
아침9시에 출발하여 곧바로 전남 해남으로 들어갑니다.
창밖의 풍경이 달라지고 흙의 색이 붉어지니 이곳이 남도땅임을 실감합니다.
점심을 먹고 해남의 대흥사와 미황사를 들르기로 합니다.
대흥사앞 자연버섯전골을 잘하기로 소문난 ‘호남식당’으로 갑니다.
오래된 가정집 이층.. 나이가 든 안주인이 직접 채취한 24가지 자연버섯으로 만든 맑은 탕입니다.
자연버섯의 향이 그대로 살아있고 맑으면서도 매콤한 맛이 일품입니다. 반찬 하나 남김없이 깨끗이 먹습니다.
벽에는 버섯탕에 들어가는 버섯의 사진액자들이 걸려있고, 24가지 버섯을 그린 큰 그림이 걸려있어 허름한 식당이 갤러리같은 분위기입니다. 밥을 먹는 동안 안주인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버섯이야기, 동네이야기, 시집온 이야기, 광주사태때 전쟁같았던 이야기들..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그런일도 있었구나..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까맣게 몰랐던 놀라운 이야기들을 담담히 풀어내십니다.




점심을 먹고 대흥사로 들어갑니다.
입구 동백숲을 지나 넓은 절마당에서 보는 뒷산의 선이 부드럽게 흘러내려 푸른 하늘과 어울려 포근하고 아름답습니다.
대흥사에서 나와 가까이에 있는 미황사로 갑니다. 절마당에서 또 뒷산을 봅니다.
대흥사 뒷산의 부드러운 곡선의 두륜산과 달리 미황사 뒷산은 바위의 기가 센 달마산이 있습니다.
같은 지역에 있으면서도 산의 형상과 선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서 비교하며 봅니다.
미황사 찻집에서 녹차, 대추차, 단팥죽을 마시고 삼색 떡국떡도 사가지고 나옵니다.
미황사에는 한문서당을 열고 있어서 방학에 절에서 공부하는 청소년들과 스님들이 마당에서 노는 웃음소리가 고요한 산사에 울려퍼집니다.




숙소 들어가는 길에 해남 곱창김 공장을 찾아갑니다.
달리는 창밖으로 보이는 석양지는 바닷가 풍경이 참 고즈녁하고도 아름답습니다.
올해 김이 잘 안되어서 걱정이라고 하셔서 좀 팔아주기로 합니다.
곱창김 큰 한박스와 각자 선물할 김을 사니 멀리서 찾아와 주어 고맙다며 멸치와 미역5봉지를 덤으로 주십니다.
덤으로 받은게 더 많습니다.



숙소인 완도 신지면으로 갑니다.
일찍 숙소에 들어가서 짐을 풀고 차회를 시작합니다.
각자 가지고 온 차를 꺼내놓으니 다양한 차들이 나옵니다.
늦은 점심을 든든히 먹은탓에 저녁은 건너뛰고 차를 마시기로 합니다.
한가지씩 마시고, 또 마시고 차의 성질에 따라 차례대로 4시간 차회를 하고나니 허기가 집니다.
늦은시간에 밥을 합니다. 반찬은 곱창김, 김공장에서 주신 생멸치와 고추장 그리고 김치인 소박한 밥상이나 금방 지은 쌀밥맛이 꿀맛입니다.
다시 차를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고, 고민도 풀어놓고.. 새벽2:30분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듭니다.

둘째날..
아침에 일어나니 눈발이 날립니다. 와~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완도 정도리 구계등 바닷가로 나갑니다.
아침햇살을 받으며 고요한 바닷가를 서로 말없이 산책합니다.
바닷물이 살짝살짝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나즉나즉 속삭이는듯합니다.
오랜세월동안 바닷물에 닦이고 닦여 동글동글해진 돌들이 참 예쁩니다.
그 거친돌이 모난곳 하나없이 동글동글해진 것을 보니 자기수행의 긴 역사를 보는 듯 합니다.
바다멀리 있는 새도 보고 조용한 파도소리를 듣습니다.
다시 흩뿌리는 눈을 맞으며 생달나무 숲길을 걸으며 새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해남 설아다원으로 갑니다.
남도여행때마다 들르는 설아다원..
부인은 남도소리를 가르치고 남편은 차농사를 지으며 민박과 찻집을 운영하는 곳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설아와 바깥주인이 반겨주시고..
독일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 우프체험으로 와 있습니다.
한식방으로 꾸며져 있던 차방을 탁자와 의자를 놓아 현대식으로 바꿔놓았습니다.
가야금보다 키가 큰 스피커에서 나오는 애절한 가야금 연주가 애간장을 녹이는 듯 차방을 울립니다.
녹차와 황차를 내어주시는데 아주 차맛이 좋습니다. 차를 마시며 그간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설아와 독일여대생까지 다함께 식당으로 갑니다.
오래된 동네 식당. 여로식당.
옛날 유명한 TV드라마 ‘여로’가 방영될 때 시작한 식당이라 이름을 그대로 ‘여로식당’이라 붙였답니다.
점심은 삼치회와 낙지탕탕이.. 처음 먹어보는 삼치회가 어떨까 싶었는데 아주 연하고 고소합니다.


다시 설아다원으로 와서 녹차밭을 한바퀴 돌아봅니다.
다른차밭과 달리 키를 똑같이 맞추는 전지를 하지 않아서 오히려 냉해에도 살아남는다는 설아네 차밭..
키가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자기 본성대로 자라도록 두는 주인장의 철학과
아침마다 차밭에 나가 ‘사랑해~’라고 말해주는 것이 큰 자양분이 되는 듯 합니다.
올해는 '해남방문의 해'인데, 설아다원이 우수 숙박시설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들어와서 목련꽃차를 마시고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마십니다.


해질녘이 되어 설아다원을 나와 해창주조장으로 갑니다.
해남군 화산면 해창길 1번지에 있는 해창주조장.. 일본식 가옥에 예쁜 정원이 딸린 집.
일제시대부터 100년된 양조장으로 찹쌀로 빚은 막걸리가 걸죽한데 목넘김은 부드럽습니다.
도수도 12도, 가격도 한병에 11,000원.. 도수와 가격이 와인급입니다. 시음을 하고 6병 한박스를 삽니다.

저녁7시가 다되어 숙소로 들어갑니다.
냉동실에 있던 여러 가지 생선을 꺼내서 기름에 튀겨먹기로 합니다.
바다낚시로 잡은 생선이라 크기가 아주 크고 신선합니다.
따뜻한밥에 금방 튀겨낸 생선들과 김치.. 간단하면서도 맛좋은 최고의 밥상입니다.
저녁을 먹은후 차와 해창막걸리를 교대로 마십니다.. 차.곡.차.곡.
오늘 다닌곳을 돌아보고 이아기를 나누다 좀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밤12시.


한가지씩 마시고, 또 마시고 4시간 차회를 하고나니 시장기가 돌아, 밥을 합니다. 늦은시간에 밥을 해서 곱창김, 얻어온 생멸치와 고추장 그리고 김치로 먹는 늦은 저녁밥이 꿀맛입니다.
차를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고, 고민도 풀어놓고.. 새벽2:30분에 잠자리에 듭니다.
첫댓글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면 행복이란게 멀리 있지않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고즈넉한 풍경들이 잔잔하게 좋네요~^^ 좋은 풍경 좋은 마음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행복 멀리 있지 않지요..
멈춰야 고요해지고, 고요해져야 맑아지고, 맑아지면 지금 이 순간이 '행복'임을 알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