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경부선 - 노래 남일연(1937년)
작사 :박용호 /작곡: 이용준
1.
구름다리 넘을때 몸부림을 칩니다
금단추를 매만지며 몸부림을 칩니다
차라리 가실바엔 맹세도 쓸데없다
아~부산차는 떠나갑니다
2.
플랫트홈 그늘속에 소리소리 웁니다
붉은댕기 매만지며 소리소리 웁니다
차라리 가실바엔 눈물도 보기싫소
아~부산차는 떠나갑니다
★☆
남일연의 경우도 불과 18세에 가수로 데뷔합니다.
그녀가 태어난 해는 기미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으로 충남 논산이 고향입니다.
하지만 남일연의 학력과 가정환경, 성장과정에 대해서는 밝혀진 자료가 전혀 없습니다.
아마도 시골에서 소학교 정도는 마쳤을 듯하고,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농촌을 순회하던 악극단 공연에 심취하여 넋을 놓고 뒤쫓아 다니던 철부지 소녀였을 듯합니다.
어떤 경로로 가요계와 구체적인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남일연은 1937년 가을 태평 레코드사에서 첫 음반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그 작품은 ‘눈물의 경부선’(박영호 작사, 이용준 작곡)과 ‘홍등은 탄식한다’(처녀림 작사, 남지춘 작곡) 등 2곡으로 같은
SP음반에 수록되었습니다.
두 작품의 작사, 작곡을 맡은 사람이 표면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일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서로 다른 사람인 것처럼 표시하는 까닭은
대중들로 하여금 작품의 신선한 느낌을 유지시키게 하려는 음반제작자의 계산 때문으로 보입니다.
당시 태평 레코드사에서 악사로 활동했던 한 노인은 가수 남일연의 성격과 용모를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말수도 적은 데다 몹시 착하고 순진한 성격, 항상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레코드사를 드나들던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일연이 태평 레코드사를 통해 가수로 처음 데뷔하던 시절,
예명은 울금향(鬱金香)입니다. 그 회사의 문예부장으로 많은 가요시 작품을 발표하고 있었던 극작가 박영호가 이 예명을 붙여주었지요.
울금향은 튤립 꽃을 가리키는 중국식 한자말입니다.
남일연이 발표한 두 작품의 반응이 예상외로 좋아서 가수는 울금향이란 예명으로
태평 레코드사에서 ‘간데쪽쪽’‘거리의 정조’‘풍년일세’‘만경창파’‘이별의 바다로’ 등 5곡을 더 발표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무렵 회사의 경영수지는 극도로 악화되어 거의 문을 닫기 직전이었던 탓으로
남일연은 박향림 등과 함께 콜럼비아 레코드사로 소속사를 옮겨갑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