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5월27일(목)보슬비, 점차 개이면서 오후에 화창
새벽 올빼미가 숲 그늘 속에서 울면, 어떤 새는 잠꼬대를 하는데, 날이 좀 밝아오면 검은등뻐꾸기가 울고, 되지빠귀, 밀화부리도 따라서 노래한다. 아침 일찍부터 안개비가 내린다. 앞산에 비안개가 춤추며 올라가고 물 먹은 산빛은 더욱 푸르다. 아침 정진 끝나고 금당을 세 바퀴 돌면서 금강살타를 염하다. 오늘 새벽부터 선원 정진이 청규에 땨라 돌아간다.
佛是衆生心裏佛, 불시중생심리불
隨自根堪無二物; 수자근감무이물
欲知一切諸佛源, 욕지일체제불원
悟自無明本是佛. 오자무명본시불
-이통현(李通玄,635~730)
부처는 중생의 마음속에 계시니
각자의 근기에 따를 뿐 둘이 아니라네
모든 부처의 근원을 알고자 한다면
무명 이대로 부처인 줄 깨닫게나
8세기의 당나라 수도 장안은 전성기의 로마에 비견할 만큼 국제적 문화의 교류센터요 물류 중심이었다. 당시 황제는 측천무후였는데, 그는 선종의 대가 신수대사와 화엄종의 종주 현수법장을 스승으로 삼아 제국의 통치에 자문받았다. 화엄의 경우 官學으로는 법장대사가 중심이었으나 私學으로는 이통현 장자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이후 선종의 스님들은 대개 이통현 장자의 <신화엄경론>을 애독하였다.
‘無明本是佛, 무명이 본래 부처’라는 소리를 들으면 아마도 초기불교에 경도된 불자들은 경기를 일으킬 수도 있겠다. 불교를 근원적으로 뒤집는 이설이라 할 것이다. 무명은 깨뜨려야 하고, 버려야 하고, 떠나야 하고, 밝혀져야만 하는 번뇌의 근본이라 가르치셨는데 어찌하여 무명을 부처라고 하는가? 여기에는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사이의 쉽게 뛰어넘을 수 없는 불연속이 개재되어 있다. 여기서 관점을 확 바꾸어야 한다. 공성(空性)을 깨달은 안목으로 보면 무명과 깨달음의 구별이 사라진다. 이제 양립불가한 두 개의 모순된 개념은 유명무실해진다. 그래서 무명이 무명이 아니고, 깨달음이 깨달음이 아니다. 다만 그 이름이 ‘무명’이고 ‘깨달음’일 뿐이다. ‘무명’이나 ‘깨달음’이라는 말에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경우에 맞게 갖다 쓰는 방편일 뿐이다. 그래서 결국 ‘무명’이나 ‘깨달음’이란 고뇌에 빠진 중생을 거기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한 지시 도구이다. 무명이 깨달음이고 깨달음이 무명이라면 결국 공성을 지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부처의 근원은 공성이며, 자비이며, 不二이며, 중도이다. 그러나 아무리 말 잘했다 치더라도 선사의 질책을 피할 수 없다. 언어문자의 흔적이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논리적으로 말을 이끌어와서 이해시켜놓고는 아직 禪에 입문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것’을 이해한 것은 그만하면 됐으니까 이제 놓아두고, ‘그것’이 되어라. 그러나 돌사람의 이마가 깨져야 한다. 石人斫額석인작액
2021년5월28일(금)맑음, 오후에 한차례 폭우
오후 2시30분 경 갑자기 폭우가 내린다. 마사토가 반반하게 깔린 마당에 빗줄기가 쏟아져 쏴쏴쏴 비안개를 피워올린다. 이런 경우 ‘沛然패연’이란 말을 쓸만하다. 섬돌에 놓았던 신발을 비에 젖지 않게 마루에 올려놓고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좌선한다. 그런데 30분 정도 내리다간 금새 거짓말같이 맑아져 햇볕이 쨍쨍하다. 이제 여름인가 보다.
눈에 열이 나고 다리가 아프다.
방선 시간에 주련 글귀 좋은 것 감상하다.
靑山塵外相, 청산진외상
明月定中心; 명월정중심
山河天眼裡, 산하천안리
世界法身中; 세계법신중
聽鳥明聞性, 청조명문성
看花悟色空; 간화오색공
終日無忙事, 종일무망사
焚香過一生. 분향과일생
-통도사 대광륜전(通度寺 大光輪殿)
청산은 티끌을 벗어난 모습이요
밝은 달은 선정의 마음이라
산하는 하늘 눈 안에 있고
세계는 법신 가운데 있네
새소리에 듣는 성품 밝히고
꽃을 보며 색과 공을 깨닫네
하루 종일 바쁠 일 없으니
향 사르며 일생 지내리
*감상: 이 시의 눈(詩眼)은 ‘새소리에 듣는 성품 밝힌다’에 있다. 그 밖은 강사의 상투적인 詩句다.
2021년5월29일(토)맑음
아침 공양하고 운력이 있다. 하판 스님들은 매표소까지 이르는 길을 쓸고, 상판 스님들은 도량에 풀 뽑고 청소하다.
편양언기(鞭羊彦機,1581~1644)스님의 정원에 핀 꽃(庭花정화):
雨後庭花連夜發, 우후정화연야발
淸香散入曉窓新; 청향산입효창신
花應有意向人笑, 화응유의향인소
滿院禪僧空度春. 만원선승공도춘
비 온 뒤 뜰 안의 꽃이 밤새워 피니
은은한 향 풍겨와 새벽 창 빛 새로워라
저 꽃들은 뜻이 있어 사람 향해 웃건만
선방 스님들은 이 봄을 헛되이 보내는군
*감상: 선방 스님들이 봄을 헛되이 보낸다는 의미는
①사람을 향해 웃는 꽃의 뜻(花意)을 알지 못하는 스님들의 무딘 감성을 탓한다. 편양스님은 선방 수좌들이 자기 공부에 몰두하여 무감동-냉담 상태에 처해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②꽃이 웃으며 사람을 향해 말을 건다는 건 무정설법을 듣는 일이다. 무정설법을 듣지 못하는 스님들의 안목 없음을 한탄한다.
시에서 들려오는 무정설법은 어떠한가?
은은한 향 풍겨와 새벽 창 빛 새로워라! 淸香散入曉窓新.
소요태능(逍遙太能, 1562~1649)스님의 자유인의 훤출한 멋을 보라!
虛徹靈通舊主人, 허철영통구주인
古今天地一眞人; 고금천지일진인
多經海岳風雲變, 다경해악풍운변
落落巍巍不老人. 낙락외외불노인
툭 트이고 영통한 오랜 옛 주인
고금천지의 유일한 참사람이여!
바다와 산, 풍운의 변화를 다 겪고도
넉넉하고 고고한 늙지 않은 사람이요!
*감상: 생노병사 이대로 不老人이며, 眞人이다.
2021년5월30일(일)맑음
삭발목욕일. 욕두 스님이 욕탕에 온수를 가득 채웠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목욕탕에 안 간지가 일 년이 넘었는데, 이제 지리산 산속에서 욕탕에 몸을 담그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9시에 팔상전 후불탱화 점안식을 봉행하다. 주지스님과 부전스님 염불하고 우리는 앉아서 불사를 증명한다.
2021년5월31일(월)맑음
새벽에 여우비가 내리다가 그치다. 햇볕이 쨍쨍.
一海衆漁遊, 일해중어유
各有一大海; 각유일대해
海無分別心, 해무분별심
諸佛法如是. 제불법여시
-청해선사(靑海禪師)
큰 바다에 뭇 고기들 노니는데
모두 다 온 바다를 수용하네
바다는 분별하는 마음 없듯이
모든 부처님 법도 이와 같다네
*감상: 청해선사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한 마리 고기가 온 바다를 수용한다. 한 사람이 세계를 수용한다. 모든 고기가 그렇다. 사람도 그렇다. 모두가 세계의 주인이다. 듣기 좋은 말이라 요즘 사람들이 많이 갖다 쓴다. 그러나 이것이 무슨 말인가? 원래 無分別무분별이기에 시에서 무슨 뜻을 찾거나 도리를 찾지 말라. 듣기 좋은 말도 그냥 말일 뿐.
2021년6월1일(화)맑음
祖師入滅傳皆妄, 조사입멸전개망
今日分明坐此臺; 금일분명좌차대
杖頭有眼明如漆, 장두유안명여칠
照破山河大地來. 조파산하대지래
조사가 입적하셨다는 말은 모두 거짓으로 전해진 것이여
오늘 이 누대에 앉아보니 분명하구나
주장자에 눈이 있어 밝기는 칠흑 같은데
산하대지를 비추어 부숴버린다
*감상: 경허스님이 원효암에 잠시 머물 때 지은 시, 여기서 조사는 원효대사를 지칭한다.
경허스님의 안목이 잘 표현되었다. 분명한 안목이니 ‘눈이 있는 주장자’요, 일체의 생각이 붙을 수 없는 자리이니 ‘칠흑 같음’이요, 그러나 명명백백하니 ‘밝음’이다. 주장자의 눈으로 천하만물을 照破조파-비춰 부숴버린다. 백두산이 티끌 되어 날아가고 낙동강이 말라버리니 일망무제 破天荒파천황이다. 말 다 했나? 板齒生毛판치생모다. 앞 이빨에 털 났다!
<첫애 키우는 엄마의 기도>를 초연, 초아, 초유에게 보내다.
첫댓글 분별이 녹아내립니다
세상살이 한답시고
얼마나 많은 분별을 쌓고 또 쌓았는지요
근거도 모르면서ㅠ
저절로 '천상천아유아독존' 흘러나옵니다
우주에 존귀하지 않은 생명이 없습니다
새소리 듵으시는 성품으로
쌍계사 초록에서
이 한 철 청안하십시오
_()_ _()_ _()_
하안거 들어가셨네요. 건강히 잘 지내십시요.-()()()-
매실이 익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