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강바위의 <요강> 한자 표기가 궁금해서 찾아본다.
먼저 국어사전을 펴본다.
1)국어사전 (동아 새국어사전 5판 2006년 판. 1771쪽 )
요강; 방에 두고 오줌을 누는 그릇.
한자를 빌려, ‘요강(溺缸 <요항)· 溺 (金+工=>)· (溺江:요강)‘으로 적기도 함.
야호(夜壺)
웬, 한자 찾기가 어렵다. 컴퓨터 한자 목록에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자임이 분명하다.
( 이상하게 쓰인 溺(빠질 익)자가 "요"자로 쓰여서 옥편을 찾아본다..
' 오줌 요'로도 쓰인다. .오줌을 가리키는 한자말이 여러 개임을 알 수 있다. 尿 이외에.
溺: - 탐닉, 익사, 익 빠질 익: 沒也 (217쪽 송정신자전 명문당 판)
- 오줌 요 : (氵+ 宀+火+又)=> 오줌 수)수也 小便) (상동 217쪽)
2) 요강 (尿강)도 찾아본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의
오줌을 받는 실내용 용기.
내용:
본래 요항(溺缸)에서 와전된 말이다. 요분(溺盆)·수기(溲器)라고도 한다.
요강이라는 말 속에 항아리 또는 푼주의 뜻이 포함되어 있듯이, 항아리와 푼주는 곧 그 용기의 형태를 암시한다.
요강은 삼국시대 토기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처럼 예로부터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생활용품으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한 필수품이었다.
다만, 신분상의 차이가 있었다면 그것을 만드는 재료에 차등이 있었을 뿐이다. ≪산림경제≫에 기재된 여자의 혼수품 중에 놋요강·놋대야가 들어 있는데, 가세가 어려우면 요강 둘을 해 준다고 하였다. 여기서 요강이란 질그릇 제품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요강은 방에 비치하는 것만이 아니고 여성이 가마로 여행할 때 휴대하는 것, 혹은 의료용도 있었을 것이다.
요강의 재료는 도기·자기·유기·목칠기 등 다양한 편이다.
그런 여러 재료의 제품들이 각각 어느 시대에 한하여 쓰였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어느 시대에나 함께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말기의 ≪임원경제지≫에 의하면 “놋요강은 조그만 백자항아리 모양과 같고, 뚜껑이 있는데 규방의 용기이다. 백자로 만든 것은 동부(胴部)를 끈으로 엮어두면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오동나무로 깎아 옻칠한 것은 휴대용이나 서재용으로 좋고, 쇠가죽으로는 기름을 먹여 만든다.”고 하였다.
≪세종실록≫ 오례의(五禮儀)에 수록된 장례용 명기(明器)를 도설한 바에 의하면 “수기는 나무로 만들되 뚜껑이 있고 검은 옻칠을 한다.”고 하였다.
이는 목칠요강이 오랜 제도에 의거하여 의기화(儀器化)한 것임을 알 만한데, 다만 그 형태가 고려 후기의 청동향로와 유사하다. 물론, 조선 후기의 요강이 오례의의 명기에 소개된 옹바리 모양의 목칠타구(唾具)와 같은 점은 시대에 따르는 변모일 것이다. 토기로서 가장 오래된 유물은 부여지방의 출토품이다.
(*부여) 군수리 출토의 경우는 구연이 헤벌어지면서 한쪽으로 귀때를 이루듯 입이 길고 양옆으로 손잡이를 붙여 귀때동이를 연상하게 한다. 그것은 비치해 놓고 쓰기보다는 받아서 내다 쏟는 기능에 치중된 형태이다. 또, 초촌(草村) 출토의 항아리는 삼족정(三足鼎)의 모양에 유사한데 뚜껑이 없어졌다.
하지만, 구연부의 처리에서 명기로서의 수기의 고식을 찾아볼 수 있다. 가야토기 중에는 주구(注口)가 필요 이상으로 넓어진 주전자 모양의 자라병이 있다. 이는 제수(提溲)라 할 만하지 않을까 추정되는데, 이 같은 여러 형태의 요강들은 토기·청자·백자 등에서 광범하게 찾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시집가는 새색시의 가마 속에 꼭 있어야만 했던, 대야와 함께,
일제 말엽에는 놋쇠가 귀해서 나무 함지박으로 대신하기도 했을 정도로 필수품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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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바위 일대를 보고는 차를 돌려서 하늘길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도로변에는 대형 관광버스 서너 대가 있는 것으로 봐서 단체 등산객이 와있는가 보다.
입장권을 파는 곳이 보이지 않아 위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간다.
도중에 용궐산 자연휴양림 안내판도 보이고, 영화촬영지 소개도 보인다.
-장군목 영화촬영지 안내판 -
한자꺠나 아는 유식한 사람을 위한 것인지 돌에 새긴 글자도 들여다 본다.
치심정기(治心正氣) : 그래 산에 와서 마음을 다스리고 심기를 바르게 가지라는 뜻인가.
옆에 해설도 있다.
용궐산으로 보이는 곳 바위벼랑 위에 잔도 같이 보이는 나무 데크 길이 보이고 그 위로 정자 한 쪽 귀퉁이도 살짝 보인다.
땡볕에 31도 날씨를 예보했는데. 제법 덥기 시작한다.
낯 12시가 넘었으니 이제 한낮인 셈이다.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니 하늘길 매표소가 나타난다.
1인당 4천원. 늙은이들은 신분증으로 확인하고 그냥 들어가란다.
공짜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반대쪽 (오른쪽) 임도같은 곳이 정상적인 등산로인 것을 내려오면서야 알게 된다.
6월에 이미 한번 와 본 만보는 아는 체 내색도 안하고..
용궐산 자연휴양림 종합안내판을 자세히 볼 염두가 안나 그냥 사진만 찍는다. 용궐산 646m, (어데는 645m이기도 하고.)..
용궐산이라는 산이름을 갖기까지의 유래가 재매있다. 용여산 -> 용골산 -> 용궐산. 한자의 뜻풀이까지
용궐산으로 정해진 것은 2009년 4월부터란다.
하늘길 등산로가 용(龍)이 승천하는 모습을 본딴 것이라는 데... 재미난 발상이다.
- 용궐산 하늘길 안내문 -
잔뜩 기대를 안고 올라간다. 돌계단으로 바닥을 이뤄서 그늘 속으로 이어진다.\
도중에 만난 꽃 두 송이. 운동화를 벗고 맨발로 올라가다가 인증샷 한번 눌러본다.
나중에 알아보니 개꽃무릇인 것 같단다.
꽃무릇도 아니고 상사화도 아니고... 개꽃무릇과의 만남이다.
웬걸 돌계단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나무 데크가 시작되는곳에 이른다.
내려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궈진데다가 땀을 흘리면서 내려온다.
처음에는 더워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맨발로 데크를 밟아보니 , 이것은 장난이 아니다.
땡볕에 달궈진 나무데크, 도저히 맨발로는 걸어갈 수가 없다.
도로 신발을 신는다.
그늘 한 점 없는 데크길, 나무 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치솟는데, 전망이고 뭐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제서야 앞서 올라갔던 등산객들이 더워하는 이유가 이해가 된다.
(*한 여름에는 별로 환영받지 못할 하늘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배가 일찌감치 포기하기를 잘 한거지.)
쳥명한 초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산과 섬진강 줄기가 멋지다.
장군목 쪽으로도 바라보는 만보.
더위를 피하느라 수건으로 뒷목도 가리고...
- 바위 경사면에, 아니면 바위에 글자를 새겨놓고 해설까지 친절하게 준비했다.
나무계단 사이에도 한문 구절을 써놓았다. -'계곡과 산이 끝이 없네' 라는 계산무진(谿山無盡) 글귀도 있고..
이것만 읽어도 책 한 권 읽은 셈은 되리라.
-더운데 올라오느라 애쓰는 만보(*보배는 아예 포기하고 되돌아가고..)
- 나무데크 계단 마다 쓰여있는 명구들 -
( 비룡이 해늘에 날고 있다 -> 비룡재천 )
이 나무 데크길이 비룡(飛龍)의 형상이란 말인가?
- <비룡봉무>도 보이고 글씨체도 다양하다.
비룡정 바로 아래에 있는 바위에는 버팀목처럼 철제 받침대가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낙석방지를 위한 예방 차원의 조치이리라,
(*문득 계룡산 장군봉에서 신선봉 가는 길, 지석골에서 본 바위 모습이 떠 오른다.
그것은 마치 지게 작대기가 바위를 지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신앙적인 것으로 추측되었다.
'지석골'이라는 이름과 함께. 2021년 5월 5일 등산길 사진이다. )
드디어 비룡정에 도착한다.
먼저 와 있던 성지기가 기다리고 있다.
사방을 둘러보고, 땀도 식히고...
(용궐산) 정상까지의 등산을 포기하고 그냥 한참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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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은 하늘길이 아닌 일반 등산로를 이용해서 하산한다.
바닥에는 야자매트도 있고, 안전 밧줄도 있고, 이따금씩 나타나는 전망도 즐기면서, 무엇보다도, 시원해서 좋다.
이 길은 입장료도 안 내고 오르내릴 수 있는 본래의 등산로이다.
등산로가 끝나는 곳은 하늘길 입장료 받던 매표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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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아 있던 보배를 위로할 새도 없이 동계면소재지로 가서 점심 겸 저녁 겸 시장기를 해결한다.
골목에 있다해서 '새식당'. 새로 생긴 식당이라해서 '새식당', 주인 아주머니의 색다른 식당이름 풀이도 들으면서 푸짐한 식사대접을 받는다. 한바탕 비상경보 사이렌 소동도 있었지만.
맛있는 식사를 하고 다시 귀로에 오른다.
멀리 보이는 지리산 연봉들. 아름다운 하늘 모습..
산속을 벗어난다. 전주에서 삼례로 들어서니 온통 들판이다.
지는 해 석양에 만경창파가 아닌 김제만경들, 갱갱이(<강경)들 너머로 지는 해가 아름답기만 하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 해가 저물어 간다.
(대전월드컵경기장 역에서 헤어진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2023.09. 15 자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