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형통한 삶을 살게 하시려
시편 1편 3절 2024년 9월 22일 주일 오후 말씀지
믿는다 하면서 아직도 요한복음 14: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을 오해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길이라 하신 것은 구원의 복음(엡1:13)으로 새 생명으로 살리심받은 자들이 은혜의 복음(행20:24)인 진리의 양식을 받아먹고 가는 길이 생명 길이요 그 생명 길을 가다가 온갖 환난과 핍박을 받고 가는 길이 영광 길인데 이 길로 인도해 주시는 양식이 영광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딤전1:11-
그러니 오늘의 말씀도 오해하여 일반적으로 잘먹고 잘사는 것, 건강하고 내가 하는 일이 잘되는 것을 형통의 복이라고 합니다. 오늘 3절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시냇가에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나에게 이루어 주시는 삶이 형통한 삶인 것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은 하늘의 복과 땅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구약에는 양심 시대에는 에덴에서 가죽옷 구원을 입히신 복과 후손인 땅의 복을 주셔서 감사하게 하셨는데 노아 때에는 홍수에서 구원하심을 감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람 때에는 가나안에 들이사 큰 민족을 주시는 것이 복이었습니다. 창세기 12장 1,2절에 말씀을 좇아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 아브람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고 하셨는데 우리들도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살게 하사 그 복을 받아 살게 하시는데 (갈3:9) 그 복은? 나에게 복을 비는 자는 그들도 복음이 믿어지게 하시고 나에게 저주하는 자들에게는 저주인 지옥 생활을 경험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창12:3-
모세 때에는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과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과 율법을 주신 것과 만나를 먹이신 것과 광야를 지나게 하신 것과 거룩하게 살게 하시려 613가지 율법을 주시고 영적 성장을 이루는 성막까지 짓게 하사 다시 성령으로 충만케 하사 마음껏 열매맺게 하시는 가나안에 들이신 것이 복이요 다윗은 그 복주신 것을 누구보다 많이 감사한 왕입니다.
그 다윗을 가나안에서 왕노릇하게 하시려 15세에 기름 부어 15년간 연단하신 것과 40년간 왕노릇하게 하신 것을 감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49명의 열왕들은 그러한 복을 주셨지만 다시 육에 치우쳐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사도 요한을 통하여 태초부터 계신 예수님이 우리의 영을 살리시려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 복이며 내 생명을 살려 주신 것이 복이며 자라나 열매맺는 것이 복이며 성령으로 충만케 하사 가는데 마다 나를 통해 생명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복이며 영광길 가면서 핍박받는 것이 복이며 믿음 지키다가 죽는 것이 복이며 신랑으로 예수님을 공중에서 맞이하게 하시려 첫째부활로 일으키시는 것이 복이며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 들어가 더 열매맺게 하신 것이 복이며 영광성에 흠없이 들어가는 것이 복이라고 나타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 마지막에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계22:14-
3절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저는 1절처럼 원죄의 역사와 세상의 유혹과 거짓의 역사를 이겨나가는 자들이 복된 자들이요 2절의 말씀처럼 율법인 진리의 양식을 부지런히 받아 되새겨 그 생활이 이뤄져 신부의 믿음으로 나가는 자들입니다. 주시는 말씀마다 무슨 뜻인지 깨달아진 자들로 한 말씀 한 말씀이 기쁨이 된 자들입니다.
생명의 양식을 계속 쉬지 않고 공급받고 사는 것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나타내셨습니다. 오늘날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의 열심을 앞세워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바쁘기만 하고 지쳐서 힘들어 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지 못하여 늘 부족함이 많기 때문입니다. 시23:1-
다윗처럼 여호와를 목자 삼게 하사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사 심령을 안정시켜 주십니다. 시23:2-
이사야 55:1절에 목마른 자는 물로 나오라 하셨는데 물은 생수, 영적 기쁨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요7:37절에 목마른 자들아 내게로 와서 마시라 하셨는데 말씀의 양식이 풍성히 공급되는 아버지 집에 부지런히 나와 마리아처럼 고넬료처럼 주의 발아래 하나님 앞에 앉는 자들은 모두 성령의 충만을 주셔서 복된 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렘17:8-
민수기 24:5-6절에 발람 선지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물가에 백향목같게 하신다 하셨는데 백향목은 천년을 사는 나무로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나타내주시는 나무입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말씀 앞에 나오는 이유는 더 열매맺기 위함이요 앞으로 더위(환난)가 오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복 있는 자인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날마다 말씀을 공급받고 영이 계속 자라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요한을 통해서는 참 포도나무 둥치에 붙어 있는 가지로 나타내주셨습니다. 요15:4-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시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입니다. 봄에 씨를 심고 여름엔 자라며 가을에는 과실이 무르익고 겨울에는 추수한 것을 저장합니다. 이처럼 말씀을 부지런히 받을 때가 봄이고 받은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가 여름이고 받은 말씀이 생활로 나타날 때가 가을이며 하늘에 쌓는 것이 겨울입니다. 항상 봄이 아닙니다. 눈물을 흘리며 뿌리러 나가면 반드시 거둘 때를 주시는 것입니다. 시126:5-
시냇가에 심겨 물이 부족함이 없는 자들은 받은 말씀이 풍성한 자들로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들을 인하여 눈물의 사역을 하는 자입니다. 빌3:15-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잎사귀는 열매가 맺히고 자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땅에서 주시는 은혜와 복입니다. 오늘도 별 탈 없이 부지런히 말씀 앞에 나올 수 있도록 하신 것이 땅의 복입니다. 나온 자들을 열매가 맺힐수 있도록 1.내 안에 성령으로 역사해주시고 2.천사로 도우시고 3.일할 때마다 힘을 주시고 4.도울 자를 붙여 주시고 5.환경을 주장해주시고 6.물질까지 주시고 7.건강까지 주셔서 일하게 하시는 것이 잎사귀가 마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게 하실 것을 에스겔 47:1-5절에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말씀을 받은 자에게 이루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1.발목에 물이 차면 예배당에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고 기쁘고 2.무릎에 물이 차면 말씀을 받은 후 늘 기도하고
3.허리에 물이 차면 예배당에서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힘있게 하고 4.헤엄칠 물이 되면 생명 역사가 일어나도록 강건케 하사 어디든 보내십니다. 겔47:12-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 물질, 환경으로 오늘 나에게 주신 잎사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직분과 은사와 재능도 잎사귀입니다. 생명 살리는 일에 사용하고 있습니까? 시편 39:13절에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하셨는데 다윗은 왕이 되기까지 연단을 받는데 많은 어려움을 받고 결국엔 건강까지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계속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는 다윗을 나타내주십니다. 이 말씀을 양식으로 받으면 나에게도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러니 오늘 나에게 주신 건강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감사해서 나와 주신 건강으로 날마다 열매를 맺기 원하고 생명 역사에 쓰임 받기 원하며 의지하고 의뢰하며 살아갈 때에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도 받지 아니하고 열매도 없는 자들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 나무처럼 저주를 받아 그 잎사귀가 말라지고 (마21:19) 믿음 생활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허락하셨으나 받은 은혜를 남에게 나누지 아니함으로 회당에 오른손 마른 자처럼 결국 그 잎사귀가 말라 일할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눅6:6-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소원대로 되는 것을 형통(亨通)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 형통입니다. 마26:39절과 막14:36절과 눅 22:42절에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셨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의 육신처럼 약해진 기도를 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셨지만 이미 죽음을 각오하신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다만 예수님의 뒤를 따라 영광의 길, 고난의 길을 가야 할 자들이 죽음 앞에서 세상의 미련을 끊지 못해 약한 마음을 갖게 될때에 이런 기도를 하게 될 것을 미리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십자가의 길을 가라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가장 가까이 있던 요한을 통해서는 즐거움으로 지신 것을 나타내주셨습니다. 요18:11-
창세기 39:2절에 요셉을 보디발의 집에서 형통하게 하셨는데 하늘 영광을 바라보는 요셉을 형들에 의해서 팔리게 하셨고 종살이를 하게 하셨고 옥에 갇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시냇가에 심은 나무) 형들을 미워하지 않았고 힘든 종살이에서 원망, 불평하지 않았고 옥살이에서도 억울해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형통입니다. 모든 것을 감사할 수 있는 것이 형통한 삶입니다. 우리는 어떤 형편에 처해 있고 그 어떤 자리에서 감사를 합니까? 불평을 합니까?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알고 기쁨으로 받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형통입니다. 가정과 회사와 예배당에서 하는 일들마다 감사의 열매가 되는 것이 형통인 것입니다. 단6:28-
환난 전까지 세상적 육신적으로는 악인들이 세상에서 잘됨으로 더욱 설치게 됩니다. 그래서 악인의 형통을 보고 실족하는 자들까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시73:12) 영이 잘되는 것이 형통입니다. 요3서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