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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월 제 42 신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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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스님 허유
2022. 12. 29. 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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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월 제 42신 겨울
가는 세월
밤 새도록 스산한 바람이 숲 속을 휘어잡고 다니면서 동장군의 기세를 부린다. 꼭 닫은 장지문 틈으로 냉기가 들어온다. 머리가 선듯하지만며칠전 스마트폰에 포스팅을 하느라 올린 글에는‘ 수 없는 생을 돌고 돌다가 이번 생에는 중이 되어 산중에 사네.가난 하지만 따뜻하게산다.’ 라고 썼다.
사실은 수각에 물도 얼고, 가까스로 부엌을 사워실로 대체해서 시설한 온수기도 한동안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불편 하지만 굳이 따뜻하다고 했다. 아마 납승의 긍정적인 사고와 웬만한 불편은 편하게 생각하는 습관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동지 섣달 설한풍이 몰아치는 산중에서 홑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익숙한 나에게는 보통의 일일 뿐이다. 어쩜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3년은 계묘년 이다. 나는 60년 전 계묘년에 해운대 좌동 장산사에 행자로 있다가 어떤 행각승의 꼬임에 빠져, 아랫 동네 형과 초등생 하나, 위에 절 폭포사 행자 현근이와 죽이 맞아 넷이서 가출을 하여 지리산으로 도 닦으러 간 적이 있다.
그 해 여름 장마가 져서 보리를 거두기전에 밭에서 싹이 피어 보리 농사가 흉년이 졌다. 그런 시절에 부산 범전 역에서 기차를 타고 삼랑진을 거쳐 진주역에 내려 남강다리를 지나는데 물이 불어 다리가 넘칠듯했다. 강을 휘돌아가는 강변의 무성한 대나무 숲,.. 그때 남강의 풍치는 환상적이었다.
그렇게 중산리 남명 서원을 거쳐 도솔암 까지 갔는데, 당시만해도 빨치산 잔당이 있어 위험하다고 입산금지라, 도도 못 닦고 왕복 20여일 간 고생만 하고 얻어먹으면서 해운대 좌동으로 되돌아 왔다.
철부지들의 환상이 다 깨어지고 말았다. 당시의 행각승은 지리산에 들어가서 바위굴을 의지해 살면서 칡과 도라지를 캐어먹고 생식을 하면서 이뭣고 화두를 일념이 되도록 하면 도가 터진다고 했다. 안 먹고도 살고, 풀만 먹어도 살고, 무엇이던 마음 먹는 대로 다 되는 신통력을 얻는다고 했었다.
지금은 허상이 다 사라지고 이뭣고만 남아있다. 어리석고 몽매했던 어린 시절이 되돌아 보인다. 하필 올해가 계묘년 이라서…
그러나 웃지 못할 그날의 그 일들이 오늘날 들숨에 이 날숨에 뭣고 하면서 사는 단초가 되었으니 풋풋한 추억에 실속이 있다.
그럭저럭 한해도 끝나갈 무렵 회신을 쓰면서 돌아보니 지난날들의 감회가 새롭다.
그런데 올해로 우리나이로 75살인데 세계적인 경향에 따라 이제 만 나이 쓰는 것을 일반화 한다 하니,일년은 공짜로 살면서 74살로 세월을 멈출 수 있어 기분이 좋다.
누구나 연말 연시에는, 사는 주변의 소유물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인간 관계도 돌아보면서 심신을 새롭게 가다듬는데 나는 어떤가 살펴본다. 옷가지와 물건은 별로 가진 것이 없어 정리할 것도 없고, 돈도 없으니우체국 통장 하나와 빈 발우면 족하다.
책은 한 번 다 정리 했지만 몇 권 있는 것도 정리해야겠다.
인간관계는 주지를 안 했으니 묵은 신도 몇 분, 지인들 몇 사람,도반이 전부다. 스쳐가는 인연이야 부지기수지만 정리할 것도 없고, 페이스북 페친들이 많지만 모두 배울만한 분들이라 그냥 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번뇌다. 많이 정리가 되었다. 아마 나이를 먹고 늙은 것이 큰 힘이 된 것 같다. 돈, 이성, 음식을 탐하는 마음, 명성, 오래 살아야겠다는 마음들은 미약해 져서 별 미련이 없다.
건강에 대한 것은 생 노 병 사의 섭리에 따라 가는 것이지 내가 어떻게 정리할 부분이 아니라서, 행이고 불행이고 인연따라 순리대로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있다.언젠가 그날이 오면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정신이 온전한 동안은 변해가는 내 모습을지켜 보려고 한다.
연명치료는 안한다는 서약서도 몇 해전에 건강공단에 가서 했고, 생명실천본부에 시신기증도 해놓았다.속가 가족은 조카들이 몇 있지만은 납승이 동진 출가하여 절에 일찍 와서 그들과 함께한 추억이 없어 굳이 알릴 것도 없고,수계이후 사형사제를 맺은 인연은 은사스님 49제 마치고 문중을없애면서 일불제자로 살기로 했으니 어느 스님이나 다 사형사제인 셈이다.
선재회와 단월 모임 하면서 책 두어 권 만들어 진 것은 어설픈 잡문이지만 부끄러운 대로 나눌수 있을 때까지는 드리는 게 좋겠다. 한 평생진 시주의 은혜를 생각해 보면 미약하지만 조그만 성의 표시라고나 할까 ? …
어떻게 연말 정리가 유언장을 쓰듯 되었지마는 이럴 때 슬쩍 의중을 말해 놓는 것도 괜찮은 것 같고, 이렇게 언질을 두고 살면 하루 하루가 덤으로 사는 것이라자연스럽게 써둔다.
바람이 차다. 앙상한 나무들의 적라나한 모습, 명징한 하늘, 서슬 푸른 겨울 기후가 흩트려 지려고 하는 마음에 긴장감을 준다. 도량의 안팎을 단속해 놓고 사람들의 발길도 뜸할 때, 호젓한 거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중노릇하는 덕이라 느껴진다.
오후에 바람이 자면서 눈 올 조짐을 보인다.
오랜 가뭄에 눈이라도 많이 왔으면 좋겠다.
끝으로한 해를 보내면서 시주의 지난 은혜에 감사하며,모든 지인들이 계묘년을맞아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란다.아유 완노 수캉 발랑.
2023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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