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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죄를 버리고 회개 그리고 성결의 삶을 살아야합니다.(삼상3:1-14)
2024, 10/13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삼상3:1-14절 말씀으로“죄를 버리고 회개 그리고 성결의 삶을 살아야합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사람이 망하는 것은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13절)
둘째로, 알면서도 지은 죄는 사함받기 어렵습니다.(14절)
셋째로, 거룩과 성결은 하나님 성소에서부터 시작됩니다.(13-14절)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죄와 회개 그리고 사망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사람이 망하는 것은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13절)
본문 1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아멘.
하나님이 엘리집안에 엄중한 심판을 선언해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나게 되었는데, 이 심판의 발단은 이미 알려진 대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중간에서 가로채고, 성전에서 봉사하던 여인과 동침하는 등 그야말로 하나님을 철저히 무시하는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엘리의 두 아들만 심판하면 될 텐데 마치 연좌제처럼 왜 엘리가문 전체가 심판을 받아야만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본 절에서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엘리의 두 아들이 저지른 패악질이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들였는데도 엘리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아버지 엘리가 자식들의 패악질을 몽둥이라도 들어서 바로잡았다면 어찌되었을까요? 아마도 하나님의 심판은 아들들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엘리는 아들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조롱하는데도 감독의 의무를 소홀히 함으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집안 전체로 확대되는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 인정사정없이 죄에 대해 심판을 집행하는 분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엘리가문은 단순히 그들의 죄악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엘리가문이 단지 그들의 죄 때문에 망한 거라면 이 세상에 살아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왜냐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누가 자기는 죄가 없다고 하면 잘 돌봐줘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까지 감찰하는 분이라 나 자신은 속일 수가 있어도 하나님은 못 속입니다. 그래서 요일1:10절에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설령 자기는 진짜 죄 짓지 않았다고 해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아담으로부터 죄의 DNA를 가지고 때어나기 때문에 자동으로 죄인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착하고 선해도, 부처도, 마호멧도 공자도 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롬3: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이 다 죄인이라고 해서 오늘 엘리가문처럼 모든 사람이 다 심판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죄인이기 때문도 아니고, 죄의 크기가 크고 엄중해서도 아닙니다. 사실 죄의 크기와 엄중함으로 보면 엘리의 두 아들보다 더한 죄인이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말할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도 자신을 가리켜‘죄인 중에 괴수’라고 할 만큼(딤전1:15) 큰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물론 겸손해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지만, 실제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가두고 아마 죽였을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죽임당할 떄 그는 마땅히 죽어야할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증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기독교사에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기고 위대한 순교자의 길을 갔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엘리가문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철저하게 몰락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저들이 죄를 알고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아들들이 모르고 죄를 지었어도 잘 알고 있던 아버지가 그들을 징치하고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재를 뒤집어쓰며 회개해야함에도 그게 없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로 그 부분을 지적하셨는데,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엘리는 자식들이 행하는 짓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죄인지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도 않았고, 회개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동일한 죄를 지었어도 다윗은 끝까지 왕으로서 생을 마감하고 그의 허리에서 그리스도가 나오는 영광을 보게 됩니다. 반면에 사울왕은 하나님께 버림받고 결국에는 블레셋관의 전투에서 아들들이 전사하고 본인도 자결하고 맙니다. 여러분!!!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연약한 인간인지라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죄에 대해 하나님 앞에 어떤 태도를 취했느냐가 그걸 결정한 것입니다. 사울왕은 사무엘의 책망을 듣고도 회개치 않고 순종하지 않는 반면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즉시 회개하고 돌이켰다는 것입니다.
헤롯왕의 아들로 야고보를 죽이며 기독인들을 심히 핍박했던 아그립바 1세가 충이 먹어죽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기독교를 핍박했던 사도바울은 주의 일꾼으로 엄청난 족적을 남깁니다. 이들의 차이도 지은 죄에 대해 회개의 유무였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가롯유다가 똑같이 예수님을 배신했지만 범죄 후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그러나 가롯유다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도 회개하지 않은 반면, 베드로는 즉시 나가 통곡하며 회개합니다. 그 결과 가롯유다는 영영한 멸망의 길로 갔고,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위대한 지도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깨달으면 즉시 회개해야합니다. 멸망하는 것은 죄가 크고 중해서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또 주님의 보혈로 속죄 못할 죄도 없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사람이 망하는 것은 죄를 회개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51:17절의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말씀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알면서도 지은 죄는 사함받기 어렵습니다.(14절)
본문 1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아멘.
엘리는 자식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능멸하는 죄를 지었지만 그걸 바로잡지 못하고 방치함으로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는데, 오늘 본문은 그 죄에 대하여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함을 받지 못한다는 그야말로 엄청난 선고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회개하면 용서해주시는 분인데 도대체 저들이 어떤 죄를 지었길래 영원히 사함 받지 못한다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가 13절에 나오는데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니까 엘리가 자식들이 하고 있는 짓들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죄가 되는지를 알면서도 그대로 방치하여 멸망을 자초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라도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은 부패한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리 성인군자라라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인 것입니다.
이걸 잘 아시는 하나님은 이런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사 구약시대에는 희생 제사를 통하여 속죄의 길을 열어주셨고, 신약시대에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속죄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죄가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을 수 없는 죄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게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보통 살인 같은 죄는 용서받을 수가 없고, 도둑질이나 거짓말 같은 작은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우리와 다릅니다. 하나님은 죄의 크기가 아니라 죄를 지을 때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보십니다. 그러니까 죄의 경중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의성 여부를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도피성제도처럼 아무리 큰 죄라도 회개하면 용서해주시는데, 그러나 사소한 죄라도 그게 악한 것임을 알고도 고의적으로 했다면 용서치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싫어하시며, 또 이 죄로 인해 피해자가 감당할 고통과 아픔, 하나님의 분노를 알면서도 죄를 짓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오늘 엘리가문도 자신들의 짓거리가 어떤 것인지를 알면서도 제물을 탈취한 것은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무시한 것이고 하나님의 역린을 건드린 것입니다. 그러니 용서할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간절하게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해주신다고 성경 수많은 곳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엘리가문은 회개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걸 미리 아시는 하나님이 엘리가문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선제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부인하는 하나님의 역린을 건드리는 큰 죄를 지었지만 그것이 반사적으로 나온 말이었고, 그가 심히 통곡하며 회개함으로 회복이 됩니다.
요즘 교인들 중에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맛보고, 진리의 말씀을 잘 알면서도 교회를 멀리하고 불신자처럼 사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에 대해 성경은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놓고 욕되게 함이라."(히6:4-6)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알고면서도 계속 짓는 죄와 하나님(성령)을 대적하는 죄, 그리고 죄를 짓고도 회개치 않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습니다. 롬1:21절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이 말씀은 알면서도 죄를 짓고, 알면서도 선을 행치 않으며, 알면서도 하나님을 멸시하고 예배를 무시하는 자들의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지 않고 늘 은혜 안에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거룩과 성결은 하나님 성소에서부터 시작됩니다.(13-14절)
본문 13-1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하였노라 하셨더라." 아멘.
본문의 말씀은 엘리가문의 행악과 배신에 대해 하나님이 얼마나 깊이 분노하시는지를 알 수 있는데, 당시는 사사시대 말기로 이스라엘전체의 여호와신앙이 다 무너지고, 섬긴다고 해도 말씀을 떠나 자기들 옳은 대로 하나님을 섬기다보니 하나님의 제사는 율법을 따르지 않고 지들 맘대로 막 지내는 그야말로 무법천지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왜 엘리가문만 유독 준엄한 심판을 선언하셨을까요?
그것은 다른 곳은 다 타락하고, 다 범죄를 저질러도 하나님의 성소만은 거룩하고 타락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성전이 어떤 곳입니까?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그곳에서 죄 많은 인생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고 관계를 회복되며, 스스로를 돌아보며 거룩하고 정결하게 되어지는 곳입니다.
그러니 다른 곳은 몰라도 성소만큼은 늘 거룩함을 성결함을 유지해야 하는 곳입니다. 때문에 성전에서 하나님 것을 손대는 두 아들을 죽여서라도 바로 잡았어야 했는데 엘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으나(성전에서)여호와께 죄를 지으면 누가 구해줄 수 있겠느냐?"(2:25) 이 말은 엘리가 아들들에게 했던 말로, 이걸 보더라도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나라백성들은 누구보다도 거룩하고 정결해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 9장에서 하나님은 성소에서 시작된 죄로 인해 천사들에게 성전부터 살육을 시작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처음 예루살렘성전에 들어가셨을 때도 성전부터 깨끗하게 청소하셨고, 마지막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을 때도 성전부터 정화하셨습니다.(마21:12)
만약 이스라엘백성들이 예루살렘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만 않았어도 예루살렘이 A.D 70년에 로마에게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고전3:17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고전3:16절 말씀처럼 우리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런데 가장 깨끗하여야할 성전이 더러워지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그 성전부터 청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부터 청소하시는 하나님이 심판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거룩하고 정결함해야 합니다.
구약시대의 성막과 성전은 지금의 교회로 그 기능이 대체되었습니다. 때문에 오늘 교훈으로 볼 때 죄악과 타락으로 변질된 세상 속에서도 교회는 신앙을 지키고, 거룩함을 유지하여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교회는 자꾸만 세상을 닮아갑니다. 세상 사람과 동일한 마인드로 세상과 구분되지 않고 오히려 교인들이 사회적으로 더 많은 물의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교회가 맛을 잃으면 길거리에 밟히는 소금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제라도 세례요한의 경고처럼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여있다는 긴박감과 위기의식을 가지고 우리가 먼저 회개하고, 스스로 정결케 하여 교회와 사회의 파수꾼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진정 신실한 신앙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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