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영원한 생명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마태오 16,24-28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한 식품 업체의 직원이 공장 내의 비위생적인 식품 조리과정을 촬영해서 블로그에 게시했습니다. 댓글을 통해 소셜미디어에 확산되었지요. 회사는 이 확산을 봉쇄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회사의 노력에 따라 확산을 멈췄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더 큰 이슈화가 되어서 더 많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요.
이를 스트라이샌드 효과라고 말합니다. 가수이자 배우이던 바바라 스트라이샌드가 인터넷에 올라온 자기 집 사진을 없애려고 법률적인 차원에서 노력했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별 관심이 없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진을 보았던 데서 생긴 말입니다. 즉, 소셜미디어 상에서 정보를 숨기거나 삭제, 검열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더 큰 이슈를 만들어 역효과가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보다 크게 성공하거나 큰 권력을 가질수록 그만큼 자기 이미지와 영향력을 보호할 필요가 더 많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나를 욕하지 않도록 하려고 막대한 시간을 낭비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증오와 분노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 증오와 분노가 자기 인생을 근본적으로 밑바닥에 속박하기 때문입니다.
증오와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저 사람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억울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라도 해야 속이 시원해질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증오와 분노를 통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방법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가끔 성지 내에 있는 성물방에 갈 때가 있습니다. 성물을 구입하려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께서 제게 묻습니다. “신부님, 혹시 멋진 십자가 하나 구입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십자가의 의미를 멋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싶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의 십자가는 어떤 용도였을까요? 십자가는 큰 고통을 가져다주면서 죽음으로 몰고 가는 엄청난 형벌 도구였습니다.
아직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당하기 전으로 십자가가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내세워지기 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형을 당할 중죄인이 되라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이 세상 안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내세우는 윗자리가 아닌, 자신을 가리는 낮은 자리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증오와 분노의 모습에서 벗어나서 겸손과 사랑의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나를 살리는 길입니다.
(조명연 신부님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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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하나 더 드립니다~~~
「불안한 마음」
언젠가 책을 읽다가 너무 좋은 구절이 있어서 메모를 해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문제는 어떤 책인지를 써 놓지 않아서 출처를 밝힐 수가 없네요. 그래도 우리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 이 자리에 올려 봅니다.
“우리가 불안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첫째,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에 곧잘 빠진다. 둘째, 내가 나 자신을 정확하게 모를 때 고독하고 불안해진다. 셋째, 내가 목숨 바쳐 일할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지금 혹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이 세 가지 이유에서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이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자기 소신이 분명해야 하며,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를 분명하게 정해야 하며,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자존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결국 불안한 마음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내 안에서 찾으면 다 해결책이 있다는 것이겠죠?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죄뿐입니다(성 카를로 아쿠티스)>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태오 16,24-28)
わたしについて来たい者は、
自分を捨て、自分の十字架を背負って、
わたしに従いなさい。
(マタイ16・24-28)
Whoever wishes to come after me
must deny himself,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Matthew 16:24-28)
年間第18金曜日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ヌグドンジ ネ ディル タラオリョミョン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ザシヌル ボリゴ ゼ シッチャガル ジゴ
나를 따라야 한다.
ナル タラヤ ハンダ。
(마태오 16,24-28)
わたしについて来たい者は、
와타시니 츠이테키타이 모노와
自分を捨て、自分の十字架を背負って、
지분오 스테 지분노 주우지카오 세옷테
わたしに従いなさい。
와타시니 시타가이나사이
(マタイ16・24-28)
Whoever wishes to come after me
must deny himself,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Matthew 16:24-28)
Friday of the Eighteenth Week in Ordinary Time
Matthew 16:24-28
Jesus said to his disciples,
“Whoever wishes to come after me must deny himself,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For whoever wishes to sa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will find it.
What profit would there be for one to gain the whole world
and forfeit his life?
Or what can one give in exchange for his life?
For the Son of Man will come with his angels in his Father’s glory,
and then he will repay each according to his conduct.
Amen, I say to you, there are some standing here
who will not taste death
until they see the Son of Man coming in his Kingdom.”
2026-08-07「自分の命を買い戻すのに、どんな代価を支払えようか。」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 年間第18金曜日です。
御心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御心の聖母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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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タイによる福音
<自分の命を買い戻すのに、どんな代価を支払えようか。>
そのとき、イエスは弟子たちに言われた。16・24「わたしについて来たい者は、自分を捨て、自分の十字架を背負って、わたしに従いなさい。25自分の命を救いたいと思う者は、それを失うが、わたしのために命を失う者は、それを得る。26人は、たとえ全世界を手に入れても、自分の命を失ったら、何の得があろうか。自分の命を買い戻すのに、どんな代価を支払えようか。27人の子は、父の栄光に輝いて天使たちと共に来るが、そのとき、それぞれの行いに応じて報いるのである。28はっきり言っておく。ここに一緒にいる人々の中には、人の子がその国と共に来るのを見るまでは、決して死なない者がいる。」(マタイ16・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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チョ・ミョンヨン神父様の「今日の黙想」です。
ある食品会社の従業員が、工場内の非衛生的な食品の調理過程を撮影し、ブログに投稿しました。それがコメントを通してソーシャルメディア上に拡散されました。会社はこの拡散を食い止めようと、並々ならぬ努力をしました。結果はどうなったでしょうか。会社の努力によって拡散は止まったのでしょうか。いいえ、そう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かえって、より大きな問題として注目され、さらに多くの非難を浴びることになったのです。
これを「ストライサンド効果」と言います。歌手であり俳優でもあったバーブラ・ストライサンドが、インターネット上に掲載された自宅の写真を削除させようと法的な手段を講じたところ、そのために、それまでほとんど関心を持っていなかった多くの人々が、かえってその写真を見るようになったことに由来する言葉です。つまり、ソーシャルメディア上の情報を隠したり、削除したり、検閲したりしようとする試みが、かえって大きな話題を生み、逆効果をもたらすことを意味します。
私たちは、より大きな成功を収めたり、大きな権力を持ったりするほど、それだけ自分のイメージや影響力を守る必要があると考えます。そのため、世間から非難されないようにしようとして、膨大な時間を浪費するという愚かさに陥ってしまいます。
それでは、どのように対応すればよいのでしょうか。答えは簡単です。ただ認めて、受け入れればよいのです。すでに起こったことを率直に受け入れればよいのです。そのために必要なのは、憎しみと怒りを手放すことです。この憎しみと怒りが、自分の人生を根本からどん底に縛りつけてしまうからです。
憎しみと怒りを抑えられない人が大勢います。「私はあの人を絶対に赦すことができない」と言う人を、私たちは周囲にいくらでも見つけ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もちろん、悔しくて納得できないこともあるでしょう。また、そのようにでもしなければ、気が晴れないように思える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実際には、憎しみと怒りによって問題が解決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
イエス様は、ご自分に従う方法について、次のようにおっしゃいます。
「自分を捨て、自分の十字架を背負って、わたしに従わなければならない。自分の命を救いたいと思う者は、それを失うが、わたしのために命を失う者は、それを得る。」
時折、聖地にある聖品販売所に行くことがあります。そこで聖品を購入しようとする多くの人々を目にします。ある方が私に尋ねました。
「神父様、何かすてきな十字架を一つ購入できるでしょうか。」
このように、十字架を「すてきなもの」と考えている人もいるようです。しかし、イエス様の時代に十字架はどのような目的で用いられていたのでしょうか。十字架は、激しい苦痛を与えながら死へと追いやる、恐ろしい刑罰の道具でした。
それはまだ、イエス様が十字架刑に処せられる前であり、十字架がキリスト教の象徴として掲げられる前のことでした。それでは、十字架刑に処せられる重罪人になれという意味なのでしょうか。そうではありません。この世で最も低い者の姿になることを恐れ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自分を誇示する高い場所ではなく、自分を隠す低い場所を選ぶことができ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のために、憎しみと怒りの姿から抜け出し、謙遜と愛の姿へと変えら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れこそが、真に自分を生かす道な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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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の福音を読み、憎しみと怒りを手放し、謙遜と愛をもって自分の十字架を背負い、イエス様に従う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聖霊、来てください。